숨결이 바람될때(When breath becomes air)-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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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될 때] by 폴 칼라니티
When breath becomes air...by Paul Kalanithi.

인생의 최고 정점에서, 이제는 날 준비가 되어있던 젊은 신경외과 의사가 어느날 갑자기 폐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문학을 사랑해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실체에 다가서기 위해 생물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그 모든 학문의 접점인 의학을 공부하며 숙명적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받아들인다. 길고 힘들었던 의대공부를 마치고 나서 저자는, 20년은 의사로, 나머지 20년은 작가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했었다. 그 40년의 계획 직전에 그에게 찾아온 시한부 선고... 울 준비하고 감동받을 준비하고 가슴은 연민으로 가득차서 책을 들었지만, 이 책은 죽음을 앞둔 환자로서 지난날을 회고하고 죽음을 이겨내거나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하는 과거를 추억하며 그 과거에 덧대는 포장지 같은 책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오히려, 전도유망했던 젊은 신경과 레지던트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가 의사로서나 작가로서 얼마나 품위있는 사람인지를, 그리고 그 스스로 죽음에 직면한 인간으로서 의사로서 환자로서 어떻게 사유하는지를,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 친구들, 담당의사까지 그의 삶에서 어떻게 역할하고 있는지를 우아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인문 교양서에 가까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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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의사의 기본적인 역할은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고 죽음 직전의 환자를 살리고, 살리지 못했을 때에도 냉정하게 받아들이며 죽음 자체에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사 또한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메스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면, 외과의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는 따뜻한 말 뿐이다."
이런 인간적인 의사를 나는 살면서 경험했던가...

의사로서 환자들의 죽음을 보고, 주위 사람들, 익명의 또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숨을 쉬는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은 그에게 쉽지않는 일이었다. 그 죽음을,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 완벽함에 도달할 수 없음에도 그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라고 저자는 믿었다.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죽음 그 자체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 남은 시간을 다 보내버린다면 결코 내 인생은 가치있는 인생이 아닌 것이다. 의사이지만 환자로서 내 몸을 병으로부터 보호해야 했지만 인생 그대로를 다 포기하면 안된다. 성경에서보다 시에서 더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문학을 사랑하고 글을 사랑했던 저자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내 인생 자체를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진실되고 정직하게.

"만약 석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

이 책을 쓰기로 선택했으니 아마 스스로 1년을 예상 했었나보다... 암 말기 환자들에게 3개월이니 6개월이니 1년이니... 얼마나 더 살 날이 남았다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통계적인 수치로 가늠만 할 수 있을 뿐. 그럼에도 암선고를 받은 환자들의 시간을 일방적으로 한정하고 그들의 미래를 단정짓는 의사는 얼마나 권위적이고 무책임한가. 스스로의 시간을 예측하는 데에도 저자는 실패했다. 이 책을 끝내지 못했으니.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겨지는 것이다.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친구를 만들고 가족들과의 물리적 거리와 시간때문에 공유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나누다가 다시 그들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되면 그동안 공유했던 모든 것들이 나와 함께 남겨지게 된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것들을 내안으로 안으로 주억주억 집어넣어야 한다. 주인잃은 감정과 감상들이 다시 엉뚱한 곳으로 향하기 전에... 하물며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뒤에 남겨진 자들의 고뇌는 어떠하겠는가. 의사로서 하던 진지한 환자들에 대한 연민이 내가 죽은 후 남겨지게 될 가족들에 대한 연민을 넘어선 고통으로 바뀌게 된다.


"결국 의사도 희망이 필요한 존재였다."
담당의였던, 의사로서 환자로서 의지했던 담당의사에게서 그가 들을 수 있는 말들은 그가 의사로 환자들에게 해주었던 말들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통감할 때, 의사도 한 인간이며,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환자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순간, 그가 처한 상황에 그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대응하기를 선택했던것 같다. 우리 모두의 삶은 특별하지만 그 누구의 삶도 타인들에 비해 더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실존적인 모습이 된다. 혼자 남겨질 아내를 위해 대출을 조절하고, 아이를 갖고(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분... 혼자 남겨질 아내 하나로도 가슴이 찢어질텐데... 남겨질 아이를 더하는...)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되었든 내가 계획한 미래를 하나씩 채워나가야 한다.

결국 저자는 이 책을 끝내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나머지 에필로그는, 역시 의사였던 그의 아내 '루시'의 시선으로 쓴 글이 채우고 있다. 동료 의사로서, 아내로서, 내 아이의 아빠로서 그가 마지막으로 보인 힘겨운 투병생활에 대해 담담하게 쓴 글이다. 그가 얼마나 품위있게 그의 생을 마감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신이 그를 사랑했는지, 마지막으로 딸에게 이야기한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는지를.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좋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사람들이 지금 아빠를 칭찬하는 말들은 전부 사실이란다. 아빠는 정말 그렇게 훌륭하고 용감한 사람이었어."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맴도는 말.
I can't go on...
I'll go on...
이 말의 의미를 알고싶다면 책을 읽어보라. 지금 내가 겪는 이 모든 역경들이 I can't go on이라 말할 핑계가 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I'll go on..." 이라 선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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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ran입니다
글의 길이를 보고 그 성의에 놀라고!
글의 내용을 보고 그 감성에 놀라고!!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줄이고 줄여도 할말이 너무 많은 책이라서요... 개인적으로 아주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많은 감동??
제 글 보고 하시는 말이라면 용기를 주셔 감사합니다!!^^

^^
한 박자 느리게 제대로 이해했어요
읽으신 책에 감동받았다는 뜻인데 그만 착각을!!!

언젠가 이책 소개를 읽어본적이 있어요. 이 시점에 저에게 딱 필요한 책인듯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산다는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요즘은 그냥 살아지는것 같아서 말이죠. 기회가 되면 이책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저도 이 책 읽을 즈음에 그런 마음이었던것 같아요. 죽음의 문턱에서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ㅜㅜ 정말 좋았어요 책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이 책 읽고 싶은 책 중에 하나에요.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책...
미루고 미루었는데 바로 사러 가야겠네요.
^^

네 저도 한꺼번에 왕창 산 책들 속에 한참을 뒀었어요. 괜히 우울해질까봐... 근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좀 울기도 했지만ㅜ 읽고나면 오히려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떠나는 사람, 남겨진 사람... 참 아득하네요
@홍보해

@floridasnail 님 추천 감사해요^*^

@bookkeeper님 안녕하세요. 개수습 입니다. @floridasnail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해요!!

이런 글을 보면 항상 현재의 자신은 최선을 다 해서 살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는것 같아요. 오늘도 한번 더 고민하고 반성하고 갑니다~

@akoano 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으니까요~

으으...많이 게으른 편이라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가에 많이 찔리네요...ㅠㅜ

저는 @akoano 님의 발리에서 한달 살기 프로젝트를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설렙니다. 너무 잘하고 계신거에요.

ㅎㅎㅎ감사합니다~bookkeeper님의 격려에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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