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영화, ‘아가씨’원작) - 세라워터스

in #kr6 years ago

B8623158-A8B0-4B92-B534-709A1A129BEF.jpeg

박찬욱의 영화 '아가씨'의 원작인 핑거스미스는 엇갈린 인생을 살아온 '모드'와 '수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모와, 그와 관계한 인물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쓰고보니 무슨 막장 일일 드라마 시놉시스를 보는 듯한데, 우리가 많은 매체를 통해 익히 보아왔던 지극히 통속적이고 관습적인 구성과 스토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세라워터스적인 소설이다.

그러나 인물들은 관습 적이지가 않다. 어느 누구도 독자를 배려하려 독자의 예상대로 따라가지 않고, 그들 각자의 방식대로 움직이고, 생각한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던져지는 반전의 반전은, 내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책장을 넘기게 만들만큼 충격적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 모드와 수전은, 궁극적인 목적인 돈을 위한 볼모로써 서로가 서로를 속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도둑들과 사기꾼 사이에서 고아로 자라 오며 이모와 같은 석스비 부인의 보호아래 성장한 수전과 상류계급의 숙녀이자 엄청난 재산의 상속녀인 모드는, 매력적인 악당 젠틀먼(사실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일 수 있을 법도 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악당으로만 묘사되고 실제로도 악당의 모습만이 있다.

아쉽게도..., 만약 젠틀먼이 조금만 더 매력적인 악당일 수 있었다면 더 이야기가 흥미진진 했을텐데... 아마도 모드와 수전의 관계에 집중하려 했을듯)의 음모의 중심에 있게 된다. 소설의 첫 1부는 수전의 관점에서, 2부는 모드, 최종 3부는 다시 수전으로 돌아가 서술되는데, 수전에 의해 보아지고 이해 되었던 인물과 사건, 장면들은, 다시 모드의 입장에서 이야기 되어지면서 서서히 진실로 독자들을 이끌어 간다.

1,2부는 수전과 모드를 통해서 두 인물이 바라보는 서로에 대한 이미지들은 내 눈앞에서 그려질정도로 선명하게 묘사된다. 심지어는, 두사람이 주고받았던 어떤 행동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과 그 촉감에 대한 묘사에서는, 마치 내 입술 내 손가락에 가해지는 감각인듯 생명력이 있다.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쥔 한없이 자애롭지만 한없이 잔인한 석스비 부인과, 모드와 수전에게 서로 다른 음모를 꾸미고, 모든 것을 알았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젠틀먼 또한, 그의 얼굴과 손가락, 치아 까지도 눈에 그려지듯 생생하게 묘사되고 그들의 작은 떨림, 한숨, 소근거림 까지도 전달되는 듯하다.

내게 가장 충격이었던 인물인, 모드의 삼촌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서재에 엄청난 양의 고서와 희귀서적을 수집하여 가져다 놓고 그 책들이 변색 될까봐 온 집안의 빛을 차단하며 책을 관리하고 본인의 저작을 돕는 질녀 모드에게 책장을 보호하기 위한 방식으로 평생 장갑을 끼게 만든다. 정기적으로 신사들을 초대해 모드에게 한시간 이상 책을 읽게 하고, 오직 책과 그림 속에 박혀 사는 '학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그가 가지고, 쓰고 읽고 감상하는 책과 그림은 모두 '음란'물 이라는 것. 어떤 영화나 책 속에서도 본 적 없는 이 독특한 캐릭터를 진정한 변태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육체적으로 탐닉하고 육체적으로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도, 평생 모드를 감금하고 착취하고 농락하며 세상 어디에도 갈 수 없도록 만든, 이 책 속에 나오는 모든 악당 중의 최고 악당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삼촌이 보유한 책들은 실재한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변태들 천지다.

박찬욱 감독님이 왜 이 소설을 보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지만 중간에는 영화고 박찬욱이고 다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 다시 돌아가 읽어보고 줄을 그을 수 있을만큼 훌륭한 문장들이 아주 많다.

오로지 사건 중심으로 쉴 새 없이 질주하는 책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을 각각의 시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그려나가는 책이므로 사건 위주로 대한다면 지루해질 수도 있으므로, 그보다는 각 인물의 눈으로 보여지는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그들만의 감상에 집중하며 읽을 것을 권한다.

영화를 먼저 보고 읽으면 아마도 고착된 이미지 때문에 몰입이 힘들 수도 있으니 책을 읽으려면 영화를 보기전에 볼 것. 자칫하면 김민희나 하정우 얼굴이 자꾸 떠올라 중간에 책을 덮어버릴지도 모르니.

한 사나흘 아무 생각없이 아무 걱정없이 한 곳에 집중하기를 바란다면... ****

Sort:  

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예전영화지만 못봤는데 대부분 원작이 좋기도 하고
몰입도 높은 책이 그리웠는데 리뷰 감사해요^^

넵 감사합니다 ^^

아 책이 원작이였군요....영화를 재밌게 봐서 줄거리 써주신것들을 읽으면서 김민희, 하정우, 김태리 얼굴이 생각나고 또 삼촌에서는 자연스럽게 조진웅 얼굴이 딱 떠오르는걸 봐서는 정말 고착된 이미지가 정착되었구나 다시 한번 생각되네요..ㅠㅠ

하하하 맞아요 모든 영화화 된 책이 다 그래요 주인공들 얼굴이 딱 떠올라서 ㅎㅎ

음.... 전 영화로만 봤지 책은 읽어보지 못했네요.... 나중에 골아픈 일이 있을때 정신이 가출하고플때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영화를 먼저 보셨대도 다시 읽으면 새로운 이야기일 수 있어요. 세라워터스가 영화를 보고 원작이라 하지말고 inspired by라고 해달라고 했다지요.

앗! 핑거스미스 저도 읽었던 책이네요!
전 영화는 못봤고, 친구가 이 책을 선물해줘서 몇년전에 책만 읽었었어요 ㅎㅎㅎ
오래전이라 가물가물하지만 꽤 잼나게 읽었던 기억은 나네요^^

네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팔은 좀 괜찮으신지요... ㅎㅎ

와! 전 영화 핑거스미스로 보았어요. 제 인생영화중 하나가 될 만큼 대단히 매력적이었죠. 연기력도 끝내줬고요. 주연들도 대단했지만 석스비부인,.....완전 ㅎㄷㄷ....
그리고 나중에 아가씨를 보았는데...상당히 다르지만 매우 역작이었다고 생각되네요. 좋았어요!
제가 이렇게 핑거스미스를 좋아했는데 주변엔 아무도 이 영화를 봤다는 사람을 못봤었죠.
그리고 지금-북키퍼님의 포스팅 앞에 앉아서 미소짓고 있네요.

영화 스틸을 보니 샐리호킨스네요!! 연기는 말 다했죠 그럼. 책도 훌륭하고 아가씨 영화도 훌륭했어요. 원작에 충실하지만 완전히 따르지는 않은 연출, 박찬은 감독 특유의 연출이 대단했습니다. 제 글을 보고 미소 지으셨다니 기쁩니다.

이 책 궁금한데요 .
하루면 볼수 잇을까요?

흠... 작정하고 읽으면 아무것도 안하고... 가능할 것도 같은데... 쉬지 않고 읽으면? 근데 워낙 두꺼운 책이라 좀 힘들듯요? 술술 읽히기는 하는데, 일상 생활 중에는 하루만에 읽기 좀 힘들고 같아요

아~~ 책 빌렸는데. 엄청 두껍네요 ㅎㄷㄷ
일주일에 다 읽기도 힘들겠는데요 ^^

이 책이 원작이었군요. 저는 영화를 봐 버렸는데 참 독특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넵! 개털님 오늘도 방문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파워가 낮아서 보팅을 못하고 가서 죄송합니다. 내일쯤 회복이 되면 보팅도 좀 하고 가겠습니다.^^

그마음 잘 알지요... 개의치 마세요. 오시는 것 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앗!! 책으로 읽으셨나보네요.
저도 책으로 읽고 영화로 읽었었습니다.
국내판격인 아가씨는 아직 못봤는데 한번 도전해 봐야겠네요 :)

아 원작 영화를 보신 모양이군요. 세라워터스가 아가씨를 보고 전혀 다르다고 하고 극찬했다고 하니 영화도 훌륭하거라 믿어요^^

역시 빨간책방! ^^
저도 방송을 듣고 혹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긴 책이라 읽을까 말까 망설였어요. 영화는 아직 못 봤고요. 그런데 북키퍼님 글 읽고 보니 더 읽고 싶어지네요.

빨책러 찜뽕!ㅋㅋ 거기 소개된 책은 거의 다 읽었어요. 보통 방송은 책을 다 보고 들었어요. 근데 너무 그쪽 책만 보다보니 시야가 좁아지는거 같아 요즘은 안보고 있는데 방송은 계속 들어요 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29
TRX 0.12
JST 0.033
BTC 63457.41
ETH 3119.12
USDT 1.00
SBD 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