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이야기

in #krlast month (edited)

레슨 끝나고 잠깐 누웠는데 세 시간이나 잤다. 너무 자서 멍한 상태와 하루가 다 갔다는 당혹함. 괜히 핸드폰으로 맛집 키워드를 넣어 이것저것 찾아 본다. 생각 없이 맛있는 음식이나 잔뜩 입에 넣고 싶은 기분.

한참을 누워있다 일 관련 전화가 와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적을 게 있어 책상 앞으로 와야 했다. 의자에 앉아 다시 멍 때리는 오후, 갑자기 동기에게 카톡이 왔다.


우린 대학 때는 전혀 친하지 않았다. 나는 친해지고 싶었지만 서로의 결이 달랐다. 동기와 함께한 기억은 낡은 3층 연습실에서 30분 남짓 함께 있었던 게 전부. 서로 연주를 들려주며 음악 취향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은데, "저 오래된 음악도 좋아해요"라고 했던 말만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졸업하고 공연장에서 한 번 더 만났다. 그때 나는 그 공연의 연주자였는데, 공연을 한 이유는 교수님을 돕기 위함이 전부라 거기에 걔가 왔다는 사실이 무척 부끄러웠다. (그 동기는 출석 인정 때문에 그 공연에 온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후로도 한 번 더 만난 적이 있다. 지인의 공연에 그 동기가 또 왔다. 나는 피아노 반주자였는데 나보다 훨씬 피아노를 잘 치는 그 친구가 본다는 생각에 수치스러워 피아노를 제대로 치기나 했는지... 그랬던 기억도 있다.

친하지도 않았는데 동기는 매번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볼 때마다 누나 너무 멋있어요(뭐가 멋있는진 나도 모르겠지만)라고 했다. 난 그 말이 당연히 그냥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실제로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왜냐면 내가 생각하는 걔도 멋있었으니까)


전혀 사적인 교류가 없었던 우리에게 새로운 관계가 생기기 시작한 건 가끔 올리는 인스타 글에 그 친구가 댓글을 다는 일이었다. 친하지 않은데도 친한 듯 댓글을 달아줬다. 그게 고마웠다.

피아노 전공인 친구는 갑자기 힙합을 하겠다며 이름을 바꾸고 머리를 기르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듣던 그 친구의 연주랑은 전혀 달랐다. 내 주위에 그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동기가 하는 음악은 언젠가 나도 꼭 해보고 싶은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며칠 전 인스타에 글을 올렸는데 그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그 다음 날, 카톡에 생일이라며 그 친구의 이름이 떴다. 나도 친하지도 않으면서 괜한 가까움을 느껴 축하 인사와 함께 간단한 진심을 적어 보냈다.

카톡을 보낸 것도 잊고 있던 오늘에서야 늦은 답장이 왔다. 그 내용 중엔 내가 진심으로 멋있게 살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좋다는, 학교에서 만난 나보다 훨씬 더 멋있다는 말이 있었다.

학교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졸업 후의 망가진 모습도 함께 떠올려 본다. 학교에서는 즐거웠던 기억도 많지만, 그만큼 나를 괴롭게 한 기억도 많다. 생각지도 못한, 한 시절을 공유한 사람의 감상은 나를 울컥하게 한다. '역시 학교에선 멋지지 않았어'라는 생각과 '역시 그때보단 멋있어졌어'라는 안도가 동시에 든다.

예정에 없던 긴 낮잠 때문에 센치한 감정에 젖게 되는 오후. 열심히 살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음악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