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은 추억을 타고 - (오스트리아편)

in #kr-travel6 years ago

디즈니 성으로 유명한 독일 남부의 퓌센 지방의 '노인슈타슈바인 성'을 보러 가기 위해 눈이 내리던 겨울 다시 뮌헨을 찾았다. '노인슈타슈바인 성'은 꼭 겨울에 봐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껴두다가 겨울에 유럽을 가게 되었을 때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때가 여행을 시작하고 60일이 되어갈 때쯤이었다.

장기 여행을 하는 경우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꼭 쉬는 시간을 가진다. 몸이 탈이 나서 여행일정을 모두 망치거나, 또는 장기로 움직이지 못할 경우 여행이 어떻게 엉망이 되는지 겪어본 뒤로는 꼭 쉬는 시간을 갖는다. 쉴 때는 호텔에서 놀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아무 기차나 타러 나간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패스를 끊어 기차를 주로 타러 나가는 편이다. 차창 밖을 바라보는 것이 참 좋다.

미니 학센

코카콜라



뮌헨 역사에서 산 학센과 콜라를 먹고 나니 배가 불러오고, 추운 밖과 달리 따뜻한 열차 내에 앉아 있으니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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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자고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잤다. 나도 모르게 독일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갔었다. 열차의 종점은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였다. 잘츠부르크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기에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어 따로 관광하지 않고 다시 뮌헨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실으려 한 찰나

할슈타트 이름을 보고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할슈타트가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던 시기여서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있어 구미가 당겼다. 앉은 자리에서 툴툴 털고 일어나 할슈타트행 기차를 타러 플랫폼으로 걸어갔다.


약 1시간 40분을 달려 할슈타트에 도착했다.

조용한 겨울의 호수마을은 관광객도 거의 없어 쥐죽은 듯 조용했다. 가끔 카페에서만 사람의 목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내가 찾던 그런 곳이었다. 인기척조차 잘 없는 아주 조용한 마을에서 마시는 카푸치노 한 잔. 입소문으로 유명해서 너무 기대한 탓일지도 모르나 내심 실망했었다. (가을에 한 번 와보고 싶긴 하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둘러보는 데는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산으로 올려주는 케이블카(?) 도 휴업이고,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도 중간 이후부턴 막혀있었다. 한 카페에 혼자 오래 앉아 있으니, 카페 주인아주머니께서 계속 먹을 것을 내어줬다. 괜찮다 하여도 손님도 없고, 내일이면 버려야 하니 그냥 먹으라고 내어주고 포장까지 해주었다. 역시 여행은 비수기 때 와야해 나도 미안해서 가게에서 파는 마그넷과 수공예품 일부를 구매하긴 했지만, 그 마음에 비교할 수는 없었다.


겨울의 저녁은 일찍 찾아왔다. 6시 30분이 되니 어둑어둑해졌고, 온 지 3시간 만에 떠나려니 아쉬워 숙박하기로 마음먹었다. 뮌헨에 숙소가 있지만 그냥 놓아두고 하루 온전히 할슈타트에서 놀다 돌아갈 마음에 호수 앞 호텔에 워크인을 했다. 방이 있냐고 물어보니 방이 있다고 한다. 방을 하나 달라고 하고 카드를 주고 계산을 하고 나니 여권을 달라고 한다. 당연히 있을 거로 생각했던 여권이 없다. 독일에 두고 왔다.

여권이 없으면 숙박할 수 없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사실 오스트리아에 넘어올 마음도 없었고 기차나 타면서 바깥 풍경이나 볼 마음에 나섰던 나들이였기에, 유레일패스와 지갑, 핸드폰 이외 아무것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뮌헨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할슈타트를 떠나는 마지막 배를 기다리며 아쉬운 마음이 계속 남는다. 당연히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핸드폰 사진에 여권 사진이 있는 것을 어필해보았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해서 기차에 올라타려는데 모든 문이 막혀있고 오직 문 하나만 열어두었다. 다가가 올라타려 하니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한다. 아.. 망했다. 차분히 여권은 독일에 두고 왔다고 말하고 핸드폰에 여권 사진이 있다고 했다. 일단 보여달라고 한다. 보여주니 호텔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지갑에 호텔 키가 있었기에 꺼내어 보내주면서 여기에 묵는다고 했다. 호텔 예약서를 보여달라기에 호텔 예약사이트에서 예약한 내역을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호텔에 확인을 해보겠다고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알겠다고 말을 하고 기다리는 사이 같이 있던 다른 직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여권을 왜 두고 왔어?"
"나 사실 여기 올 마음이 없었는데, 기차 타다 잠들어서 깨어보니 여기였어."
"하하하, 진짜?"
"응, 그런데 여권 검사도 안 하더니 오늘따라 무슨 일이야?"
"독일에서 테러가 있었어, 그래서 독일로 들어가는 모든 차량을 검사 중이야."
"어? 진짜?? 큰 테러였어??"
"아니, 시도하다가 실패했나 보더라고."

그런 대화가 오가는 사이 전화를 걸러 갔던 직원이 심각한 얼굴로 다가온다.
"너 진짜 묵는 호텔이 어디야?"
"거기 맞는데? 뮌헨에."
"내가 전화해봤는데, 너 오늘 체크아웃했다던데?"
"무슨소리야, 아까 내가 예약서 보여줬자나, 나 2일이나 거기서 더 묵는데?"
"다시 전화해볼 테니까 기다려, 호텔 몇 호실이야?"
"302호"

자기들끼리 막 독일어로 이야기를 하더니 얼굴이 더욱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같이 이야기하던 직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느꼈는지 더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너 체크아웃 했다는데?"
"그럴 리 없어, 줘봐 내가 통화 해볼게."
"안 돼, 너는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진짜 맞다니까? 내가 허락 할 테니까 호텔 직원보고 내 방에 들어가 보라고 하면 되잖아, 거기 내 여권이랑 모든 것이 다 있으니까."
잠시 또 독일어로 대화를 하더니
"직원이 안 들어간대."
"왜?"
"싫데."
"그럼 나 어떻게 해?"
"기차 못 타지."
"내 모든 짐과 여권과 돈이 독일에 다 있는데?"
"일단 따라와."


그렇게 잘츠부르크 역사로 끌려가서 조사를 다 받고 결론은 오늘 밤에는 못 보내주겠다는 거였다. 잘츠부르크에서 뮌헨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영차 7도의 눈 내리는 밤을 노숙했다. 세상 그렇게 추운 날이 없었다. 하염없이 새어 들어오는 찬 바람이 뼈까지 시릴 정도였다. 눈이 내리는 그 밤이 어찌나 긴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음 날 아침 첫차를 타러 가니 그 인간들이 다시 있었다. 그리고 이번 열차는 안 되고 다음 열차를 타고 보내주겠다고는 했지만, 서약서를 썼다. 만약 독일로 넘어가서 문제가 있으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경찰에 잡히면 벌금이 크니 조심하라는 내용도 덧붙여 주었다. 그가 내게 한 말이 아직 기억한다.


"네가 무슬림이나 아프리카인이 아닌 한국인인 걸 다행으로 알아."


뮌헨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경찰이 한 번 열차에 올라탔다. 다행(?)으로 같은 칸에 있던 인도인만 검사하고 넘어갔다. 어찌나 두근대던지, 가슴이 터질 듯한 느낌이었다. 나로선 다행이지만 차별은 저런 것인가 싶었다. 뮌헨으로 돌아와 곧장 호텔 로비로 향했다. 어제 전화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고 한 여자 직원이 자신이라며 이야기했다. 왜 체크아웃하지 않았는데 체크아웃을 했다고 말했냐고 물으니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 자신이 착각했다고 대답했다. 내가 고생을 했다고 이야기하니, 자신의 실수가 있었고 미안하지만, 여권을 가지고 가지 않은 네 잘못이 크다고 했다. 맞는 말이기에 더 반박할 수 없었다.

머물던 독일 호텔에는 자쿠지가 있어 몸을 녹였다. 세상에 유럽에서 자쿠지에 몸담고 이렇게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감기로 3일을 고생했다. 멍청함에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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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다니세요? 외로울 것 같은데요....

단기여행은 같이 다니지만 장기여행은 혼자 다닙니다. 정해놓고 여행하는 편도 아니고, 관광지를 주로 다니지도 않아서 여행 스타일이 맞는 분이 잘 없어서 ㅎㅎ
혼자 다닌지 오래 되서 오히려 편합니다 ^^;

역시 고수님은 혼자가 답이네요. 전 왜 혼자가기가 싫을까요?

독일의 슈바인학센 저도 정말 맛있게 먹었었는데 사진보니 다시 생각나네요.
오스트리아도 정말 아름답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가셔서 정말 dog고생 하셨군요.^^;;
그래도 읽는 저에게는 한편의 소설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하는군요.^^;;

학센과 맥주의 조합은 세상 행복하죠? ㅎㅎㅎㅎㅎ
오스트리아 정말 아름답습니다 :) 한 번 들러보세요!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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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합니다 오치님

독일놈들이 나빴네요! 오스트리아는 죄가 없다. 잘츠부르크는 잘못이 없다.

융통성 없는 녀석들! 흥!ㅋㅋ

세상에 눈오는날 기차역에서 노숙이라니요 ㅠㅠ
엄청 추우셨을텐데 정말 고생하셨네요.
근데 독일 호텔 직원도 참 꼼꼼히 체크하고 알려줘야지 너무 하네요.

그나저나 할슈타트는 겨울에도 참 분위기있게 아름답네요.
저는 예전에 봄에 다녀온적이 있는데 다른 계절에도 가보고 싶어요~

+_+ 포스팅 기다릴게요! 궁금해요 어떤 모습일지!!

결혼전에 다녀온거라 ㅠㅠ 넘 까마득하네요. ㅎㅎ

보... 보고 싶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얼마나 오랜시간 여행을 하셨기에 60일되어 갈쯤이라니...
여권...ㅎㅎ 그래도 말이 통하시니 정말 다행이네요!!
제거 저런 일이 있을까봐 여행을 못가요~ ㅋㅋㅋㅋㅋㅋㅋ

이불 밖은 위험하죠!?ㅋㅋ
90일 조금 넘게 여행했던 시기였습니다 ㅎㅎ

ㅠㅜ
고생하셨어요.
읽으며서 제 가슴이 쿵쾅대네요.
이것은 스릴러물인가???

저도 저 당시에는 겨울인데 식은땀이 나고 했답니다 ㅎㅎㅎ

헙...여권의 소중함을 느끼셨던 하루셨군요~ 전 비수기에 사람없는 여행지가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저도!! +_+ 계속 산으로 섬으로 가는 이유가..ㅎㅎㅎㅎ

ㅋㅋㅋ맞아요...점점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서 ㅋㅋㅋ

아이고 맘고생 몸고생이 엄청 심했겠습니다. ㅠㅠ
그래도 글에 대화가 오고갔다는거에 @sinner264 님에게 경외심이 드네요. 저는 언어를 못하니 만에 하나 저런 상황이면 어쩌나 싶어요 ~

생존영어입니다. ㅎㅎ 고급진 말은 못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할 정도에요 ㅎㅎ

설산의 풍경이라 겨울왕국 같은걸요 ㅋㅋ

이쁘죠?ㅎㅎ 여름 가을에는 못봐서 모르겠는데, 꽤 이쁩니다. 분위기도 좋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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