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6

in #kr-series5 years ago (edited)

연과 나는 진전 없이 썸만 타던 중이었지만 주위에선 둘이 사귀는 거 아니었냐고 할 정도로 우린 친해졌다. 연 친구들은 그만 좀 하고 사귀라고 했지만 더 나가진 못했다. 2층엔 연의 학교 친구가 세 명 더 있었는데 한 명은 연의 절친이었다. 난 연과 친해지면서 연의 절친과도 친해졌다. 연의 절친은 시를 좋아해서 나와 코드가 잘 맞기도 했다.

한창 일하고 있는데 홀이 소란스러웠다. 주방과 홀의 경계인 공간, 그러니까 음식이 나가기도 하고, 반찬을 담기도 하는 공간이 소란스러웠다. 그래서 가봤다. 헛... 난 순간 놀라고 말았다. 내가 아는 얼굴. 작년에 연과 사귄 남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왜 왔지? 둘이 헤어진 거 아니었어? 날 발견한 연 절친이 내게 달려왔다.

"오빠, 오빠. 어떡해요. 걔 왔어요. 연이 걔 못 잊고 있었거든요. 어떡하면 좋아요."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헤어졌다며. 얼굴 한 번 보러 왔을 수도 있지.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절친 말로는 연이 나와 계속 썸만 타면서 더 다가가지 않은 이유가 전 남자친구를 못 잊어서였다고.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내가 부끄러웠다. 연이 전 남자친구와 사귀던 시기에 나도 사귀던 여자가 있었고, 난 벌써 잊어버린. 그녀의 친구들이 나와 그녀를 한 번 만나게 해줬지만 그걸로 끝이었지. 나는 왜 잊었을까. 기억력이 나빠서? 그냥 잘 잊는 성격이라서? 좋아하지 않아서? 덜 좋아해서? 매정한 사람이라서? 의리고는 쥐꼬리만큼도 없어서? 나와 연이 너무 비교됐다.

난 아이도 잊고 살았다. 다 잊고 살았다. 머리가 나쁜 걸까, 원래 성격이 그런 걸까. 아니면 정말 마음이 차가운 사람인 걸까. 이유가 어떤 것이든 난 내가 싫었다. 더러워 보였다. 더러운 인간. 잊어버리다니. 잊고 살다니. 속물. 개놈. 나를 욕했다. 내가 미웠다. 내가 더러웠다. 나이 들어 마흔이 넘어 생각해보니, 앞에 언급한 세 가지(머리가 나빠서, 원래 성격이 그래서, 마음이 차가워서)의 복합이 아닌가 싶다. 아내가 가끔 말하길 '오빤 냉정한데 어떤 땐 마음이 차가운 사람처럼 냉정해. 특히 내 가족을 우선순위로 두고는 남에게 심하다고 할 정도로 차가워. 그래서 오빠가 좋아.'라고도 했을 정도다. 난 내 편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더러운 성격을 갖고 있던 거였다. 내 편이라면 무조건 우선이었다. 남에게 냉정하게 하면서도 일단 내 편은 우선이었다. 전 회인가 전전 회에서도 내 부하직원들에게 그렇게 했던 건 내 편이어서다. 난 가끔 이런 질문을 하곤 하는데 '만약 뉴스에 살인자 공개수배라고 하면서 내 얼굴이 떴어. 그런데 내가 네게 전화해서는 아니다, 난 안 죽였다. 나 좀 숨겨줘.'라고 하면 날 숨겨주겠느냐.'라고 묻곤 한다. 난 숨겨준다고 한 사람을 무한히 믿는 장애가 있다. 후훗... 그런데 내 절친은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아야지. 안 숨겨줄 거야.'라고 했다. 그래서 내 절친이다. (내가 가끔 언급하는 그 절친에 대해 얘기할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죽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유는 비밀이다. 커피값 들고 와도 말해줄 수 없다. 아,,, 뻔뻔님들은 안다. 이런.)

일하는 내내 밖은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난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기분이 나빴다. 그놈이 나타나서 기분이 나빴다. 그놈으로 인해 내가 더러워 보였다. 내가 속물로 보였다. 아니, 그동안 감춰져 있던 내 안의 더러움과 속물근성이 밖으로 드러났고, 난 내 더러움이 역겨웠다. 구역질 나도록 역겨웠다.

"오빠 어떡해요."

연의 절친이 눈물을 흘렸다. 나와 연이 이어지도록 누구보다 힘쓴 연 절친이었다. 연의 절친이 내게 와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먹였다.

"오빠, 연이가 걔랑 손잡고 나갔어. 먼저 퇴근했어요."

난 담담했다. 내가 막을 수도 없을뿐더러, 막을 자격도 없었다. 난 속물이었다.

"오빠, 오빠 너무 불쌍해서 어떡해요. 오빠, 오빠 이러면 안 돼요. 오빠가 차이는 건 너무 슬퍼요."

그러자 연의 친구 둘이 더 내게로 왔다. 둘 중의 한 명은 슬픈 얼굴이었고 한 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미 많이 울어서 얼굴이 눈물범벅이 돼 있었다. 그 애를 '미'라고 부르겠다.

"오빠, 오빠가 이럴 순 없어요. 연이가 오빠를 찰 거예요. 우리 오빠가 차이는 건 볼 수 없어요."

미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말했는데, 나는 이 상황이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해는 됐다. 난 연과 연 친구들에겐 우상 같은 존재였던 걸로 기억한다. 연 친구들은 마치 연예인 좋아하듯 날 좋아했다. 내가 많이 건너뛰긴 했는데, 연과 썸을 타는 한 달 동안 우린 많이 어울려 다녔는데, 소풍도 가고 할 정도로 잘 어울려 놀았다. 연의 친구 셋은 날 마치 연예인 대하듯 우상처럼 대했고 그런 이유로 연 친구들은 내가 절대 차여선 안 된다고 말하며 울었다.

연과 썸을 타기 전에도 한 명과 썸 비슷한 걸 하다가 끝난 적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슬프거나 괴롭진 않았다. 나보다 키가 크고 목소리가 허스키한 중3 여자애였다. 난 나보다 키가 큰 여자와는 말을 섞기 싫어하는 장애가 있어서 별 관심을 안 가진 애였고, 보통 아르바이트생들처럼 대하지도 못했던 거로 기억한다. 장애다. 나보다 키 큰 여자가 거북스러운 건. 그 애는 내가 다른 아르바이트생들 대하듯 안 해서 서운했을 것도 같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편지를 하나 줬다. 쪽지 모양으로 곱게 접은 한 장의 편지였다. 수업 시간인지 쉬는 시간인지 아니면 조금씩 종일 쓴 편진지 모를 내용의 편지였다. 아,,, 나의 펜팔 근성. 편지를 받았으니 답장을 해야 하는데... 뭐라고 쓰지... 당연히 답장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난 의무적으로 답장을 써줬다. 그 애는 그날 후로 내게 적극적이 됐다. 키가 커서 전혀 귀엽지 않다는 생각은 내 편견이라는 듯 그 애는 무척이나 귀여웠다. 애교도 많았고 자꾸 내게 뭘 해달라고 했다. 네 살이나 어려서 그랬는지 동생 같고 귀여워서 해달라는 걸 해주곤 했다. 무얼 하자고 날 끌고 다녀서 따라다니기도 했다. 겨울이라서 날도 상당히 추운 날엔 바람을 피하겠다며 내 등 뒤로 숨는 놀이를 자주 하곤 했는데, 그러면서 내게 '오빠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찬바람을 막아줬잖아.'라고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난 그때야 얘가 날 좋아하나? 싶었다. 이 생각을 한참 만에야 한 이유는 얘 친구들을 알기 때문이다. 얘 친구들은 다 날라리였고, 얘도 비슷하게 보여서였다. 팬티가 다 보일 정도로 내려 입은 바지에 배꼽이 아니라 배가 다 보일 정도의 상의를 입고 돌아다녔는데, 그때가 한겨울이었다. (요즘이야 초등학생도 화장하지만) 중3인데도 화장을 하고 다녔고 입도 조금 거칠었다. 원래 나이는 고1이어야 할 타이었지만 학교를 1년 쉬었다고 했고, 이유는 병 때문이었다고. 병명은 알려주지 않았다. 이 애는 '정'을 알고 있었다. 정과 사귈 때도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선 공부 안 하고 편지를 써서는 내게 주고, 일 끝나면 집이 반대 방향인데도 바래다 달라고 했던 그 애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차갑게 대했다. 아니, 내가 장난감도 아니고, 가지고 놀다가 버리는 것도 아니고, 뭐지? 난 그 애에게 나에게 화난 게 있느냐고 했지만 몰라도 된다며 앞으로 말 걸지 말라고 했고, 얼마 후 그만뒀다. 그리고 얼마 뒤에 연이 다시 일한다며 나타난 것이다. 이 애와의 일 때문에 내가 연에게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도 같다.

다음날 연은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날 보면 웃으면서 수줍어했던 연은 하루 만에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날 못 본 척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나였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끝났다는 것을. 사귀지도 않았는데 슬퍼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몰랐다. 그 당시 내 감정은 복잡 그 자체였다. 난 차였다는 슬픔과 내가 아이를 잊고 살았다는 더러움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런 혼란으로 인해 다시 술을 퍼마셨다. 연과 썸을 타면서 끊었던 술을 한 달 만에 다시 퍼마셨다. 한 달 전엔 소주 한 병을 냉면 그릇에 담아 원샷하면 끊이었지만, 이젠 그걸로는 안 됐다. 더 마셨다. 소주도 마시고 맥주도 마시고 취할 정도로 마셔서는 비몽사몽으로 집에 갔다. 택시에 토하고 길바닥에 누워서 자기도 했다.

연은 전 남자친구와 다시 사귀기로 했고 전 남자친구는 매일 10시에 가게 앞으로 연을 마중 나왔다.

"오빠, 지금 내려가면 안 돼요."

"왜?"

"밑에 걔 있어요. 연 기다리고 있어요."

"괜찮아. 뭐 어때."

난 괜찮다며 1층으로 내려갔고 연 남자 친구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내게 인사를 했다. 난 무시했다.

여름 냉면 장사를 하는 동안 난 살이 쭉 빠져서 46킬로가 됐고 지쳐 있었다. 몸도 지쳐 있었고 마음도 지쳐 있었고 정신도 망가져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가 시작됐고 해가 지면 술을 퍼마셨다. 그런 와중에도 연의 친구들은 날 위로한다고 내게 와서 조잘거리며 웃어주려고 했고, 연의 친구 미는 매일같이 내게 편지를 써서 줬다. 미는 '나 편지 쓰는 거 좋아하는데, 저랑 펜팔 안 할래요?'라며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난 답장은 해야 하는 장애가 있어서 꼬박꼬박 답장을 써줬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 8월 31일. 날짜까지 기억한다.

회식한다며 지하 호프에 모두 모여 있다고 연락이 왔다. 난 주방 마무리를 하고 이미 소주 한 병을 원샷한 후였다. 안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홀 누나가 그러지 말고 앉았다 가라며 날 데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거기엔 홀 직원들과 주방 형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연과 연 남자 친구도 있었다. 연 친구들은 날 보고는 당황해했다. 그리고 연 절친이 내게 달려왔다.

"오빠, 가세요. 오빠, 나 오빠가 슬퍼하는 거 더 못 봐요. 그러니까 가면 안 돼요?"

"맥주 한 잔만 마시고 갈 거야."

난 자리에 앉았다. 연의 친구 셋은 서로 눈치를 보며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야, 너 왜 이렇게 늦게 오냐. 벌칙으로 500 한잔 원샷 해."

주방 형의 말에 난 내 앞에 있는 2천 밀리 짜리 피처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마셔대기 시작했다.

"야, 그거 말고 500!"

난 무시했다. 그냥 마셨다. 들이부었다. 계속 마셨다. 배가 터질 것 같았고 목구멍이 따가웠다. 그래도 마셨다. 다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빠, 왜 이래요. 오빠, 이러지 말아요. 네?"

연의 절친이 내 옆에서 울먹이며 날 말렸다.

"오빠, 오빠. 왜 이래. 이러면 나 오빠 안 볼 거야. 그만해."

들리지 않았다. 아니, 못 들은 척했다.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단 한 번도 안 쉬고 2천 밀리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셔버렸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갈게요."

분명 앞으로 걸었지만 앞으로 잘 걸어지지 않았다. 그런 내게 연의 절친과 미가 달려와서는 한쪽 팔씩 붙잡았다.

"오빠~~. 오빠 왜 그래."

연의 절친은 계속 울어댔고 미는 내가 바로 걷도록 하려고 애썼다. 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추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부끄러웠다. 더럽고 부끄러웠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나쁜 사람은 없으리라. 내가 가장 나빴다.

"혼자 갈 수 있어. 놔."

내 말에 연의 절친은 자리로 돌아갔고 미는 밖으로 나가서는 택시를 잡아 날 태워 보냈다. 추했다. 내가 추했다. 보여주지 말아야 할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마셨어도 똑바로 걸어야 했다. 그런데 난 바로 걷지 못했다. 바로 살지 못했다. 바로 생각하지 못했고 바로 행동하지 못했다. 난 바른 사람이 아니었다. 삐뚤어진 사람. 저질. 속물.

다음날 난 평소대로 9시에 출근했다. 머리가 깨질 듯 했고 비몽사몽이었다. 난 평소대로 출근하자마자 냉면가마 불을 켜기 위해 가스를 열고 기다란 라이터를 댔다. 라이터에서 불꽃이 나오지 않았다. 가스가 없나? 난 가스 밸브를 잠그고 홀로 나가서는 다른 라이터를 들고는 딱딱 누르며 주방으로 향했다. 불이 잘 켜졌다. 딱딱 누르며 주방으로 가던 중 갑자기 폭발음이 들렸다.

펑~~~

영화에서 봤던 폭탄이 터지는 장면이 리얼하게 내 앞에 펼쳐졌다. 시뻘건 불이 화~~악 하며 일어났고 그 불은 내 몸을 감싸며 휘감았다. 내가 미친놈이었다. 1년을 넘게 켠 냉면가마, 1년을 넘게 다룬 냉면가마. 그런데 밸브를 반대로 돌리다니. 난 밸브를 잠근 게 아니라 완전하게 100% 열어놨던 것이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너무 따가웠다. 미치도록 아팠다. 그렇게 난 응급실에 실려 갔다.

(또또통 발췌)

겨우 도착한 식당. 난 옷을 갈아입고 탈의실 방바닥에 잠시 누워 생각했다. 이대로 잘까? 머리 아프다고 조퇴한다고 할까? 여름 냉면 장사도 끝난 9월 1일. 내가 쉬어도 문제는 없겠지. 난 자리에서 일어나 2층 주방으로 내려갔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냉면 가마에 불을 켜는 것. 물이 끓으려면 한 시간은 걸렸기에 출근하자마자 켜야 했다. 난 기다란 라이터를 들고는 냉면 가마로 다가가서 가스를 살짝 열었다. 가스 구멍이 사람 손가락도 들어갈 정도로 컸기에 조심해야 했다. 가스를 열고는 라이터를 눌렀다. 어라. 안 켜지네. 가스가 없는 라이터였다. 난 가스 밸브를 잠그고는 라이터를 모아둔 주방 입구로 걸어갔다. 아무도 없는 주방. 늘 1등으로 출근하는 나였기에 주방은 조용했다. 난 가장 잘 켜지는 라이터 하나를 들고는 다시 냉면 가마로 걸어갔다. 불이 잘 들어오나 탁탁 누르면서. 불은 잘 켜졌다. 냉면 가마 근처쯤 왔을 때...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불이 나를 덮쳤다. 마치 영화에서 폭탄이 터지는 장면과 같았다. 불길이 나를 휘감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냉면 가마에서 시작된 불이 펑 소리와 함께 가마를 받치고 있던 구조물을 박살 냈고 난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있던 난 얼굴과 팔 그리고 다리에 화상을 입었다. 너무 따가워서 화장실로 달려갔고 난 물을 틀어놓고 피부를 식혔다. 일반 세면대가 아니라 대걸레를 빨 수 있는 커다란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을 식혔다. 너무 아팠다. 너무 따가웠다. 거울을 본 머리카락도 눈썹도 타서 그을려 있었다. 아~~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라이터를 탁탁 누르면서 걸어갔기에 냉면 가마에서 최대한 먼 곳에서 가스가 터졌으니까. 그런데 가스는 왜 새고 있었지? 난 다시 냉면 가마로 가서 확인했다. 가스 밸브는 열려 있었다. 아니 왜 열려 있는 거지? 난 분명 닫았는데. 1년 넘게 매일 켰던 냉면 가마 밸브를 반대로 돌렸다는 것 외엔 설명되지 않았다. 내가 왜 밸브를 반대로 돌렸지? 왜? 난 다시 팔과 다리의 고통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 어떡하지? 너무 아프고 화상 부위가 너무 넓었다. 그동안 주방에서 일하며 칼에도 많이 베이고 화상도 많이 입어봤지만, 그동안 다친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야, 너 왜 이래?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아,, 형. 저 죽을 것 같아요. 너무 아파요. 팔이랑 다리가 너무 따가워요."

"너 안 되겠다. 병원 가자. 어서 와."

부주방장은 날 데리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난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가까운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부주방장은 건물 입구에 오토바이를 내팽개치고는 안으로 달려 들어가며 응급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응급실 어디에요 어디."

따라 뛰어 들어가니 간호사들이 내 얼굴을 보곤 놀라며 날 응급실로 안내했다.

"여기 누우세요." 간호사는 날 침대에 눕히고는 바로 식염수를 화상 부위에 붓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연락해. 빨리."

난 통증 때문에 온몸이 비틀렸다. 너무 아파 몸을 비틀 수밖에 없었다.

"환자분 그렇게 움직이면 침대에서 떨어져요." 간호사는 내가 떨어질까 봐 나를 꽉 붙잡았다. "ㅇㅇ아, 식염수 더 가져와. 이게 다야? 전부 가져와."

식염수를 부을 때에만 통증이 덜했고 식염수 붓기를 멈추면 다시 통증이 몰려왔다. 난 그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몸을 비틀어댔고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어깨와 머리 허리까지 아팠지만 그 통증은 화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간호사는 내가 떨어지자 간호사들을 더 부르더니 내 팔과 다리를 잡으라고 했다.

"식염수 이게 다야? 더 가져와."

"그게 단데요."

"ㅇㅇ에 가면 있어 어서 빨리 가져와. 선생님은 연락 안 돼?"

"네. ㅇㅇ 선생님 지금 찾고 있어요."

"빨리 찾아와. 빨리. 야, 꽉 잡아. 떨어지잖아."

난 통증 때문에 몸에 경련이 왔다. 팔다리가 떨렸다. 그냥 이대로 침대와 함께 땅속으로 꺼져버리거나, 아무 물속에 나 뛰어들고 싶었다.

"아아~~ 아파요. 아아~~" 하지만 난 몸을 비틀어대며 아프다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몇 분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몇십 분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몇십 초가 지난 것 같기도 했다. 다시 화상 부위에 식염수가 부어졌고 난 다시 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의사도 달려왔다. 의사는 날 보자마자 상태 확인부터 했다.

"신체 면적 25%. 2도에서 3도 화상. ㅇㅇ 준비해주세요."

의사는 내 화상 부위에 생크림 같은 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바른다기보다는 그냥 처발랐다. 사람 얼굴만 한 통 안의 생크림 같은 크림들을 내 팔과 다리에 덕지덕지 바르고는 얼굴에도 발랐다. 그때야 통증이 조금 줄었다. 많이 줄진 않았지만 몸을 비틀 정도는 아니었고, 팔과 다리를 덜덜 떨 정도였다. 난 그때야 숨을 크게 쉬었다. 팔과 다리를 잘라버리고 싶을 만큼 아팠던 시간이 끝나 다행이라는 생각 외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처치가 끝나자 간호사가 이제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붕대 감아드릴게요."

난 감기는 붕대를 보고서야 화상 부위가 얼마나 넓은지 실감했다. 팔과 다리 전체가 붕대로 칭칭 감겼기 때문이다.

"밥은 먹어야 하니까 엄지손가락 하나만 빼놀게요."

"붕대를 이렇게나 많이 감아야 해요?"

"원래 화상 부위는 이렇게 감아요. 아까 많이 아팠죠? 잘 참으셨어요. 한 번 떨어지긴 했지만."

조금 뒤에 의사가 와서는 화상 부위가 너무 넓어서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화상은 화상보다는 2차 감염이 무서운 거라며 그래서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보호자에게 전화하라고. 입원 수속 밟으라고. 아~~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지? 할머니에게 전화하면 많이 놀라실 건데. 다시 들어온 간호사는 혈액 주사를 놔야 하는데 붕대를 칭칭 감아놔서 발등에 놓겠다며 정말로 발등에 주사를 놨다.

"저기, 전 제가 보호잔데 입원 수속은 어떻게 하죠?"

"아,,, 그 다리로 못 걸어 다니실 건데. 친구에게라도 연락해보세요."

(발췌 끝)

화상 부위는 너무 넓고 심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얼굴은 1도 화상이었다는 것. 팔과 다리엔 화상 흉터가 남았지만 얼굴엔 흉터가 전혀 남지 않았다. 하늘이 도왔다. 집에 가니 할머니께서 많이 놀라셨다. 난 잠을 청했다. 일단 쉬어야 했다. 팔과 다리가 너무 쑤시고 아팠다. 화상 고통은 의외로 심했다. 나중에야 사람이 가장 힘든 고통 중 하나가 화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저녁때쯤 전화가 왔다. 연의 친구 미였다. 미는 얼마나 다친 거냐며 걱정했다. 그리고 10시가 다 돼서 또 전화가 왔다. 2층에 일하는 '주'였다. (이름 한 글자로 정하는 거 은근 힘드네.) 의외였다. 주는 평소 말이 별로 없고 일만 하던 2학년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오늘 오빠가 안 보여서 이상했어요. 매일 보이던 오빠가 안 보이니까 쉬는 날인가 싶어서 물어봤더니 화상을 입어서 퇴근했다고 했어요. 많이 다친 거예요? 얼마나 다쳤어요? 얼마나 쉬어야 한대요?"

"어? 어. 신체 면적 25%에 2.5도 화상이라나.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 내일 큰 병원에 입원할 거야."

"2.5도요? 그거 심한 거죠? 아~~ 어떡해. 오빠, 내 삐삐번호 알려줄게요. 병원에 입원하면 병원 이름이랑 몇호인지 알려주세요. 병문안 갈게요."

(다음에 이어서...)

(아,,, 저기... 그런데...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헷갈리시죠? 저도 헷갈립니다. 이름을 한 글자로 부르다 보니, 저도 헷갈리네요. 흠... 나 왜 저렇게 많은 사람을 만난 거야? 이 식당에 일하면서 만난 사람이 아직 더 남았습니다. 아이고... 이런... 이름이 헷갈려도 그냥 보세요. 어쩔수 없죠 뭐. 만난 사람 중에 연하는 이번 꼭지로 끝이고요, 누나들이 더 있습니다. ^^ 서로 뒤섞여 있는 것 같아도, 마블 영화들 처럼 다 이어지긴 합니다. 나중에 다시 정리해야겠어요. 시간순으로. ㅠㅠ)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5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4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1

(2장은 공모전 시작과 동시에 삭제 예정입니다.)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6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5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4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1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6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5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4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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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르르 너무 슬퍼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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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핫,,, ^^ 저는 왜 슬픈 얘기만 쓰고 있는 걸까요? ㅡ.ㅡ^

지금까지 이런 소설은 없었다..
소설인가 사실인가?!!

다 읽은거야? 처음부터...?
난 너무 길어서 못 읽었....ㅋㅋㅋㅋ
다음에 요약 정리좀 부탁할께~

50회를 넘긴 또또통에 비하면 별로 안 길어요. ㅋㅋㅋㅋㅋ

소설입니다. 사실을 쓰고는 있는데,,, 제가 치매라서,,, 제 기억력은 저도 못 믿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 그래서 이 시리즈를 소설이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ㅎㅎㅎ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겠지요?^^

다치는일이요? ^^

두둥.. 마블유니버스도 더 복잡한 나하유니버스의 탄생. !!;;
한 번 봐선 잘 이해가 안갈 것 같은 건 제 머리탓이겠죠;;

여전히 나하님이 추한 이유를 1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 폭파장면을 정말 읽을 때마다 고통이에요;;어흑

아무래도 정리가 좀 필요한 듯... 합니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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