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1

in #kr-series5 years ago

몇 달 전부터 계획했던 글을 이제야 시작한다. 이 글은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더듬어 지금의 나까지 매우 긴 분량의 글을 쓰게 될 테니까. 자서전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에세이라고도 부를 수는 없다. 난 치매성 건망증 중증 환자이기 때문에 내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을 쓴다고 했지 사실을 쓴다고는 안 했다. 그래서 이 글은 소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제목을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이라고 지었다. 분량은 백과사전 3~4권 분량이 나올 것도 같다. 하지만 한 권으로 끝날 수도 있다. 내가 기억력이 워낙 나빠 기억 여행의 한계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나이 더 먹고 한 60살쯤 되면 쓰려던 계획을 변경했다. 내가 기억력이 나빠 자꾸 잊어버리고 있어서다. 앞으로 20년 뒤면 더 많이 잊어버릴 테고, 그럼 분량은 더 적어질 테니 독자로서는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아니지, 두 아들 육아 20년이 추가될 테니 더 좋은 일인가? 하지만 이 글을 몇 년 동안 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20년 동안 쓸지도 모르니까.

내가 군대에 가기 전까지 쓴 일기장은 모두 21권인가 23권인가 된다. 기억력의 한계로 21권인지 23권인지 헷갈리니 그냥 20여 권이라고 하겠다. 나중에 읽어보니, 일기장 내용 중 반 이상이 기억에 없었다. 일기장에 나오는 이름들이 누군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그 사람과 싸웠는데 그 사람 이름은 물론 싸운 기억도 없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럴 거면 일기 쓸 이유가 없잖아.' 마치 남의 글을 읽는 기분이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 내가 60살이 되고 80살 할아버지가 된 후에 오늘 쓴 이 글을 보며 '누가 쓴 글이지?'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안 쓸 수는 없다. 난 작가니까.

나이 마흔에 써야겠다고 생각만 하다가 시작하지 못하고 이제서야 시작한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어떤 얘기부터 할까 고민하다가 시간만 보내버렸다. 그래서 난 오늘 리스트를 작성해봤다. 뭐부터 쓸까.

  1. 태어난 이후 가장 어린 나이의 기억나는 것부터
  2. 영희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쓴 날부터
  3.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한 날부터
  4. 우일 입사한 날부터
  5. 영희를 잊으려고 노력하다 우울증에 걸려 죽을 뻔했던 일부터
  6. 초등학생 시절 비 오던 날 비를 맞으며 하교하던 날부터
  7.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일기장을 장만한 날부터
  8. 아빠와 엄마에 대한 기억부터
  9. 엄마 꿈을 꾼 얘기부터

태어난 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 거고, 내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엄마에게 맞은 기억이다. 흠... 패스. 미리 말해두지만, 이 글에선 모두 실명을 사용할 것이다. 소설이기도 하고 소설이 아니기도 하지만, 가명을 쓴다면 만약 내가 나중에, 그러니까 한 20년 후에 이 글을 읽으며 'ㅇㅇ이가 누구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글로 돌아와서, 영희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쓴 날의 기억. 물론 생생하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지. 그땐 이름이 영희가 아니라 경은이었다. 이름이 두 개. 본명은 경은이고, 점쟁이가 좋지 않은 이름이라고 바꿔준 이름이 영희였다. 호적상 이름을 본명으로 하면 경은. 학교에선 경은이라고 불렸고 집에선 영희라고 불렸다고 했다. 영희 얘기를 쓰기엔, 이미 전작 소설에서 영희 얘기를 했기에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패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한 날이라, 역시 전작 소설에서 언급했기에 패스. 그리고 군대 제대하고 입사한 우일. 음, 그러니까 나의 정식적인 사회생활의 출발점이 되겠다. 그런데 또 전작 소설과 겹쳐서 패스. 아, 이런. 전작 소설과 왜 이렇게 많이 겹치는 거야. 5번 항목도 전작 소설로 인해 패스. 난 초등학생 시절의 기억이 온통 슬픈 기억뿐이라 6번 항목의 기억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일단 고민.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시발점이 되어준 첫 일기장 얘기는 특별한 의미가 있으니 일단 대기. 아직 웹에 거의 언급을 안 한 아빠와 엄마에 대한 기억. 음, 이게 가장 좋겠군. 시작은 엄마 꿈을 꾼 얘기부터 시작해야겠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아빠와 엄마가 서류상으로 이혼한 건 내가 중학생일 때였다. 중2거나 중3이거나. 하지만 실질적인 이혼은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일주일 만이었다. 난 눈치가 빵점인 아이였고 머리도 돌이었기에 그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집에 엄마가 없어서 아빠와 함께 버스를 타고 할머니 집에 갔다는 기억이 전부다. 그런데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꿈이 있다.

내가 7살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살았던 집은 기찻길 옆에 있었다. 경기도 구리시 교문리. 지금은 교문동이다. 마당이 있는 일반 가정집이었는데, 집주인과 월세살이 두 집이 있었다. 한지붕 세가족. 난 자주 기찻길에서 놀곤 했는데 그 때문에 자주 혼나곤 했다. 꿈에 내가 기찻길에서 놀고 있다가 역무원(?) 아저씨에게 잡혀가고 있었다. 난 마구 울어댔다. 용서해주세요 살려주세요를 외치며 울고 있는데 엄마가 나타났다. 날 구해주러 왔다고 생각했는지 엄마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엄마는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드셨다. 안녕. 이 꿈을 언제 꿨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엄마가 떠난 날부터 초등학교 2학년 사이인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는 이 꿈 이후로 내 꿈에 다신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 어디 갔냐고 찾으며 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할머니께서 '엄마는 도망갔다.'라고 알려준 기억이 전부다. 난 머리도 나쁜 멍청이였고 이해력도 많이 떨어졌기에 그냥 바보처럼 2년을 보낸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2학년까지 2년의 기억이 거의 없다. 마치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 지우개로 싹싹 지운 것 같다고나 할까. 워낙 키가 작아 맨 앞자리에 앉았다는 기억, 동네 친구 실(외자)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줬다는 기억, 불우이웃돕기로 모은 쌀을 내가 받았다는 게 전부다. 그 시절엔 매년 12월이면 가정마다 라면 봉투에 쌀을 담아 모으곤 했다. 그 쌀을 내가 받았다. 그렇다고 3학년에 대한 기억이 제대로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의 기억은 3학년 선생님이 남자였고, 준비물 안 가져왔다고 뒤에 손들고 서 있게 했다는 기억이 전부다. 집이 가난해도 너무 가난했기에 난 준비물을 챙겨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그래서 미술 시간이면 늘 교실 뒤에서 손을 들고 서 있었다. 아마도 이런 경험이 내 성격을 비뚤어지게 한 것 같다. 사회에 대한 증오와 저주. 그렇게 난 못난 사람으로 자라갔다.

아빠는 나를 할머니에게 맡기고는 2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직 결혼 전인 삼촌 둘과 나, 동생 이렇게 함께 살았다. 할머닌 아무래도 손주보단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두 아들이 우선이었으리라. 난 2년 동안 방치됐고 매일 어지러웠다. 하루가 멀다하고 양호실에 가서 두통약을 받아먹었고 양호 선생님이 내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땐 내가 그냥 약골이라 늘 어지러운 줄 알았다. 나중에야 밥을 안 먹어서 그랬다는 걸 알았다. 밥상엔 김치뿐이었는데 난 그냥 밥 먹기가 싫었다. 가끔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할머닌 삼촌들 먹어야 한다고 못 먹게 했다. 난 그런 할머니가 너무 서운했다. 그래서 더 밥을 안 먹었다. 그래서 매일 어지러웠다. 나는 뼈뿐인 전쟁 난민 같은 꼴이었다. 목욕탕엔 1년에 한 번 갔던 것 같다. 머리는 한 달에 한 번 감았던 것 같다. 이발도 하지 않아 늘 장발이었다. 물론 이도 있었다. 이빨이 아니고 벌레 이.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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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전 이런 글이 참 좋더라고요. 누군가의 역사를 쭈욱 길게 들을 수 있는 이런 이야기가 참 좋아요.

백과사전 분량이라니 글이 많이 남아있겠네요. 기대됩니다.

독서모임에서 <나의투쟁>(히틀러 얘기 아니고요,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사람이름) 소설이에요.)으로 독서모임을 하고는 제 얘기를 꼭 쓰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야 시작이네요. 기대해주세요. ㅎㅎㅎ <나의투쟁>이 어마어마한 분량인데요, 저도 그정도는 써질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

사람살이 이야기라서 저도 공감하고 볼 수 있겠습니다.
리스팀 해 놓았습니다.

사람살이 이야기, 열심히 쓸게요. 리스팀 고맙습니다. ㅎㅎㅎ

눈이 따라 가며 읽히는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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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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