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12

in #kr-pen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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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the writer










   샌프란시스코에서 살 곳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망할 놈의 테크 붐! 집값에서라도 뉴욕을 이겨 보자는 수작으로 야심 차게 치솟은 임대료에 경의를 표한다. 징그럽게 밀고 들어오는 나그네쥐 같은 고학력 고소득자들과의 경쟁에서 패한 나는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소나 돼지 허리의 연한 살코기를 뜻하는 단어와 같은 이름을 가진 동네에 작은 방을 얻었을 때 지미와 수지 큐는 똑같이 우려를 표했다. 마약과 범죄로 얼룩져 그곳 출신이 아니면 10분도 채 못 버틸 것 같은 동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미지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거기 살면서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사건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으니까. 여행용 캐리어를 달달 끌고 멋모르고 들어선 관광객이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빈손으로 나오는 걸 몇 번이나 봤으니까.

   그에 대해 죽음 그리고 가난과 등을 맞댄 곳 특유의 역동적인 삶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밑바닥 동네 어귀도 못 들어가 본 자의 전형적인 헛소리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똑같다는 헛소리는 차라리 귀여울 정도다. 그곳은 그저 미래가 없어 더욱 위험한 사람들이 토해 낸 마약과 알코올에 찌든 몽롱한 숨 때문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암담한 장소일 뿐이다. 그곳에서의 삶을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하려는 이들은 단 하루도 살아낼 수 없는 지독한 지열 지대……, 그곳을 둘러싼 주변의 모두로부터 지도에서 사라지기를 눈총받는, 도시의 고름 가득한 환부……. 그런 위험한 동네에 적응하는 건 결코 쉽지 않지만, 어쨋든 나는 해냈고 거기서 묘한 희열을 느꼈다. 그곳에서의 생존이 내 존재 의의에 더욱 확신을 줬던 것이다. 단순히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것 외에 더 큰 의미가 내게 있을 거라는 믿음, 그 증거. 그걸 매일매일 느끼고 확인하는 게 그곳에서의 내 삶이 돼야 했다.

   그렇게 되지 못한 데에 남들을 탓할 이유가 없다. 병상에서의 20여 년을 저열한 상상으로 때운 내가 어떻게 진정한 어른의 삶을 살 수 있겠는가. 나는 그저 성인의 몸에 들어간 애송이에 불과했다. 원초적 욕망을 제어할 힘을 기르지 못한 채 세상에 나온 지진아에게 허용되는 자유란 결코 넓지 않다는 걸 실감해야 했다. 내 학력으로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손에 잡히는 기회는 내 몸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강한 육체노동뿐이었다. 꾸준한 운동으로 근육량과 골밀도가 향상됐지만 건설 현장이나 부두에서 일할 정도는 아니었다. 면역력이 정상 범주를 밑도는 것도 나를 주춤하게 했다. 내가 어렵사리 구한 일은 시청 앞 커피 트럭의 파트 타임이었다. 매니저인 파커 씨는 반백의 머리칼과 콧수염을 단정하게 기른 노인으로 베트남전 참전 용사 출신의 전직 교사였다.

   “전화도 없고, 트위터도 안 한다고? 이유가 뭔가?”

   그 질문을 처음 한 건 파커 씨가 아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같은 걸 물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일어나면 그간 발전한 첨단 문명을 마음껏 누리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미디어와 주변을 쭉 관찰한 결과 그것들이 저주받아야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딜 가나 스마트폰에 코를 처박고 다니는 사람들……. 바로 코앞의 사람은 외면한 채 누구와 무슨 놈의 소통을 한다고 지랄들을 하는지. 그래, 물론 사회 운동에 영향을 미친 건 인정한다. 그런데 그건 굳이 스마트폰이 아니어도 되잖아? 그냥 집에서 컴퓨터로 해도 될 일이잖아? 이런 생각도 내가 삐뚤어진 탓인가? 글쎄, 요즘 애들이 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사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진 않다. 원래 세상은 애들이 열광하는 일을 어른들이 혼내고 못하게 해야 정상이거든. 그래 놓고 뒤에서 자기들이 더 열심히 하더라도 말이지.

   “폰이 똑똑해지는 만큼 사람은 멍청해지더군요.”

   파커 씨는 나를 단번에 채용했다. 자신과 같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를 아버지로 두었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깊은 애정을 가지고 대해주었다. 전쟁에 관해 딱히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작 분에 넘치는 호의를 받는 입장인 나는 헛된 공상으로 부풀려진 자의식으로 말미암아 그 일에서 어떤 보람도 만족도 의의도 찾지 못했다. 나는 그저 아버지보다 높은 연배인 파커 씨가 아버지보다 오래 살고 있는 현실을 두드러지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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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읽을 수록 소설이라기 보다는 누군가의 과거 얘기처럼 들려지네요. 이게 바로 소설의 매력인거죠?ㅎ

글을 읽으려해도 사정이 있어 기분이 넘
안좋아 제대로 못읽고 갑니다 ㅠ
마지막 글로 오늘을 마갑합니다
굿나잇 킴~님 ^^

답글이 늦었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올라오자마자 봤지만 저의 미천한 보팅액이 드러날까 글부터 읽고 보팅을 눌렀는데 그사이 벌써 3명이나 눌렀다? ㅋㅋㅋㅋ (휴 다행) 여기 전화와 트위터 없는 사람 추가요..........

멋져요 스프링필드님 :)

스프링필드님은 제 글에 보팅하지 말고 파워 아껴 두세요. 제가 알아서 찾아갑니다. 알아서 찾아가는 서비스. 이런 광고가 있었던 거 같은데... 저 지금 무슨 소리 하나요.

작가님 연재속도가..후덜덜
독자로서는 정말 기쁘지만 너무 일을 많이 하시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네요 ㅋㅋㅋㅋ

“폰이 똑똑해지는 만큼 사람은 멍청해지더군요.”

이 말에 공감합니다.. 이 표현도 너무 멋있는 표현이에요. .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
.
인생의 나락 끝까지 떨어져 본 주인공은..어쩌면 할렘가에 살고있는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과 공감하고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탈탈 털리거나 목숨을 잃는.. ?) 그런데, 20년의 병을 딛고 일어난 사나이가 고작 커피트럭의 파트타이머라니요..! 야망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친구.. .. 조금 실망입니다.
더 지켜봐야겠네요ㅎㅎ

야망과 현실의 갭은... '어서와, 실전은 처음이지?'

연재소설 구독자 오늘도 왔습니다.^^
사회의 문제들을 소설을 통해서 강하게 꾸짓는 듯한 느낌이네요.^^ 깊이 공감됩니다.^^
점점 주인공의 주변이 만들어지고 있네요~~ 다음편 기대합니다.

저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 주인공이 워낙 한 성격하는 인간이라... 다음편에선 어떨지 지켜보시죠.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 자신과 비슷한 몇 구절에 공감하고 가는 날이네요~~
반성도 되구요 ^^
좋은 밤 되세요 ~~

답글이 늦었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20여년간 원치 않게 누군가와 항상 함께 있을 수밖에 없었던(내면적으로는 오롯이 혼자였을지 모르나) 주인공이 드디어 자립을 했군요- 커피 트럭이라니 :) 새로운 배경의 등장에 두근두근합니다.

오늘 글은 평소보다 조금 짧게 느껴져요- 다음 글 기다릴게요 🌿

이거 보다 길면 오히려 잘 안 보시더라구요...

소나 돼지 허리의 연한 살코기를 뜻하는 단어

텐더로인!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210795&memberNo=36835023

정주행하고 갑니다! 처음에 제목보고 연애 관련된 소설인줄 알고 관심 안갖고 있었는데, 이런.. 무척 재미있습니다!

정주행 감사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SF 미스터리입니다.

제가 자주 갔던 카페가 wifi가 안되어서 컴퓨터를 가지고 가면 인터넷이 안되는 곳 이었는데... 트위터도 전화도 인터넷도 필요없는 저는 그곳이 그렇게 편하고 좋더라고요 ㅋㅋㅋ

너무 많은 연결로 숨이 막힐 때가 있죠. 저는 카페에서 작업할 때 배터리를 아끼는 차원에서도 일부러 와이파이 접속을 안 했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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