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05

in #kr-pen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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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the writer









   지미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전해졌다. 나는 MRI 안에 누워 있다. 치료를 시작하기에 앞서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 결과를 봐야 치료 계획을 짤 수 있단다. 망할 놈. 그건 다시 말하면 검사 결과에 따라 효과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닌가. 이렇게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은 자의든 타의든 주변 사람들을 고문하기 마련이다. 헛되게 끝날 수도 있는 일에 괜히 희망을 품게 하여 종국에는 큰 실망을 느끼게 한다. 그러고는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희망은 언제나 필요한 거라고, 희망만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희망 전도사로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나는 그에 놀아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엄마를 위해 동참해야만 했다. 물론 여기서 더 나빠질 게 뭐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있었다. 실패하면 당연히 아쉽겠지만 잘나신 닥터 해든의 콧대가 꺾이는 걸 보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 아니겠는가. 엄마가 지미에게 실망하는 건 보너스로 따라올 테고.

   지미가 짧은 인내 끝에 다시 한 번 물었다. 자기 말이 잘 들리느냐고. 나는 연속으로 계속 눈을 깜빡거렸다. 참고로 ‘예스’는 두 번이다. 지미는 내 반항을 무시했다. 이제 시작할 거라며, 이상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눈을 더 빠르게 연신 깜박거렸다. 지미는 이제 으름장을 놓았다. 이건 아주 중요한 검사라며,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다며, 뇌가 팝콘처럼 튀겨지면 참 볼 만할 거라며. 허튼수작. 자기공명촬영장치의 원리 따위는 알고 있다. 녀석은 거짓말에 서툴다.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으면 들키지나 않을 텐데.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렇게 말할 재간이 없어 그냥 가만히 있자 지미가 시작해도 되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될 대로 되라. 나는 눈을 두 번 깜빡였다.

   검사는 MRI 촬영 외에도 혈액, 호르몬, 근육량, 골밀도 등 전반에 걸쳐 꼼꼼하게도 이루어졌다. 마지막에는 정신 상태를 파악했는데 담당 의사는 내 얘기를 지미로부터 미리 들었는지 도통 골탕 먹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의사는 무뚝뚝하게 나와 질문과 답을 나누고는 차트를 들고 가 버렸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판정이 나오려나 내심 기대했으나 그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병실에 비스듬히 누워 한참 기다린 끝에 잘나신 지휘자가 얼굴을 보였다. 엄마는 기대를 감추지 않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의 자랑스러운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 아들은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결과가 좋다며,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며 호언장담했다. 엄마는 벌써 감격해 울먹이며 지미를 껴안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잘됐다고 반복했다. 나는 아직 모르는 일이라고,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고 시큰둥하게 반응했으나 두 사람에게 전해지진 않았다.

   지미는 이제 치료가 어떤 원리로 이루어지는지 요구한 적도 없는 강의를 시작했다. 너도 알고 싶지 않으냐는 말로. 나는 아니라고 세 번 깜빡였는데 또 한 번 무시당하고 말았다. 지미의 말에 따르면 이 약은 송과선의 기능을 극대화한다. 송과선은 제 3 뇌실에 있는 내분비선으로 멜라토닌 합성이 주된 기능인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거기서 분비되는 어떤 물질들이 복합적인 작용을 해서 손상된 뇌간의 역할을 대신한다. 송과선은 나이를 먹을수록 석회화되는데 약의 효과는 결정적으로 여기에 달렸다. 송과선이 석회화되지 않았거나 그 정도가 극히 낮아야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줄기세포는 아니었군. 내가 촌평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부작용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멜라토닌 수치가 급격하게 올라가기 때문에 우울증과 졸음이 올 수도 있단다. 지미는 걱정하는 엄마에게 내가 상대적으로 세로토닌 수치가 높다고,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안심시켰다. 우리 형제가 긍정적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자기 생각에 우린 태어날 때부터 마르지 않는 세로토닌의 샘을 가진 것 같다는 쓸데없는 말도 덧붙였다.

   긍정성을 타고났다는 지미의 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 내 증상이 처음 밝혀졌을 때 의사들은 한결같이 길어야 수년밖에 못 살 거라고 단언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댔지만 나는 얼마 안 있어 그들의 말이 거짓임을 알아냈다. 내가 감금증후군으로 죽게 된다면 이유는 단 하나다. 미쳐 죽는 거다. 정신과 감각은 멀쩡한데 육신은 신음조차 낼 수 없는 상태로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정신병원에 갇혀 구속복을 입은 채 지낸다고 생각해보라. 제정신인 사람은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와 동지들은 말 그대로 무거운 재래식 잠수복을 입은 채 깊은 수면 아래 잠겨 있지 않은가. 20여 년을 버텨온 나를 기적이라는 단어로 수식하는 건 당연했다. 물론 그 끝에 엄마와 쌍둥이 형의 헌신이라는 말도 쓸데없이 따라붙었지만. 기적, 기적이라. 한 인간이 불굴의 의지로 이룩한 일을 그토록 쉬운 데서 원인과 결과를 찾으려 하다니. 나니까 그 긴 세월을 이따위 상태에도 죽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던 거다. 지미의 말대로 마르지 않는 세로토닌의 샘을 타고난 덕분에.

   그 긴 시간을 공상으로만 때웠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는 여전히 호기심을 잃지 않았고 세상을 경험하려는 의지로 충만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로 욕구를 채우면서도 언젠가 저 멋지고도 위험한 세상을 두 발로 체험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버리지 않았다. 기적이 일어나든 치료법이 개발되든 언젠가 병이 낫겠지 싶은 기대가 아니다. 나는 그냥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일어나리라는 것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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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매력적인 주인공이에요. 기적적으로 일어나서 세상과 동생을 비꼬며 활약했으면 좋겠어요.

브리님...? 의사가 형, 화자가 동생... 제가 너무 오랜만에 올렸죠?ㅠㅠ

아, 저 맨날 헷갈리네요. 죄송! 저번에도 정정해주셨었는데.. 한번 뇌리에 화자가 형으로 박혔더니.. ㅠ.ㅠ 화자가 동생! 화자가 동생! 명심할게요. 죄송해요. ㅠ.ㅠ

ㅋㅋㅋㅋ 괜찮아요. 저 위에 동지 한 분 더 계십니다. 아마 그 외에 몇 분 더 계실지도ㅋㅋ 그렇게 되면 제 잘못인데...ㅠㅠ

재밌네요. ㅎ

감사합니다 :)

오늘 저도 MRI를 했습니다.
머리 속에 아직도 진동과 소음이 남아있네요.
가끔 저는 감금되고 싶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MRI 장비 안에 감금되면 진짜 돌아버릴 거예요.

헉... MRI라뇨... 크게 아프신 건 아니죠? 단순한 예방 검진일 거라 믿습니다. 감금은... 저도 가끔 독방에 갇혀서 글만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사실 반쯤 그런 상태이긴 하네요. 그런데 더 확실히 그런 상태로 몰아보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가끔 숲속 외딴 통나무집 같은 걸 알아보곤 합니다.

에구에구, 제가 김작가님께 걱정을 끼쳐드렸네요.
죄송하고 감사해요. ^^

단지, 두통이 심해서 검사를 받아봤어요.
다행히 괜찮다고 하구요.
정말 전 독방에 갇혀서 글만 쓸 수 있다면 좋겠어요.
가끔 술 한잔은 할 수 있게 해주고요.^^

그렇게 해보고 포기를 하던지 미련을 버리던지 할 수 있다면...
사실은 지금도 큰 꿈은 없어요.
취미로 즐길 정도의 수준 밖에 안되는 걸 알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거죠.

아.. 그랬군요. 괜찮다니 다행입니다. 결과 나올 때까지 얼마나 걱정하셨을지 상상이 가네요.
혹시 한 번 다 던져버린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 길에서 떠나 봐야 이 길이 내 숙명인지 아닌지 알 수 있거든요. 저는 그렇게 떠나 봤더니 죽을 거 같아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일단은 살아야 했으니까요.

한번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신이 없기 때문에 미루고 있는 걸지도 모르죠.

지미에 치료는 성공할까요
성공 할것같은 예감이 드네요
오늘도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성공 예감 드시나요? 오늘도 즐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반사회적 인격장애 판정이 나오려나 내심 기대했으나

ㅎㅎㅎ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꼬였다' 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한 마디로 말해버리기 어렵습니다. 그의 생존을 '기적' 이라고 간단히 규정해버릴 수 없는 것처럼요. 지미의 모든 행동은 오늘도 화자에겐 모조리 쓸 데 없군요. 가위에 눌렸던 기억을 더듬어 그의 답답함을 상상해봅니다. 저도 호기심과 삶에 대한 의지를 찾기 위해서 내일은 햇빛을 좀 쐬어야겠어요.

누군가의 정성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도 참 힘든 일인데 말이죠. 그건 그렇고 오늘은 햇빛을 쬐신다니... 그런 기특한 말씀을... 하루만 햇빛이 없어도 바로 우울해지던 멕시코 친구가 생각나네요. 즐거운 산책 되세요 :)

5편을 보다가 1편부터 다시 정독했네요 ㅎㅎ
앞으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과연 치료에 성공해서 자기의 이야기를 사람들앞에서 풀어 나갈수 있을까요? ㅎㅎ

정주행 감사합니다 :D
자, 이제 슬슬 판을 벌여야겠군요. 성공이냐 실패냐!

바빠져서 스팀잇 잠시 뜸해진 와중에도 연재소설 챙겨보러 왔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뭔가를 암시하는 것 같네요ㅎㅎ

크흡.. 의리남 해리슨님👍 성공에 배팅하시렵니까ㅋㅋㅋ

외롭지 않으려고 별을 본다는 제목으로 유추 해 볼 때....
아마 실패하지 않을까요 ㅋㅋㅋㅋ

오오... 성공하면 승자 독식이 가능하겠군요ㅋㅋ

앜ㅋㅋ그러고보니 다른 댓글들은 동생이 일어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네요..
저만 너무 시니컬 했나봐요 ㅋㅋㅋㅋㅋㅋ
과연...다음화가 기다려집니다

이 소설을 쭉 읽으면서 처음으로 제가 구속복을 입은 듯한 갑갑함을 느꼈네요. 답답하고 숨이 막혔어요.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었어요. 결국 일어나는 것인가! 이게 관전 포인트가 되겠네요^^

자자.. 쏠선생님도 걸어 보시죠.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돈 전부랑 손모가지 하나쯤은 걸어야할까요?ㅋㅋ 일어난다! 에 겁니다. 일어나야 이야기가 더 확장될 거 같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주사위

ㅋㅋㅋㅋㅋ 주사위는 난리난 곳이 있던데요. 한 번 들러 보시죠. 치열합니다ㅋㅋㅋㅋ

오 치료가 성공했으면 좋겠네요. 성공을 바라는 독자입니다. ^^

성공을 점치는 분들이 많군요. 모두가 네 할 때 아니오를 해야 크게 따는데!

아~ 마르지 않는 세로토닌의 샘을 타고난 덕분에 저는 늘 즐겁군요 ㅋㅋ 다음회에 일어나야 할텐데요!

에빵님은 일어나는 쪽에 베팅하신 걸로 알겠습니다ㅋㅋ 그런데 마르지 않는 세로토닌의 셈도 불의 앞에서의 분노에는 잠시 자리를 내줘야겠군요. 부디 잠을 설치지 않으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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