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레트바 전투’ ”

in #kr-movie6 years ago

“ ‘네레트바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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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네레트바 전투>는 ‘요시프 티토’의 집권하의 이제는 사라진 ‘유고슬라비아’에서 체제선전용으로 1970년에 만든 영화다.

소련과 별개의 자주노선을 추구하고, ‘제3세계’를 주창하며 ‘비동맹주의’을 견지했던 전 세계 외교가에서의 티토의 위상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다민족, 다종교 국가의 유고슬라비아가 그의 사후 ‘크로아티아 내전’,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내전’ 등으로 점철되며 수십만 명 이상이 희생된 참극을 겪었음에 그의 리더십과 국가 통합능력은 평가되고 경탄할만하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사회주의자 티토의 정치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된 건 1941년 4월 나치독일의 당시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대한 침공과 점령 직후였다. 티토는 反파시스트 전선의 ‘국민해방군’, 즉 ‘파르티잔’을 결성하여 전투에 나섰다. 티토의 파르티잔은 세르비아를 거점으로 한 민족주의자, 왕정 복고주의자들의 군사조직인 ‘체트니크’와는 경쟁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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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왕정이 복고될 때까지 수염을 깎지 않겠다며 덥수룩한 턱수염을 기른 체트니크는 파르티잔의 대독투쟁 성과를 따라잡지 못하고, 과격 반공주의자들이었던 그들은 파르티잔과의 싸움에만 치중하면서 친나치독일의 군사조직으로 변질했다. 이들은 분리, 독립하여 수립한 크로아티아 나치 괴뢰정부의 군사조직인 ‘우스타샤’와 더불어 오히려 수십만 명의 자국민들을 학살하면서 악명들 떨쳤다. 이들의 민족주의 증오는 1990년대 유고내전까지 이어져 일련의 학살만행들을 자행했던 ‘세르비아 민병대’를 체트니크라고 불렀다.

1943년 1월 영국과 스페인, 스위스, 스웨덴 등 중립국가를 제외한 전 유럽을 대부분 집어삼키며 당시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나치 독일군은 이탈리아군, 우스타샤, 체트니크까지 동원한 20만 병력으로 유고슬라비아 중부 보스니아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티토의 파르티잔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인 이른바 ‘백색작전’을 전개한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들의 포위망을 뚫고 파르티잔은 주민들까지 대동하고 보스니아를 가로지르는 ‘네레트바 강’ 협곡 너머로의 탈출 작전을 벌이는 영웅적인 투쟁담을 그린 영화가 <네레트바 전투>다.

티토와 파르티잔으로서는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파르티잔은 2차 대전 종전 무렵에는 병력이 80만 이상이었고, 나치독일이 점령했던 국가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스스로의 힘으로 나치독일 세력을 축출하고 해방을 달성한 나라였으니까. 그래서 소련에 의해 해방되어 소련 패권주의의 위성국가로 전락했던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는 티토의 유고슬라비아는 독자적인 목소리와 행보를 걸을 수 있었고, 급기야 1948년에는 소련주도 각국 공산당의 협력조직인 ‘코민포름’에서 축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형적인 선전영화인데다 무수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압도적인 적과의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다는 스토리 전개는 식상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특이한 건 티토와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의 기념비적인 투쟁을 다룬 영화임에도 지도자 티토는 “티토 동지가 탈출을 지시했다”는 명령서외에는 모습은커녕 이름조차 전혀 거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티토는 우상화로 사회주의를 왜곡했던 다른 사회주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호치민이나 피델 카스트로 등과 더불어 우상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지도자였다.

허나 티토의 이름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고, 사라진 나라, 유고슬라비아 역사에 누가 관심을 갖나. 또한 추천할만한 영화도 아니고, 추천한들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도 아니다.

그럼에도 눈에 띈 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계적 명우들이 대거 출연했다는 점이다. 파르티잔의 폭파전문 장교의 ‘율 브리너’와 체트니크 지도자로 분한 ‘오손 웰즈’, 마카로니 웨스턴 ‘장고 시리즈’로 유명한 ‘프랑코 네로’는 이탈리아군 장교 역할이다. 톨스토이의 소설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구소련의 <전쟁과 평화>를 연출하여 구소련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오르고 배우로도 활동했던 ‘세르게이 본다르추크’는 파르티잔 포병 지휘관 역할로, 독일군 전문 단골배우로 얼굴이 널리 알려진 ‘하디 크루거’는 역시 독일군 기갑사단의 지휘관으로 출연했다. 이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남의 나라 체제선전영화에 출연했을까. 출연료를 많이 줘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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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손 웰즈야 할리우드에서 대표적인 좌파 영화인으로 꼽히고, 세르게이 본다르추크는 같은 사회주의권이니 출연할 수도 있었겠지만 율 브리너나 프랑코 네로, 하디 크루거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특히 율 브리너는 러시아 적백내전 당시 극동지역의 백계 러시아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적백내전에서 적군이 승리한 이후에 쫓겨난 백계 러시아인들의 일부가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들어와 살았는데 율 브리너는 성장기를 함경도에서 보냈다고 하니 우리하고도 관련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독특한 동양적 분위기는 그의 출세작으로 샴(태국)의 국왕 역을 맡았던 <왕과 나>뿐만 아니라 이런 성장배경도 깔려 있었다.

그러나 오래 전에 통일교가 전 세계 시장을 겨냥하여 막대한 제작비 전액을 내고, 당시 집권 초기인 전두환 정권이 물심양면의 촬영지원을 했다는 인천상륙작전을 그린 <오! 인천>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맥아더’ 역으로 ‘로렌스 올리비에’경과 ‘캔디스 버겐’ 등 화려한 진용의 당대의 세계적 배우들이 캐스팅된 영화였다. 그러나 그렇게 엄청난 물량을 들여 완성은 했지만 결국 한국은 물론이고 제대로 개봉조차 못한 걸로 알고 있다. 아무튼 단지 체제선전 영화에 세계적 배우들의 출연했다는 건 돈 때문이 아니라 티토의 명성과 관련하여 각기 특별한 인연들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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