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무기 이야기] 조선을 지킨 서양식 화포, 불랑기

in #kr-history6 years ago

1871년 6월 강화도에서는 조선군과 미군이 전투를 치릅니다. 조선과 국가적으로 수교를 맺고
거래를 하고자 하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미국이 무력침략을 한 것입니다.

이 전쟁을 신미양요라고 합니다.

이 신미양요의 대표적인 격전지인 강화도 광성보 유적지에 가면
당시 조선군의 무기가 재현되어 있습니다.


신미양요 당시 조선군의 주력 무기 (왼쪽부터) 불랑기포, 소포, 홍이포(출처 : Wikimedia commons)

그중에서 가장 작은 무기는 불랑기(佛狼機)라는 화포입니다.
대포의 일종인데 대포라고 하기엔 크기가 많이 작은 것 같습니다.
이름도 화포, 신기전과 같이 이전에 쓰던 무기에 비교하면 조금 특이한 것 같기도 합니다.

대체 어떤 무기였을까요?

프랑크(Frank)가 불랑기로
불랑기는 프랑크(Frank)를 한자로 바꾼 말입니다. 먼 옛날 유럽 사람들을 프랑크라고 불렀는데(더 정확하게는 프랑스 지역이지만 넓은 의미로 유럽 전체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표기 방식대로 고쳐 부른 것입니다. 지금도 어른들 중에는 프랑스를 불란서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프랑스(France)를 한자로 바꾸어 불란서라고 한 것입니다.


프랑스 콘스탄틴 시에서 전시 중인 불랑기포(출처 : Wikimedia commons)

중국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이 전해 준 화포도 불랑기라고 했습니다. 불랑기는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던 화포로 당시 전함 위에 장착하는 함재포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중국에는 1506~1521년 사이에 포르투갈에서 전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이렇게 유럽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불랑기는 곧 조선에도 전해졌습니다.

작고 가벼운데 연속 사격까지!
불랑기는 길이 74~143cm 사이이며 포를 발사하는 구멍인 포구의 지름은 2.8~5.8mm까지 다양합니다. 불랑기는 길이가 150cm를 넘어서는 대형 화포에 비해 크기가 아담합니다.
크기는 1호에서 5호까지 다섯 종류가 있으며, 크기가 큰 1~3호는 성곽을 파괴하는 용도로 많이 쓰였습니다.
이 경우 한 장소에 설치해서 발사하기도 하였지만 길이가 100cm 이하인 4호와 5호의 경우 바퀴가 달린 포가(砲架, 받침대) 위에 두어 원하는 장소로 옮겨서 공격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불랑기의 몸통에 툭 튀어나와 있는 것은 가늠자와 가늠쇠로 이동도 가능하고 조준하기도 편하게 하여 명중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한번 포를 발사하면 사거리는 1km 이내였다고 합니다. 성벽을 파괴할 때는 하나의 큰 탄환을 사용하였고, 작은 불랑기에는 작은 탄환이 여러 개 들어있는 산탄을 사용했습니다.


조선의 불랑기포(국립진주박물관 소장, 출처 : Wikimedia commons)

불랑기는 모포(母砲)와 자포(子砲)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모포는 불랑기의 몸통이고
자포는 화약과 탄환을 장전해서 발사하는 것으로 총에 들어있는 탄약통과 비슷합니다.

커다란 모포 속에 작은 자포를 넣어 발사하는 방식이며
다른 화포들이 탄환을 넣을 때 앞에서 포구로 밀어 넣어 발사하는 것과 비교해 불랑기는 포구 뒤에서 자포를 넣기 때문에 포를 쏘는 것도 편하고 다음 포 장전도 쉬웠습니다. 1개의 모포에 보통 5~9개의 자포를 준비했는데 자포를 모두 장전해 두었다가 신속하게 바꿔 넣어주면 연속 사격도 가능했습니다.

이와 같은 장점으로 불랑기는 전쟁에서 중요한 무기로 부상하게 됩니다.

평양성을 되찾아 준 불랑기
불랑기는 임진왜란 때 조선의 원군으로 온 명나라 군대가 처음 선보였는데
특히 1593년 1월 평양성 전투에서 크게 활약했습니다. 사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좋은 불랑기 공격에
평양성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들이 항복하여 달아났던 것입니다.
당시 일본도 서양에서 다양한 무기를 들여왔지만 조총에 비해서 불랑기는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불랑기와 같은 화포의 집중 공격에 무너졌던 것입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은 무기 개발과 제작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불랑기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1614년 광해군은 화약무기 연구소인 화기도감에서 불랑기를 제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불랑기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불랑기 모포와 자포의 크기, 몸통의 길이와 포구의 크기가 잘 맞아야 화약 가스가 새지 않아
발사 성공률이 높아지므로 각각의 길이와 크기를 잘 맞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선은 결국 비율이 딱 맞는 불랑기를 만드는데 성공!

조선의 불랑기는 발사 성공률도 높았고 포구의 크기도 적당해서 탄환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이후 불랑기는 조선 군대가 꼭 가지고 있어야 할 주요 무기가 되었고,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인
정약용은 몸집이 큰 홍이포나 호준포보다 작은 불랑기가 성능이 더 좋다는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불랑기의 성능을 조선 후기의 유명한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서양식 대포인 홍이포(실학박물관 소장, 출처 : Wikimedia commons)
2017년 4월 강화도 건평돈대에서 조선시대에 쓰인 불랑기 모포가 발굴됩니다.
1680년 조선 숙종 임금 때 만들어졌다는 이 불랑기는 당시 115개가 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랑기가 국방 주요 무기였다는 증거입니다.

서양에서 건너온 불랑기가 우리 국토를 지켜냈다니 아이러니하면서도
조상들의 우수한 무기 개발 능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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