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못가서 쓰는 일기

in #kr-diary8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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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설악산> 이야기를 마무리 한 뒤에는 드디어 <순례길>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와 풍경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놓고 또 일기를 쓴다. 늘 혼자 드는 잡생각을 끄적대오던 습관이 있는 데다 ‘독자’ 를 염두한 글을 쓰는 것이 통 익숙치 않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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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에 일기를 쓸 수 없다면, 이곳은 나의 집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결심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 속을 드러내는 이런 일기가 아닌, 쓰고자 하는 글을 묵묵히 쓰는 것이 스팀잇을 오래할 수 있는 비결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나의 집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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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겸사겸사 스팀잇에 뜸하게 되었다. 일부로 제쳐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없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앞세워 미안함을 덜어냈다. 누구한테 미안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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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한 습성이 하나 있다. ‘특기’ 라고 썼다가 ‘습성’ 이라고 바꾸었다. 즐겨하기는 해도 이것에 재주가 있는지는 모르겠기 때문이다. 종종 나만의 깊은 동굴, 혹은 외딴 섬에 제발로 들어가려는 습성이다. ‘잠수’ 를 타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나를 찾지 말라고, 내버려 두라고 숨고 피하는 것 같기는 한데, 막상 누가 찾으면 버선발로 달려 나간다. 이상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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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연락하는 법이 거의 없다. 연락이 오면 받기는 하지만 바로 확인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핸드폰을 몸에 지니고 있거나 문자를 바로바로 확인하는 습관이 들지 않은 것도 있고, 혼자있는 시간을 좋아해서 더 그렇다. 해외에 있을 때는 핸드폰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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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온지 벌써 3개월하고도 일주일이 지났다. 아빠의 핸드폰을 쓰고 있었는데 이번주 안으로 회수해 가겠다고 하신다. 말이 아빠 핸드폰이지, 외할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 쓰시다가 돌아가신 뒤로는 나와 동생이 한국에 오면 쓰던 핸드폰이다. 정작 아빠는 한번도 사용하신 적이 없으신데, 이번에 모임에서 자리를 맡으신 것도 있고 주변의 성화에 못이겨 쓰셔야겠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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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2010년에 아이폰을 샀던 게 마지막이다. 2013년 일본에 갔을 때는 중고폰을 얻어 사용했고 그 뒤, 프랑스나 아르헨티나에서는 핸드폰 없이 살았다. 정확히는 구형 공기계로 와이파이 얻어 쓰는 정도. 8년만에 핸드폰을 구입하려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24개월 약정은 너무한 거 아닌가. 내가 한국에 얼마나 있을 줄 알고. 중고폰도 왜이렇게 비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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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방금 전화 한통을 받았다. 설악산에서 비를 맞는 바람에 소형 DSLR 카메라(캐논100D) 가 망가져 A/S 센터에 맡겼는데, 수리비가 30만원이라며... 수리를 권하지 않으셨다. 나와 산과 바다, 사막과 빙하를 오가며 12개국을 함께 여행한 친구인데... 그래서인지 그깟 비 조금 맞아도 괜찮을 줄 알았다. 내가 망가뜨린 것이다. 이런 이별은 처음이라 침울해하고 있는데 친절한 기사님께서 그동안 많이, 잘 사용해오신 것 같은데요. 라며 전화기 너머로 날 위로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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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에 조금 남은 돈으로 제주도나 동남아에 혼자 다녀올까 잠시 생각했는데, 핸드폰이랑 카메라 둘 중 하나는 못살 형편에 여행이 웬말이냐. 카메라 기능 좋은 핸드폰을 사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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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2013년에 잘 쓰던 똑딱이 카메라를 하나 잃어버렸다. (망가뜨리거나 잃어버리거나... 제길) 명동 공차에서 버블티를 마신 뒤 놓고 나와 다시 찾으러 갔는데, 직원이 분실된 카메라는 없다고 해서 여기저기 헤매다 결국 경찰에 신고를 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지갑이든 핸드폰이든, 잃어버리는 족족 내 손에 돌아 왔던터라 내심 기대했지만 이 카메라는 소식이 없었고, 나는 결국 이번에 고장낸 DSLR 카메라를 사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5년,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1년 전에 메세지가 와있었다. 자기가 내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고. 카메라 사진을 보고 페이스북으로 나를 찾았는데 본인이 맞느냐고. 고마운 마음이 앞섰기에 물어보진 않았지만, 조리복에 적힌 내 영문이름으로 검색을 한 게 아닐까 싶다. 1년이나 지난 메세지에 얼른(?) 답장을 보냈는데, 당시 공차 직원이었던 그녀는 이미 퇴사를 한 뒤여서 예전 직장동료를 통해 내게 보내주겠다는 메세지가 왔다. 그런데 보내주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결국 2013년에 잃어버린 내 카메라는 2018년에 우리집에 도착했다. 5년의 세월동안 카메라는 웬만한 스마트폰보다 몹쓸 구형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감사하다. 이렇게까지 주인을 찾아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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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글을 올리고 댓글을 읽으며, 제주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마침 지금 제주도에서 한달 가까이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도 나를 부르고.. 그런데 오늘 하루, 거짓말처럼 약속이 줄줄이 생겼다. 고등학교 때 친구, 대학 때 친구, 뉴욕에서 룸메이트였던 친구, 한국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 동네 친구, 가족끼리 아는 친구, 남미 여행하다 사귄 친구, 프랑스에서 룸메이트였던 친구... 서로를 모르는 친구들인데 오늘 동시에 연락이 온 것이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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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복에 겨운 거겠지. 지금은 비록 내가 동굴 속으로, 외딴 섬으로 들어가 혼자 있고 싶을 지언정, 안다. 그 이유가 비단 내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독립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고독하지 않기 때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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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에 오랜만에 와서도 좀처럼 피드를 보지 않는다. 모르는 게 약이라서 그런 것도 있고, 그냥 내 블로그에 와주시는 손님에게 정성들여 우려낸 차 한잔 대접하며 조용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지금 그렇다는 거지, 며칠 뒤면 또 다를 것이다. 글 쓰는 것보다 읽는 게 재밌어서 정신을 못차린 날도 많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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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주도는 언제나 가게될까 모르겠다. 그보다 카메라를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아이폰6s 로 사진 찍으면 잘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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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을 뒤집어 써가며 나와 동고동락했던 카메라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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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한테 미안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 모르겠으면 일단 저한테 사과하세요.

DSLR은 안타깝지만 언젠가는 은퇴시켜야 합니다. 셔터 박스가 수명이 있거든요. 고장나면 교체 비용이 카메라 한 대 값 나온다는...

<정 모르겠으면 일단 저한테 사과하세요.>

내용보단 기어들어가는 글씨체가 좋아요..

카메라에도 수명이 있단 걸 처음 알았어요!!
충격!!!!!;;;

사과하라시니까 일단 사과할게요. 근데 왜 또 기어들어가는 글씨체로 ㅋㅋㅋ 5년밖에 못썼는데 은퇴 너무 이른거 아닌가요 ㅜㅜ 사진기에게 미안해서 애꿎은 기사님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네요. 아니 근데, 왜 여기저기 자꾸 미안한거죠!!

햇수보단 몇 컷을 찍었느냐가 중요합니다. 100D면 10만 컷 정도 보면 될 거예요. 근데 지금 상황은 누수로 인한 메인보드 고장이 아닌가 싶은데... 둘 다 교체 비용이 새 거 사는 것만큼 나오죠.

메인ㅇㅇ 가 부식이 됐다고 하시는데 그게 메인보드였나봅니다. 사진도 많이 찍기는 했지요. (순례길에서만 4만장을 찍었다고 댓글 달았는데 생각해보니 4천장..) 고생했다, 100D...


이젠 카메라에게까지 사과를...

누구나 저마다의 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렇다고 뭍으로부터 너무 멀지도 않아요.

웃통을 벗어던지고 헤엄을 치면 또 금방 닿을 거리에 있습니다. 목소리를 조금만 키우면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요. 꽁꽁 숨겨 감출 수 있을 것 같아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면, 또 하나 숨김 없이 다 보이는 곳이지요.

이따금씩, 눈치 없이 큰 소리를 치거나 원하지 않는 방문을 감행하는 주변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게의 경우 알아도 모른 척 해주는 덕분에 우리는 평생 사는 동안 그래도 온전하게 그 '섬'을 지켜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괜찮아요. 알아도 모른 척 해드릴게요.

어 주옥같은 문장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내시다니..좀 아끼셨다가 다음 글에 쓰시지.ㅎㅎㅎ 뭐화수분처럼 나올 거 같긴 하지만...ㅋ
이번 제 글에 제 포스팅이 제 집이라고 썼는데... 이 글을 일고 헉!!!!!
그래 나랑 다른 사람이었구나...하다가..
고장나버린 카메라가 100d!!!! 공통점이 있다 아싸 ㅋㅋㅋ
이러고 있네요....
5년이나 지나버린 카메라 찾아주신 분 참 대단하신 듯... 주인도 없는 물건을 5년이나 간직하셨다는 것이.
새 폰들고 제주도 가셔서 사진 맘껏 찍으시고 고독을 즐기실 수 있길 바래요 봄님~~ ^^(제 100d로는 아무리 잘 찍어도.. 갤럭시 8을 못 이기더군요.. 똥손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ㅠㅠ)

문득 신기해졌습니다. 제가 봄뜰님을 처음뵌게 봄뜰님이 아르헨티나에 있을때 였던것 같은데 봄뜰님의 식당소개(메뉴판에 없는 메뉴를 꼭 시켜보고싶었다능ㅎㅎ )도 기억이나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다니 말입니다.

봄님의 시선으로 그려질 제주이야기도 기대가 됩니다 :)
그리고 이 곳은 나의 집이 될 순 없는 것 같다는 문장에 고개를 끄덕그덕했다지요. 그나저나 동남아는 정말 혼자 가기 좋아요-! 제 첫 나홀로여행이 태국이었답니다. (특히나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를 조심스레 추천해봅니다..조용하고 볼거리도 많고 전 넘 좋았어요 T_T. ) 전 올 여름에 어디로 떠나게 될 지 지도부터 펼쳐봐야겠어요-!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고독하지 않기 때문인 것을.>

이 말씀이 참 와닿네요.....

동고동락했던 카메라... 인연이 다한걸까요.. 그래도 추억은 남아있으니까...

일년만에 얼른 보낸 페이스북 리플(대학때 종종 리필과 헷갈리곤 했던..)과 오년만에 되찾은 카메라도 인상 깊네요.. ㅎㅎ

가끔 스프링님이 어느순간 스팀잇에 오지 않으시면, 사라지시면 어떡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네요.. 전혀 연락할 길이 없으니까..(다른 분들을 통해 연락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하진 않겠죠.. 우린 이상부심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일년만이라도 얼른 메시지 보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자발적이지 않은 1분만의 메시지보다(자발적이지 않은데 1분만에 보낼 수 있나..쓰고보니 좀 이상하네요..계속 집앞에 숨어있었어야 가능한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동접..)

자발적으로 동굴에서 나온 1년만의 메시지가 더 가치 있을까 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보상과 직결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집이 될 수 없는걸까요?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닌 곳이었다면 우리의 집이 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동시에 보상을 받지 않는다면 이런 활동에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리가 없겠지요. 참으로 역설적인 장소인 것 같아요 이곳은. 돈 벌려고 왔다가 돈 벌어야 하니까 접속할 틈이 없네요.
시세는 높으나 낮으나 소동과 다툼은 끝이 없구.....부업을 할 수 있다는 기회비용을 날릴만큼 이 일에 내게 소중한가 싶기도 하고...참 그래요 저는 요새. 솔직히 권태기가 온거 같기도 하고 저에게도 집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나 스프링필드님의 환경이 좀더 나았다면 집이 될 수 있었을 까요. 돈이 웬수입니다 돈을 죽입시다.

봄님의 수많은 순간을 간직한 채 카메라는 떠났군요
그 순간 속엔 아마도 행복한 날이 많겠지요
이별은 슬프지만 떠올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으니
미안해 하지 마세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글을 읽다보니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봄님의 마음이 느껴져 와요

봄님의 글을 보고 있자니.... 고딩때 배운 조침문이 떠오르네요...
비록... 故카메라가 됐지만... 봄님과 함께 여러나라를 다니며 봄님께 많은 추억을 남겼으니... 그리고... 이렇게 떠남에 주인이 글까지 써가며 슬퍼해 주니... 카메라로써 최고의 삶을 살다 갔다고 생각해요...
카메라에 인격이 있다면... 아마 행복해 하며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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