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과 보상

in #kr-diarylast year

 내 고양이는 어릴 때 물그릇에 계속 깃털 장난감을 집어넣었다. 그럴 때마다 물그릇을 갈아주며, 혹시 잡은 새를 물에 빠뜨려 질식시키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요즘은 물그릇 대신 밥그릇에 넣는다. 놀던 도중에도 여기저기 끌고 다니다가 밥그릇에 집어넣고 밥을 먹기도 하고, 분명 거실에 있는 카펫 위에 두었는데 자고 일어나서 나와보면 모조리 밥그릇에 들어있기도 한다. 깃털로 된 미끼를 가진 낚시대 서너개가 있는데 그 미끼들을 모두 밥그릇에 넣어놓으니 밥그릇에서 낚시줄이 제각각의 방향으로 뻗어나와 손잡이로 연결된 모습이 재밌다. 나는 그 행태가 사냥에 성공하고 은신처에 저장하는 거라 생각했다. 자랑스럽게 전시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다 며칠 전, 진작에 했어야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밥그릇에 넣어두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밥을 먹기 전에 하는 의식은 아닐까. 깃털을 먹을 수는 없으니 사냥에 성공한 보상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명쾌했다. 왜 때때로 나에게 놀자며 그렇게 심하게 떼를 쓰고, 막상 놀아주면 미끼를 문 채로 밥그릇에 가서 밥을 먹는 것도 이해가 된다. 사냥에 성공한 후에 밥을 먹고 싶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한 발짝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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