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체험에 대한 기억

in #kr-diar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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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체험에 참가한 적 있다. 죽음에 대한 강의를 듣고 유서를 쓰고 낭독한 후,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는 체험이다. 사람들은 주로 유서에 후회를 담았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그럼에도 남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길 바라며 마쳤다. 유서를 읽으며 울고, 그 눈물이 관속에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나는 조금 달랐다. 상실의 슬픔이라는건 어떤 형태로라도 존재하겠지만, 내 삶에 후회가 없고 죽음이 억울하지 않으니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주변 사람들의 슬픔을 덜기 위해서 담은 내용처럼 보이지만, 아마도 내가 죽음의 순간에 절망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관속에서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진행을 도와주시는 분은 나를 관에서 일으켜 주시며 여태까지 본 참가자 중에 가장 관속에 편하게 누워있었다고 하셨다. 당시에 나는 진정으로 그 어떤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나에게 옛 기억을 전해주었다. 내가 지금의 내 나이가 되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라 했다고 한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냐는 친구에게, 나는 올해만큼 더 살고 싶었던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내가 다시 유서를 쓴다면 유서는 어떤 내용일까. 삶에 대한 미련을 담고, 억울함을 내비치고 있을까?

아마 그렇진 않을 것이다. 유서를 쓸 수 있거나, 유언을 남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임종체험때와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 절망하지 않도록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 반면 죽음을 앞두고 내 심정을 표현할 여지가 없다면 한없이 억울하리라. 내가 억울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 심정을 남길 수 없으니 남은 사람들은 내가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여기리라.

어쩌면 나는 그들의 슬픔을 덜기 위해 미리 유서를 써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마지막에 담담한 심경을 남기고자 하는건 꼭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시각각으로 내 삶에 대한 주관적 평가는 변화할텐데 미리 작성한 유서는 이를 실시간으로 담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매순간 유서를 쓰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나에게 충분한 시간이 있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간을 갖지 못했던 아버지의 기일이 다음 주다. 운동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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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체험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의지를 더한다고 하더니, 친구분에게 하신 말씀 보니 킴리님의 생의 의지가 활활 타올라보여 좋습니다. 그 에너지를 계속 보여주세요!^^

막상 글은 힘이 빠져보이는게 문제죠 ㅎㅎ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

네. 마음은 쉽게 다스릴 수 있는게 아니니 몸이라도 잘 다스리려고 합니다.

항상 심경의 변화가 있는것에 공감합니다.
후회없는 삶, 마지막순간에도 웃을수 있는 삶 사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글을 읽으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것 같아요. 유서가 남보다 나를 위한 설득이란것고 그렇구.. 무엇보다 그러려면 후회없는 삶을 먼저 살아야겠다 싶기도 하고 . .댓글달면거 갑자기 복잡해졌네요. 저같으면 억울하거나 후회만 가득 담긴 유서를 썼을것 같거든요 ㅇ.ㅇ 그런점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해야 할것 같아요

어차피 가는데 남은 사람들 괜히 슬프게 하고 싶지는 않더라구요. 단순히 남은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후회 없이 살도록 노력해야겠죠.

나이가 들수록 삶에 대한 집착이 더 생기는 것같아요. 미련없이 떠나기에는 남겨놓은게 너무 많아서...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가게 될까봐 겁이 나기도 해요. 임종체험이라니... 그런게 있다는게 신기해요. 운동하러 가야겠습니다 ㅎㅎ

임종체험이라.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겠군요. 하지만 겁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경험해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체험기 잘 보구갑니다~!

내 삶에 후회가 없고 죽음이 억울하지 않으니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주변 사람들의 슬픔을 덜기 위해서 담은 내용처럼 보이지만, 아마도 내가 죽음의 순간에 절망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저와 같은 마음이라 놀라고 갑니다!

누군가를 남겨두고 떠나게 되는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겠죠?

유서를 써본 적은 없는데 앞으로도 쓸 자신은 없네요. 단지 정리할 것들은 미리 정리해 놓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남겨진 문제를 수습하는데 몇년이 걸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꼭 문자로 남기겠다는게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품을 마음가짐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나저나 몇년이라니...

전 별 감정을 못 느낄거 같네요. 결국 가짜라는걸 뻔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해봐야....

체험에 몰입을 한다기 보다는 언젠가 찾아올 그 상황을 생각하는거였어요.

임종체험에서도 담담하셨다니 김리님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라면 막 울었을 거 같아요.

저도 운동 "조만간" 시작하려고요.

네. 우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농담을 하는 사람도 많았구요.

조만간이라면 내년이라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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