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가을 낙엽이 바람에 떨어졌다.

in #kr-daily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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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미세먼지가 높던 오늘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나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꼼꼼히 쓰고 바삐 걸었다. 과장님은 감탄하며 말했다.

OO씨, 오늘은 공원 좀 걸으면 안 될까요? 정말 낙엽이 너무 예쁘네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바람결에 맞춰 줄줄이 떨어지는 은행잎과 단풍잎이 거리로 쏟아지는 광경을 보았다. 진풍경이었다. 영화 속 장면으로 연출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요. 좋아요! 진짜 예쁘네요.

오랜만에 찾은 돈까스집은 그새 1000원이 올라있었다.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가 칼칼했던 얼큰돈까스. 묘하게도 갈 때마다 맛이 달라졌다. 다음엔 맛있을까. 우리는 서둘러 점심을 먹고 낙엽이 잔뜩 깔린 공원 입구로 들어섰다.

정말 너무 예뻐서 부인 보여주고 싶은데 너무 멀어서 오라고 하기가 그러네요.
점심 시간에 오라고 하세요. 하하하. 무리인가? 어쨌든 이 공원이 회사를 다니는 데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확실해요! 여기서 이런 멋진 장면을 볼 수 있다니

우리는 공원 한 가운데 멈춰서서 한동안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관찰했다. 사람들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가을에 단풍놀이를 갈 생각이 없었는데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 단풍이 아름답게 떨어지는 풍경이 있었다니. 놓치면 억울했을 것 같다.

과장님이 감성적인 사람이라 좋아요! 이렇게 점심시간에 단풍 보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좋구요.
OO씨 그 사진 잘 나왔는데 저 좀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하하. 그럼요!


어떤 기억은 매우 강렬하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이라도 생생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4~5살 쯤 어린 나는 하얀 스타킹에 갈색 원피스를 입고 양갈래로 머리를 묶고는 엄마 아빠 오빠와 함께 집 근처에 있던 초등학교에 놀러 갔다. 그 때는 가을이었고 작은 숲에 낙엽이 잔뜩 쌓여 있었다.

오빠와 나는 낙엽 위에 누워 러브스토리 한 장면처럼 몸을 마구 휘적였다. 낙엽을 서로 던지고 놀며 즐거워했다. 흙이 묻는 것도 쌀쌀한 바람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나는 가을 낙엽에 둘러쌓인 아이였으니깐.

은행잎을 보면 어릴적 살던 천보연립주택이 생각난다. 17평 촌동네의 연립주택은 내게 완벽했다. 마당 약수터(?)에서 모두 식수를 길러 먹고 여름에는 평상에서 수박을 함께 나눠 먹었다. 내 또래 친구가 아주 많이 살기에 밖에 나가기만 하면 언제든 놀 수 있었다. 벽돌로 에스키모가 된 냥 이글루를 쌓는 놀이를 하기도 하고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엄마놀이를 하기도 했다. 가을엔 큰 행사가 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의 은행을 줍는 날이 되면 아침부터 고무장갑을 낀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모인다. 아저씨가 나무를 흔들면 은행이 우수수수수 떨어지고 은행잎 사이의 은행을 줍는다. 밟으면 냄새가 나니 조심해야 한다.

아빠는 은행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빠는 뺀치를 이용해 은행 껍질을 깠다. 소중히 모아 말린 후 프라이팬에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직접 구웠다. 아빠를 닮아 나도 은행을 좋아했다. 아빠는 하루에 5알 이상 은행을 먹어선 안된다고 했다.


점심시간 멈춰서 낙염을 보고나서야 깨닫는다. 나는 행복했구나. 나는 완벽한 어린시절을 가진 아이였구나. 언젠간 과장님과 함께한 오늘을 떠올리겠지.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한 편의 수채화같은 공원이었다고. 가을이 생각보다 길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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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제 산책하다가 멍하니 낙엽을 감상했어요
하늘하늘 떨어지는 낙엽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네요 :)

어제는 곳곳에서 낙엽이 떨어졌나봐요 다들 같은 풍경을 같은 마음으로 감상했다고 생각하니 괜히 좋아지네요 :D ㅎㅎ 낙엽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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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엇 +_+감사드립니다.

저도 가을을 제일 좋아해요. 짧아서 늘 아쉽지만요ㅎ
겨울의 멋도 즐길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

저는 원래 겨울을 제일 좋아했는데 올해는 유독 가을이 좋아요. 이번 겨울은 혹독하겠지만 즐거운 추억 만들어서 내년 겨울을 기다리게 되시길 :D

으엇; 제가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타입이라 ㅋ 뭘 바라고 쓴 댓글은 아니었는데- 진심이 닿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새로운(?) 부담을 드린 것 같기도 하고; 하핫;
아마 조용히 경아님을 응원하는 독자들이 참 많을 거에요 ^_^ !!! 덕담도 감사드려요!

네, 무얼 바라고 쓰신게 아니라는거..바로 알았어요ㅎㅎ
제가 계속 나태해져서 부담이 필요한 시기입니다ㅋㅋ
응원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 자주 뵈어요 😉

으엇! 뜻밖의 과학상식 ㅋ 유용한 정보 감사드려요!

동영상이 너무이뻐요:)

묘하게도 갈 때마다 맛이 달라졌다. 다음엔 맛있을까.

여기가 저의 킬링파트 ㅋㅋㅋㅋㅋㅋㅋ ㅎ허를찌르는 반전이랄까여....

ㅋㅋㅋㅋㅋ 샘터님 용케도 저의 킬링파트를 찾으셨군요. 굳이굳이 넣어버린 돈까스 맛 ㅋ 오사카 조심히 다녀오세요:D

어제, 이틀 퇴근을 안 했더니 배가 더 나온 것 같아 점심을 먹고 동네 한 바퀴 돌았습니다. 낙엽이 많이 떨어져 있더군요.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고 좋았습니다. 졸리다고 밥 먹고 바로 누워서 잤을 시간인데 잠을 줄이고 운동(?) 했네요. 그래선지 오후에 졸리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상쾌한(?) 공기 마시며 산책한 덕분이었나봐요. ^^

점심에 그렇게 한 바퀴 돌고나면 리프레쉬가 되더라고요~ 문득 만나는 낙엽이나 벚꽃이 더 반가운 것 같아요 +_+! 좋은 시간 보내셨네요.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공기가 상쾌해요 ㅋㅋㅋ 오늘도 우산 쓰고 산책 한바퀴 추천드려요.

미 꾸바노 시리즈 랑 일상글도 너무 잘쓰시네요~
ㅎㅎㅎㅎ 소설가세여??ㅎㅎ
얼마전에 낙엽떨어지는거 손에 딱 놓여서 너무 행복했었어요.

엇 뽀돌님이시다! 낙엽떨어지는 거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도깨비 은탁이가 말했었죠:Dㅎㅎㅎ 사실 소설가라기보단 망상가랍니당-ㅋㅋ 감사해요 +_+!

그럼 사랑이 이루어지나봐요 ㅎㅎㅎㅎ
기대할래영 ~

어릴적 소중한 추억에 미소짓고 갑니다~^^

잊고 사는 소중한 추억을 떠오르면 생각보다 더 사랑받았구나 느껴요:D 늙어가나봐요 ㅋㅋ illuck님 반갑습니다:D 자주 봬요!!

과거 기억을 이렇게 생생하게 잘 기억하시고 잘 표현하시는게 신기하네요~
전 한동안 1일 은행알 10개 이상씩 먹곤 했는데, 다행히 별탈 없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괴로움이 글을 쓸 때는 도움이 되네요 ㅋㅋ 전 지금 여기 사는 방식을 배우고 있어요 :D

은행알 은근히 맛있지 않나요? ㅋ갑자기 먹고 싶어지네요:D

우와... 너무 아름다운 사진, 짧지만 너무 이쁜 영상에 아름다운 글...
너무 좋네요 :)

가을에 대한 그런 강렬한 기억은 없지만, 한국의 가을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태국에는 이런 풍경이 없어 아쉽네요 ㅜㅜ

엇! 여기까지 들려주시고 감사합니당:D
한국의 가을 매력있지요.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에요. 한국 가을과 :D
아직 태국을 가본 적이 없어서 지금 태국의 모습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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