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끄끄|| #19 김영하, 오직 두 사람

in #kr-book6 years ago (edited)

오직 두 사람.jpg



그해 여름, 주말의 대형마트는 혼잡했다. 명절이 코앞이었다. 윤석과 아내 미라, 그리고 세 돌을 갓 지난 아들 성민을 태운 쇼핑 카트가 무빙워크를 타고 지하에 있는 매장을 향해 내려간다. 남은 평생 동안 반복하여 떠올리게 될 장면이지만 그때로써는 알 리가 없다.

(중략)

보안요원을 따라 들어간 방에는 수십 대의 모니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모니터들은 오직 대형마트 안의 매대들만을 비추고 있었다. 외부 임대 매장인 휴대폰 가게를 비추는 카메라는 한 대도 없었다.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이 매장 안으로 벌써 세 번째 울려퍼졌다. 반향은 없었다. 방목하는 양떼처럼, 수백 대의 카트들이 매장 안을 평화롭게 소요하고 있었다. 미라는 그들 사이로 헤치고 들어가 소리치고 싶었다. 왜 아무도 방송을 듣지 않아요? 여러분도 아이가 있잖아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그때도 윤석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잠깐이었다. 누군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카트 손잡이에서 손을 떼자마자 조용히 카트를 끌고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중략)

그들은 마트와 경찰서를 오가며 그날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되자 그들은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불길한 예감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_본문 '아이를 찾습니다'에서

_김영하, 오직 두 사람



최근 출간된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이 책 역시 김영하라는 이름 하나로 읽은 책이다. 어렸을 때 그의 책은 딱딱했고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이를 먹을수록 김영하라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상에 점차 매료됐다. 그만의 독특한 시선과 발상은 화려하지 않지만 정곡을 찌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책은 <오직 두 사람>,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신의 장난> 이렇게 총 7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아이를 찾습니다>다.

평범했던 가정을 꾸미고 있던 윤석과 그의 아내 미라는 어느 날 아들 성민을 데리고 대형마트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들인 성민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충격으로 미라는 반쯤 실성하게 된다.
윤석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성민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그렇게 십일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윤석 앞으로 한통의 전화가 온다. 아들인 성민을 찾았다는.
며칠 뒤 성민을 만난 윤석. 반갑게 맞이해보지만 너무나 커버린 아들의 모습이 윤석은 어색하기만 하다. 그건 성민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은 제목과 달리 잃어버렸던 아이를 찾았을 때 마주할 수 있는 문제에 맥락을 두고 있다.
아이를 찾으면 마냥 기쁠 것 같았지만 막상 아들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나자 윤석 부부는 큰 혼란에 빠진다. 윤석은 자신만큼이나 커버린 아들이 낯설기만 하다. 성민은 십일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가 자신의 생모, 생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윤석은 성민만 찾는다면 다시 행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이미 무너진 가족관계를 회복하기에 그들은 너무 오랜 시간을 타인으로 살아왔다. 시간은 모든 걸 파괴한다. 십일 년이라는 시간은 혈연관계마저도 파괴하기 충분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들은 바로는 소설가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재밌게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이 그렇다. 단순한 소재들로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시종일관 흡입력이 있다. 감동이나 교훈은 없다. 오로지 김영하라는 소설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재밌을 뿐이다.

왜 김영하를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소설가라 하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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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소설가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재미있게 쓸 줄 알아야한다는거! 진짜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같은 얘기도 누가 하냐에 따라서 이야기가 노잼이되거나 핵잼이되거나 하잖아요...헤헷

진짜 그래요. 주변에서도 별거 아닌 걸로 입담이 좋아서 재밌게 하는 사람이 꼭 있잖아요. 저는 물론 노잼쪽에 속하지만요. ㅠ
그래서 소설가가 되질 못하나 봅니다. 흙흙

글잘봤어요 읽어보고싶네요..줄거리도 그렇고 제목과달리 잃어버린 아이를 찾았을때 맥락을두고 있다니 더 궁금하기도하고요 책소개 감사해요~^^

안녕하세요. 해피님. :)

저도 생각지도 못한 시선에서 접근한 소설이라 재밌게 읽었던 거 같아요. 잃어버린 아이를 찾으면 마냥 기쁠 것 같지만 이미 망가진 가족은 다시 복구하기 힘들 거란 생각은 안해봤거든요. :D

날이 많이 춥습니다. 항상 건강조심하세요! :)

가끔씩 별것 아닌데 집중하게되고 몰입감 넘치는 글을 읽는데 그게 바로 작가의 필력같네요 ㅎㅎ.

안녕하세요. 호걸님. :)
네. 별것도 아닌 걸 재밌게 만드는 것 오로지 작가의 힘인 거 같아요. 그래서 소설가들을 이야기꾼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거 때문인가봐요. :D

오늘도 날씨가 많이 춥다고 하네요. 감기조심하세요! :)

저는 책 커버를 보고 가끔 사는 경향이 있는데 ㅎㅎ 이 책표지가 너무 마음에 드네요 ㅋㅋ

안녕하세요. rudolph님. :)

저도 은근히 표지를 보긴 하는데 이 책은 모니터 상으로 본 거 보다 실물이 더 괜찮았던 거 같아요. :D

날이 많이많이 춥네요. 오늘도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되세요! :)

김영하의 소설 중에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참 재밌게 봤었습니다. 그 소설은 현실의 먹먹함을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었죠. 뭐랄까 김영하 작가의 작품은 후반부에 묵직한 한 방이 있는 소설처럼 다가옵니다.
저 단편소설집도 재밌을 것 같네요!! 리스트에 올려놔야겠습니다 ㅎㅎ

맞아요. 김영하 소설은 후반에 오는 묵직한 한 방이 있죠. :)
보시면 분명 재밌으실 거예요. 진중하진 않지만 김영하 작가의 독특한 세계를 알 수 있다고 할까요? 시종일관 재밌게 읽었던 거 같아요. :)

나중에 기회되면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덕분에 좋은 책 잘 알아갑니다

네. 읽어보시면 분명 재밌으실 거예요. :)

김영하 소설은 딱 두권 읽어봤는데 둘 다 넘 재밌게 읽었어요!!!
이 책도 넘 기대되네요!
11년만에 찾은 아이와 어떤 일들이 있었을지 넘 궁금해요 ㅋ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김영하 소설 재밌게 보셨다면 이 책도 분명 재밌으실 거예요. :)
문장도 술술 잘 읽혀서 읽는데 오래걸리지도 않았던 거 같아요.

오늘 날이 많이 추운데 감기조심하세요! 해이님. :D

책 한 권 읽은 느낌입니다~~
아이를 잃었을때 그 지옥같은 경험을 ~ 그 아이를 다시 찾았을때 또 다른 아픔의 벽을 마주하는 정말 가슴저린 이야기같네요~
책을 어려워하는 사람으로서 이해좋게 써주신 글에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아이를 찾습니다 소재가 조금 무거울 수도 있는데 안의 내용은 생각보다 신파적 요소는 없어요. 뭐,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겠지만요. :)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날이 너무너무 추운데 감기조심하세요. :)

김영하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유일하게 '오빠가 돌아왔다'를 읽은 기억이 있는데 단편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초코님 오랜만에 찾아뵈서 죄송해요..ㅠㅠ 이제까지 나름 혼자 슬럼프 겪고 있다가 이제야 찾아뵙습니다. 앞으로는 자주 찾아올게요 ㅎㅎ)

그러셨군요. 슬럼프를 겪으셨다니 혼자 얼마나 힘드셨어요. ㅠ
저도 작년에 글 쓰기 슬럼프가 와서 글하나도 쓰지 못해 애를 먹었던 적이 있어요. 징징거린다 할까봐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더랬죠. :)

다시 돌아오셔서 좋은 그림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송이님. :) 저도 더 많이 찾아뵙고 함께 할게요!
날이 많이 추운데 감기조심하시고 따뜻한 하루 되세요! :)

초코님도 슬럼프 겪으셨군요. 실은 저도 초반에 그랬어요. 아무리 글 쓰는 걸 좋아한다지만, 그 이면엔 글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별로 소통도 못하고, 하루가 지나면 글은 묻히고, 난 또 글을 쓰고.. 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1년은 해보자고 마음 먹었으니 좀 더 해보자, 했던 게 여기까지 왔네요.
슬럼프는 앞으로 또 올 수 있어요. 그때는 혼자 동동거리지 말고 알려주세요. :)
슬럼프 녀석따위, 트럼프한테나 보내버려욧!

호주 여행 때문에 못 오시는 줄 알았더니.. ㅠ.ㅠ
슬럼프 녀석 따위 발로 뻥 차버리세요!
슬럼프! 넌 트럼프하고나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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