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bookclub 독후감]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by 볼테르 ㅡ 캉디드의 낙관주의, 현실을 합리화하는 바보 같은 순진함

in #kr-book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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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는 "이 세계는 최선의 상태이며, 지금과 다른 결과는 상상할 수 없다"는 스승님 팡글로스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다. 부모가 없는 고아이면서도 부유한 남작의 성에서 안락하게 살고 있는 그에게 "이 세상이 최선의 세계"라는 건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철학이었을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성은 독일에서, 아니 세계에서 최고로 멋진 성이(라고 믿)었고, 사랑하는 남작의 딸 퀴네공드를 매일 볼 수 있었으며, 스승님의 위대한 가르침으로 무지를 깨우치고 있었으니 과연 이보다 더 좋은 세계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캉디드가 자신의 딸인 퀴네공드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남작은 화가 나서 그를 성에서 내쫓아 버린다. 그 후로 캉디드는 온 세계를 전전하며 신밧드에 버금가는 모험을 하고, 오디세우스와 맞먹는 고난을 겪게 된다. 겨우 목숨만 부지하며 생을 이어가는 캉디드는 탄식을 한다. 팡글로스가 내 모습을 봤다면 뭐라고 할까? 이래도 이 세상은 최선의 세계라고 할까?

If this is 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 what are the others like? (p. 29)

이게 최선의 세계라면 도대체 다른 세계는 어떤 모습이란 말인가?


출처: Goodreads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는 아마도 '낙관주의'일 것이다. 책의 제목에도 버젓이 나와 있는 '낙관주의(Optimism)',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 이 책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이렇다.

“Optimism, what is that?”
“Alas!” replied Candide, “it is the obstinacy of maintaining that everything is best when it is worst”; (p. 77)

"낙관주의, 그건 뭐죠?"
"아!" 캉디드가 대답했다. "그건 모든 것이 최악의 상황일 때도 그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완고함이랍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낙관주의는 바보 같은 순진함이다. 돈을 다 날렸으면서도 이번에는 대박이 날 거 같아서 또 빚을 내서 달려드는 도박꾼처럼 맹목적이다. 애초에 "만물이 최선의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었으니(all things have been created for some end)", 그 결과물도 당연히 최선의 결과일 테고, "지금과 다른 결과는 있을 수 없다(things cannot be otherwise than they are)."고 주장한다. 또한 모든 일은 다 그 일이 일어날만한 충분한 이유(sufficing reason)가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겉으로는 최악의 상황처럼 보일지라도 지금이 최선의 상태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낙관주의는 좀 다르다. 나는 낙관주의란 그렇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생각한다. "더 좋은 일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만물이 최선의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어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지금이 최선이다"가 아니라, "지금 현 상황이 나쁘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낙관주의라고 믿는다.

만일 모든 일이 다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면,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이유가 뭔지 고찰해보고, 어떻게 하면 그런 불행이 반복되지 않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현재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더 나쁜 상황이 아님에 감사하며,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 그것이 낙관주의다.

"캉디드"의 낙관주의는 과거를 답습하고, 현재에 안주하며 현실을 합리화한다. 내가 생각하는 낙관주의는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에 감사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한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없이 그저 현실에 만족해하는 것은 진정한 낙관주의가 아니다.

이 책 "캉디드"는 사회에 만연해있는 부조리는 외면하면서 그저 "이게 최선이다, 지금이 최선의 결과다"라고 떠드는 당시 세태를 비판하려는 목적이 명확한 책이다. 그렇기에 조롱의 대상을 필요 이상으로 더욱 희화화하기도 하고, 으레 콩트들이 그렇듯 과장과 허풍도 동반되어 있다. 그걸 알면서도 '낙관주의'를 '바보 같은 믿음'으로만 치부해버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이 책의 한글판을 구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영어 번역본으로 읽었다. 워낙 철학을 어려워하는 데다 옛 어투로 쓰인 영어로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이 전하는 의미와 재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자와 해학이 넘치며, 실소를 자아낼 만큼 재미도 있으니 이 책에 대한 내 평가는 다소 긍정적(optimistic)이라 하겠다.


한국어판 제목: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영어판 제목: Candide or Optimism
저자: 볼테르 (Voltaire)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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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ㅋ.. 이거 잼따..

ㅎㅎㅎ 저도 그 글 읽었는데 이렇게 바로 실행하시는군요. ^^ 조만간 개복치들을 위해 팁 사용설명서를 써주실 것 같은 이 느낌! :)

볼테르가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지나치게 명확하기에 해석이 다 비슷할 수 있음에도 시각은 제각각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역시 제 예상이 맞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어쩌면 영어로 읽은 제 한계일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이번 책은 우리말로 읽었으면 좀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영어도 번역본이라 원서의 장점이 없거든요. :)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스팀잇에서 핫한 책이군요. :)
저도 조만간에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이번달 북클럽 도서가 "캉디드"거든요. @chocolate1st 님도 함께 참여해보세요. 이달 말까지 책 읽고 독후감 쓰시면 돼요. kr-bookclub 태그 달고요. ^^

오늘 @neojew님에 이어 감상문이 두편이나 올라왔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bree1042님의 시각이 저와 상당히 비슷하신 것 같습니다. 낙관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토대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낙관주의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요즘 공부하고 있는 심리치료이론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보다는 "~와 함께, ~와 더불어"라는 관점이 더 유익하다는 것이죠. 즉, 현재 갖고 있는 부정적인 상황이나 감정을 극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한 요소로 인정하는 겁니다. 물론 모든 상황에 적용되진 않겠지만 새로운 관점이라 한 번 공유해봅니다 :) 영어로 읽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충분히 모든 내용을 잘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멋지시네요!

보상금인 1SBD는 제가 바보같이 모든 SBD를 파워업에 방금 써버려서 몇시간 뒤 글 보상이 들어오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ㅠ 리스팀도 방금 @neojew님것을 해드려서 시간 텀이 있는 저녁 시간에 해드릴게요~

아 그리고 @neojew님께서 상당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신 것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셔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이미 읽어보셨을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약점마저도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보는군요! 진정한 낙관주의네요.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한 요소로 인정한다니, 진짜 그렇게만 된다면 자학적인 열등감에서도 금세 벗어날 수 있겠네요. 좋은 시각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네오쥬님 글도 읽어보겠습니다! 자고 이제 막 일어나서 아직 못 봤어요. ㅎㅎ

오옹 우선 원서를 읽으신다는 것에 감동했습니당ㅎ_ㅎ 어떤 내용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최선'이라는 단어를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늘 제가 고민하고 있던 부분인지라 눈길이 가는 책이네요~

현대 작가의 영어보다 이런 고전은 영어로 읽기가 좀 더 어렵습니다. 한글책을 못 구해서 어쩔 수 없이.. ㅠ.ㅠ
@ria-ppy 님도 전공 공부하시려면 영어로 읽지 않으시나요? :)

이번 북클럽에 참여하시나요? 궁금하네요. 블로그 또 구경갈게요. ^^

잘 읽었습니다.

'최선의 목적'과 관련된 언급은 '예정조화설'에 대한 볼테르의 비판에 해당 하는 것입니다.
이 소설의 여러 곳에서, 볼테르는 대륙의 합리론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내고 있더군요. 영국에서의 망명생활동안 경험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원서로 읽는 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좋지요^^

그렇군요. 아무래도 고전을 영어로 읽는다는 건 약간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네오쥬님 독후감도 보러 가겠습니다. :)

낙관주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네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니, 고전을 영어 원서로 읽으시다녀 ㅠㅠ 진짜 대단하십니다 브리님 ㅎㅎ
제가 생각하는 낙관주의의 의미도 브리님과 비슷합니다 :)

이번 책은 도전이었습니다. ㅎㅎ 그나마 책이 얇고, 고전치고는 재미있고 쉬운 편이라 어찌어찌 읽었네요. ^^;

책에서 낙관주의에 빠진 인물은 조금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품은 낙관이 아니라
무조건 잘 될거고 모든 것은 최고의 상태에 존재하고 있다고 맹목적으로 믿기만 하는 낙관론을 가지고 있나 보네요
진실을 외면하고 그렇게 믿는거면 고집불통 아닌가요? ㅎㅎ
후기 잘 봤어요 ^^

저 팔로워 100 되어서 기념 이벤트로 제가 만든 추첨기 프로그램 배포 하고 있어요 필요 하시면 블로그 한번 들려주세요 ^^
https://steemkr.com/kr-dev/@redkain/100-100

네, 맞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블로그도 곧 방문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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