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올리버색스

in #kr-book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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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의학계의 계관시인, 투명한 지성과 따스한 휴매니티, 현대의학과 현대인에 대한 경이로운 매타포 등등... 저자인 올리버 색스와 그의 책에 대한 찬사들은 대단하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신경과 전문의인 올리버 색스(Oliver Sacks)가 십수년 간 그가 실제로 만난 환자들과 그가 직접 관찰하고 기록한 사례들을 모아놓은 임상기록이며, 또한 훌륭한 단편 소설집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스토리와 문장들이 탁월하다.

병을 다루는 의사임에도 환자와 병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는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생리학적이고 신경학적인 기능으로서의 의사가 아니다. 그는 인간의 정체성에 기본을 두고 병이 발생한 원인을 추적하고 그 병을 지닌 환자에게 집중하되 그의 인생을 기저에 둔 접근방식을 택함으로써, 진단과 처방을 다분히 기능적으로 작용하게 하는 의학과 병이라는 이분법적 체계를 따르지 않는다. 그의 방식은 인간적이고 윤리학 적이다. 병을 발견하고 환자들의, 가능한 모든 참고 가능한 요소들을 직접 탐문하고 수집하고, 스스로 끝없이 자문하며 그 병을 환자와 동일시 하지 않고 병을 지닌 환자의 현재를 함부로 단정 짓지도 않는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많은 환자와 그들이 가진 병은 안타깝게도 영구적으로 치료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정도 좋아질 가능성은 있겠지만... 여기서 올리버 색스 박사의 의사로서의 신념이 발한다. 그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치료 불가능함을 결론짓지 않고 그 병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환자들에게 알려주려 한다. 이 글의 표제작이기도 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뇌의 한부분이 손상되어 심각한 인식불능증을 가진 음악 선생 P의 경우, 음악에 있어서의 재능과 능력은 여전하여 음악 속에서 그는 자유함을 얻는다. 그래서 그에게 음악 속에서 살아갈 것을 권유한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의사로서의 고민과 환자에 대한 애정은, 그 사람 자체를 '좋은 사람'이라고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가 트럼프를 싫어하는 이유가 단지 그의 정치적 색깔 때문은 아니지 않은가? 그가 좋은 사람 같지 않아서가 아닐까? 아니 못된 사람 같아서다 적어도 나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책 서문에도 밝혔듯이, 당시 신경 정신과 분야에서 등한시 되던 '우뇌'의 기능을 설명하고자 한다. 추상성을 대변하는 '좌뇌'가 아닌, 구체성 실제성을 나타내는 우뇌의 기능을 강조하며, 총 4개의 챕터로 나누었다. 바로, 신경학 적으로 어떤 한 부분이 결손되어 생기는 병에 대한 "상실", 그 반대로 기능항진으로 인한 "과잉"(대표적인 예로 투렛 증후군이 있음), 어떤 삶의 한 부분을 끊임없이 회상하게 되는 기억에 관계하는 "이행",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반적으로 인간이 지녀야 하는 기본적인 지능은 상당히 떨어지지만 어떤 한 부분에서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을 다루는 "단순함의 세계" 이다. 제 4장 "단순함의 세계"에 등장하는 백치천재는 아마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써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번역한 것일텐데, 이미 고유명사이고 의학용어로 알고 있는 단어를 굳이 과하게 백치천재로 번역한 건 좀 과한 번역의 예가 아닐까 한다. 우리 독자들의 수준은 생각보다 높다는거.

대뇌피질 우후두피질 이마엽 관자엽 ..... 등등, 이미 많이 들어봤지만 도무지 그것들이 뭔지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우리 뇌 속의 기관들 중 하나가 고장을 일으켜 나타나는 이상증세를 가진 환자들의 이야기들이 챕터별로 등장한다. 물리적으로 아픈 것이 아니라 뇌에 관계한 특정 기능에 문제가 생긴 환자들, 주로 이미 퇴화된 신경계가 자연적으로 이상을 일으키거나 어떠한 계기로 인해서 치명적으로 뇌의 한 부분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의 경우들인데 각각의 병례들의 이야기성이 다분해서 충분히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방대한 의학 상식을 담고 있고, 챕터별로 적지 않은 의사로서의 분석과 전문가별 논점분석이 포함되어 있어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아왔던 수많은 기억상실과 그로인한 신경정신과적 이상 증후군들의 예가 풍요롭게 등장한다. 그래서 '그때 그' 막장 드라마에서의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사건이 해결되던 순간의 기억이 나서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올리버색스 선생은 알기나 할까? 한국의 막장 일일드라마가 그의 소중한 임상병례의 기록을 슬쩍 가져다 쓴다는 사실을?

"'정신운동발작'의 경우 갑자기 격정에 못이겨서 날뛰는 경우도 있었고 발작하는 틈틈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이른바 정신 운동성 인격이다)"
...어쩌면 우리가 내는 화나 변덕이나 회상들이 '발작'이라는 이름으로도 치환 가능하다면, 그것들은 뇌의 이상기능에 의한 발작 증세들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본인 내부에 있는 패배자를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 다른 이에게 증오의 말을 쏟아내는 그들과, 가끔 치밀어 오르는 화에 무릎 꿇는 우리들도, 신경정신과적으로 보면 모두! 정신병을 가진 미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 올리버 박사님은 이야기 한다. "...아무리 기묘하고 이상하게 여겨질지라도 이를 '병적'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부를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몇해전 희귀암으로 투병하다가 사망하였다. 의사로서 환자들에 대한 기록은 물론이고 평생에 걸쳐 쓴 일기만 천권이 넘는다고 하니 그의 인생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글쓰는 의사선생님이라니...!!

많은 평론가들과 독자들의 리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글은 그저 기록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것이다. 소설 책에서나 볼법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이 있는가 하면, 학술서에서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문장들이 흐르고 넘쳐서 줄을 그은 문장들이 유난히 많다.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라는 뛰어난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자부심, 내 자신에게 보내는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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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키퍼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글쓰시는 솜씨가 대단하신 것 같아요! 푹 빠져 읽었습니다. 저도 한번 이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제가 애정해 마지않는 브라이언님이 오셨군요^^ 이 책은 정말이지 훌륭한 책이에요. 읽어보시면 후회 안하실 듯. 계속 글 써주세요. 저는 브라이언 님의 글이 너무 좋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작가입니다 :)
리뷰 감사합니다!

역시 의사샘들이 좋아하시는 작가군요^^

선물받은 책이었는데 읽지를 못했어요. 책장에서 다시 찾아봐야겟네요.

네ㅎㅎ 좋은 책이라 주위에 선물로 받으신 분들이 많으신듯요ㅎㅎ

예전에 서점에서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인 『온 더 무브』를 훑어 본 적 있는데요. 선생님 젊었을 때 운동도 열심히 하셨더라고요. ㅎㅎ 이 글을 읽으니 두 책 다 읽고 싶어집니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감동적이에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네 정말 규칙적인 생활하시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분이셨다고 하네요~

음.... 무조건 알려주고 이런게 해결책이 아니란 거네요...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의 일부로써 인정해 주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한다..... 라는... 느낌?? 전 잘 모르는 작가네요 부끄럽지만... ^^

네~ 정확히 맞아요 병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신거조^^

뇌과학 분야는 참 재미 있고 또 미지의 세계중 하나인것 같습니다. 저도 뇌에 관한 저서들은 조금씩 읽어봤는데 올리버 색스의 책은 유명하여 제목도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 못 읽어 봤군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부쩍 뇌과학에 관한 화두가 많았던 해가 작년과 올해인듯 해요. 저는 과학 쪽은 영~ 문외한에 관심도 별로 없는데 이 책은 굉장히 좋았어요: 소설집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읽은지 좀 되어서 기억이 정확하게 나진 않지만, 환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정신병을 앓는 사례가 나왔던 것 같아요. 병 없이 불행한 사람들과 병과 함께 행복한 환자, 둘 중에 뭐가 더 나은 삶인지.. 오래 생각하게 했던 책입니다.

아아 박히는 말입니다. 병없이 불행한 사람과 병을 안고 행복한 사람들... 멋진 표현 감사합니다

희귀암으로 사망하신게 안타깝네요
환자를 이해하는 태도가 멋진 분이시네요.

우리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와 닿아요ㅠ

ㅠㅠ 우리 모두는 정신병을 앓는 중일지도 몰라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에도 나오잖아요 그런 말이...

저자가 사망하셨다니. ㅠ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숨결이 바람될 때라는 책을 재밌게 읽어서 이 책도 너무 흥미롭네요. 리스트에 올려두고 꼭 읽어보겠습니다. :)

숨결이 바람될 때는 의사 자신이 폐암에 걸려 투병하면서 경험한 것들과 사유한 것들을 엮은 책이라면 이 책은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를, 한 인간의 뇌에 있는 문제를 관찰하고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연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참고로, 제가 리뷰한 숨결이 바람될때 입니다^^

폴오스터의 책보다는 올리버 색스의 책이 더 끌리는군요! ㅋㅋㅋ 사실 전 책편식이 심해서... 북키퍼님의 리뷰를 보면서 하나하나 고쳐나가봐야겠습니다. ㅋㅋㅋ일단 서점부터..... 아니 운동부터인가...

서점이든 운동이든 솥밥님의 필요에 가장 적합한 곳이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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