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마포구) 리북방, 한국식 오마카세의 가능성
"리북방"이라는 이름은 식당과 잘 매치가 되지 않는다. 영업하는 입장에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는 것 자체로 음식에 자신이 있다는 걸 웅변하는 것이다.
이 식당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다른 예도 있다. 식당 위치다. 구글맵이나 네이버맵이 있어도 간신히 찾아갈 수 있는 후미진 곳이다. 주차는 불가능하다. 차를 가져왔으면 알아서 주차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 식당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마지막 예는 바로 아래 사진이다.
음식 만드는데 방해되니 중간에 들어오지 말라는 선전포고다! 실제 일행 중 한 명이 눈치 없이 차를 끌고 왔다가 주차 자리를 찾느라 이 시간을 놓칠뻔 했다. 이 식당은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출입할 수 있다. 소방법상 이게 가능한가를 따지기 전에 음식 맛에 관한 고집을 보여주는 예다.
이런 고집을 함부로 부릴 수 없다. 식사에 대한 만족감이 없다면... 내가 직접 먹어본 결과, 고집을 부릴 만 하다. 메뉴 구성 자체가 독특하고, 음식은 맛있고, 가성비는 놀라운 정도다. 미슐랭에 자주 등재되는 게 다 이유가 있다.
중요한 걸 까먹을뻔 했다. 이 식당의 장르는 "순대 오마카세"다.

처음 나오는 "차가운 돼지고기 한입과 곁들임"이다. 한입이면 손님이 아쉬워할까 봐 고기 하나 더 올려주는 센스가 있다. 물론 두 개를 한꺼번에 먹고 한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고기는 편육인 걸로 보인다. 옆 샐러드도 상쾌한 맛이다.
이 요리 이름은 "리북의 해산물 냉료리"다. 이 이름을 듣고 나서야 "리북방"이 뭔 뜻인지 알았다. 탈북자가 '리북서 왔시요' 할 때 그 이북방이다. 두음법칙을 무시하는 북한식 발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요리 이름도 "이북의 해산물 냉요리"가 아니다.
주인장이 탈북자도 아니고, 굳이 한국식 발음 규칙을 무시하는 이름을 짓는 건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 뭐 음식만 맛있으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맛있다. 독특한 냉면 맛이다.
이건 "보양식"이라는 메뉴다. 뭔가 설명을 잔뜩 들었는데 다 잊어버렸다. 그냥 맛있었다는 기억뿐이다. 식사 이름이 보양식이니 몸에 좋은 게 잔뜩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순대 오마카세 메뉴가 나온다. 네 종류의 순대가 나오는데, 맨 위 사진의 3시 방향에서 시계방향으로 내준다. 9시에 있는 게 "아바이 순대"라는 것만 빼고 순대 이름은 다 까먹었다. 정말 미안하다.
이번에 순대 맛이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걸 내가 깨달았다. 다양한 종류를 순서대로 먹어보니 확실히 알겠다. 각 순대에 맞게 찍어 먹을 소스도 알려준다.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찍어서 먹으면 된다. 사실 다 큰 어른이 먹고 싶은 대로 먹겠다면 누가 말리겠는가. 그러나 이런 곳에선 고집 피우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이득이다.
이 메뉴는 "한우 설야멱적"이다. 조선시대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나오는 음식인데, 풀어보자면 "눈 오는 날에 찾는 고기구이' 정도가 되겠다. 하여간 선비님들 센스는 알아줘야 한다. 이날 눈은 안 왔지만 소금으로 고기에 눈이 쌓인 것을 깨알같이 재현한 것을 보라. 불맛이 가득한 러프한 맛이라 색다르다.
요건 별도로 나오는 순대다. 순대가 하나 정도는 더 나와야 할 것 같다는 의미에서 주는듯하다. 독특하게 양고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먹어보니, 고기 맛이 조금 다른듯한 느낌도 든다.
다음은 "차가운 이북 돼지고기 료리 와 곁들임" 되시겠다. 자꾸 메뉴 이름이 이러니 평양 옥류관에라도 와 있나 하는 착각이 든다. 고기를 백김치에 싸 먹는 맛은 끝내준다. 이북이나 한국이나 먹는 법과 입맛은 비슷한가 보다.

거의 마무리 메뉴다. "식사와 국물"이다. 솥밥 비쥬얼이 장난 아니다. 밥도 구수하고 국물도 칼칼하다.
후식이다. 상상할 수 있는 맛이다.
이런 독특한 음식점이 늘어야 한다고 본다. 그저 그런 스시를 예쁘게 내놓으면서 10~20만 원씩 받는 스시 오마카세가 너무 많아졌다. 살짝 인기가 꺾이고 경기가 위축되니 그런 가게부터 줄줄이 폐업 중이란다. 그럴 거라 예상은 했다.
그러나 이 가게는 장사가 안돼서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주인장이 쉬고 싶어서 없어지면 모를까..... 가성비는 비교할 수 없다. 이 정도 음식을 배불리 먹고 일 인당 7만 원 정도 밖에 안 나왔다. 순대를 테마로 오마카세를 구성하는 상상력과 실행력도 뛰어나다.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이 가게 주인은 뚝심과 실력이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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