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y의 샘이 깊은 물 - 목욕탕 삼국지

in zzan4 years ago

img085 대문.jpg

우리 동네에는 목욕탕이 두 군데가 있다.
한 곳은 우리 집에서 길 하나 건너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는데 워낙
낡은 옛날식 목욕탕이다. 목욕비를 내고 키를 받아 탈의실 문을 열고
발을 들이는 순간 반겨주는 청국장 띄우는 것 같은 냄새가 제일 먼저
아는 체를 한다. 탈의실 사물함도 그렇고 사물함 위에 촘촘히 올려놓은
목욕바구니도 그렇고 오래 된 체중계와 헤어드라이어도 한 몫 한다.
처음 찾은 사람은 시간 이동을 한 것 같은 착각에 어리둥절하기도 한다.

벽에 걸린 거울 앞 장판에는 염색을 하다 흘린 얼룩이 페인트자국처럼
찍혀있고 사방에 걸린 벽걸이 선풍기는 목디스크 환자처럼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가운데 놓인 평상엔 누가 얼굴만 가리고 누워있다. 뼈만
앙상한 조그만 타올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면 온탕과 냉탕이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고 가운데 좁다란 물이 찰랑거리며 양옆으로 쪼그리고 앉아
목욕을 하는 완전 70년대 목욕탕 그대로다.

잘 나오지도 않는 샤워기와 망가진 수도꼭지 타박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낡은 목욕탕을 찾아온다. 그건 바로 한증실 때문이다. 꽤나 괜찮다는
사우나를 다니던 사람들도 한 번 이곳에 오면 단골이 된다. 시간대별로
자주 만나는 사람들끼리 친해지고 밥도 먹고 쇼핑도 다닌다.

다른 곳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건물도 신축건물인데다 몇 해 전에도
한 번 리모델링을 하고 현대식으로 꾸미고 있었는데 이번에 또 거금을
들여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고 오픈을 했다.

비도 지정거리고 여름답지 않게 선선하기까지 한 날씨에 나이 들어가며
나타나는 증상이 있다. 온 몸이 찌뿌둥하고 삭신이 쑤신다. 이럴 때 약보다
좋은 곳이 목욕탕이다. 오늘 오픈이라고 소문도 났겠다, 며칠 전부터 같이
가자고 모의를 한다. 낮에 시간을 내지 못해 나는 빠졌지만 모두들 쥬스에
빨대가 꽂아 들고 마시며 몰려온다. 정말 좋고 뭐가 괜찮고 하며 사우나는
이번 주까지는 공짜라고 하며 꼭 같이 가자고 부추긴다.

여인들의 수다에 좋다고 장단은 맞추지만 속으로는 걱정도 된다. 다음
달이면 신축건물이 완공되고 현대식 설비를 갖춘 대형 목욕탕이 오픈을
앞두고 있다. 지금 사장도 마음이 급해져 서둘러 공사를 할 수밖에 없는
하소연을 들었다. 시설이나 서비스가 개선되면 이용자들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좁은 시골 동네에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폐해는 없기를 바란다.

앞으로 벌어질 목욕탕 삼국지에서는 우호적인 관계로 동반성장하는
이야기를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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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목욕탕의 추억~ 그리고 경쟁... ㄷㄷㄷㄷㄷ

어서 온 세상이 다시 건강 찾길~! 💙

!MARLIANS

항상 행복한 💙 오늘 보내셔용~^^
2020 스팀 ♨ 이제 좀 가쥐~! 힘차게~! 쭈욱~!

낡은 목욕탕
늙어가는 아줌마들 ㅎㅎ

옛날 목욕탕은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죠
아들녀석이 집에 가면 집앞 오래된 목욕탕 같이 가는걸 좋아합니다.
주말아침이면 아빠 목욕가죠 ㅎㅎ 둘이가서 등 밀어주는 재미가 있죠
사람도 몇 없어 둘이 잼지게 놀다 옵니다.

가끔 먹을 것도 싸오고
커피도 큰 통에 타서 나누어 마시는
나름 재미있는 곳이랍니다.

음... 새 건물도 좋고 오래된 건물도 좋아요.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 좋겠네요. ㅎㅎ

당분간은 쏠림이 있겠지요.
나중엔 자기 좋은 곳으로 찾아가게 되어 있어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어째 비유가 좀 쌩뚱맞긴 하지만^^

노탕은 죽지 않는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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