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 이층 남자

in zzan4 years ago (edited)

가끔 못 보던 빨간 승용차가 가게 앞에 주차를 했다.
처음엔 잠깐이면 되겠지 했는데 매번 오래 걸리면서도 마주쳐도 양해를 구하거나 사과를 하는 법이 없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동네에 나타나면서 무단 주차를 시작했다. 그리고 밤이 되어야 차를 뺐다.

이건 아니지 싶어 가게 앞에 장시간 주차는 곤란하니 다른 곳으로 이동해 줄 것을 말했다. 그 후 그 빨간 차는 옆집이나 주변 좁은 공간에 주차를 하고 밤이 되어야 떠났다. 주변에서 빨간 차의 장시간 무단 주차로 인한 불평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는데 밖에 예의 그 빨간 차를 주차하는 모습이보였다. 눈이 마주치고도 아무 얘기도 없이 가고 있었다. 쫓아 나가서 그대로 가려는 그를 불러 세웠다. 영업시간에 무단주차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주변에 공용주차장을 이용하도록 하라고 얘기했다.

그도 이번에는 물러날 태세가 아니었다. 옆 건물 이층을 임대해서 오픈이 다가와 인테리어 공사로 한 참 바빠서 그러는데 이웃에서 너무 한다는 투였다. 나도 이번에는 작심하고 말을 했다. 영업시간에 무단주차를 하는 것은 상식이하의 행동이라며 더욱이 출입문을 막아 세우면 오늘 영업을 접으라는 얘기가 아니냐고 했다. 앞으로 공사 끝날 때까지 주차장으로 이용하겠다는 계획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영업수익을 보전해서 주차비를 책정하고 사용하도록 하라고 얘기했다. 그 사람은 나를 노려보며 차를 몰고 떠났다. 노려보는 그의 눈이 노랗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에 이번에는 까만 승용차가 나타나서 장시간 주차를 했다. 파리가 낙상을 하리만큼 광택이 나는 에쿠오스에서 내리는 여자는 단발머리에 골프웨어 차림이었다. 빨간 차의 남자가 동행을 하며 안내를 했다. 이틀이 멀다고 이층으로 드나들며 차 두 대를 동네에 세우고 원성을 샀다.

어느 날은 차 두 대가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하고 그러다 빨간 차는 조금 멀리 세우고 에쿠오스로 이동을 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세워 두고 보드를 타거나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 킬킬 거리며 돌아오기도 하는 모습으로 동네사람들의 원성을 그대로 무시했다.

손님이 뜸한 가게에서 한가한 틈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노란 눈의 빨간 차주가 웬일로 걸어서 가게 앞을 지나다 마주쳤다. 쌩하고 모른 체하기도 그래서 잠시 커피 한 잔 하라고 했더니 뜻밖에도 사양하지 않고 들어왔다. 머쓱할 것 같았던 생각은 오판이었다. 자기소개에서부터 우리 동네에 오게 된 동기며 이층엔 피부 관리실로 간판을 달지만 단순히 피부 관리 차원이 아리라 림프를 통한 독소배출로 건강 미인을 만든다고 했다. 나에게도 동안마사지를 하면 워낙 좋은 피부라 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은근히 고객 유치를 위한 전략을 펼쳤다. 에쿠오스의 여자가 그 방면의 전문가라고 했다. 거금을 들여 모든 것을 그쪽의 조건에 맞춰주기로 하고 겨우 스카웃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카페인 효과라고 해야 할지 커피를 마시고 난 다음부터는 인사도 잘 하고 태도가 고분고분 해졌다. 차도 조금 떨어진 공용주차장을 이용하고 걸어서 가게에 드나들며 공사를 진행했다. 에쿠오스의 여자도 가끔 떡이나 빵 같은 간식거리를 들고 와서 먹어보라고 하는 친절을 보였다. 하긴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있겠느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인테리어는 거의 완공 단계에 이르렀고 오픈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은 날 노란 눈의 남자가 팔에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일을 하다가 어깨 인대가 파열 되었다고 했다. 별 생각 없이 오픈이 다가오는데 걱정이라며 빨리 차도가 있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건넸다.

한가한 틈에 둘러앉아 먹는 옥수수는 유난히 맛있었다. 열이 올라 빨간 얼굴로 아귀처럼 옥수수를 뜯어 먹었다. 금방 따 온 복숭아를 씻어 같이 먹다보니 으슬으슬 하고 머리가 쏟아질 것 같던 몸살기가 어느 새 멀찌감치 달아났다. 매미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달아난 것은 몸살뿐이 아니었다. 빨간 차도 에쿠오스도 보이지 않았다. 동네에서 그 사람들을 보았다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한 건물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도 화장실이나 계단 문제로 워낙 뜨악하게 지내기도 했지만 언제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 사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한 번씩 이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기는 했다. 건물주 부부가 자주 다녀갔다. 젊은 부부가 지은 첫 번째 건물이었다. 상가 하나 지어 임대하면 수입이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신축을 했다. 그러나 이층이 오래 공실로 있어 세입자가 나타나면서 공사기간 동안 월세를 빼주기로 하고 임대차 계약을 했다는 얘기다.

내용증명을 세 차례나 보냈다고 했다. 임대계약을 취소하고 건물 원상복구를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노란 눈의 남자가 빨간 차를 세웠다. 몇 차례를 두고 무언가 싣고 떠나자 공사장 인부들이 들어가 요란하게 망치소리를 내고 전기톱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온갖 폐기물이 몇 트럭이나 실려 나갔다.

일을 끝내고 문을 닫으려는데 어둠 속에서 가로등 빛을 등지고 다가오는 사람이보였다. 노란 눈의 남자였다. 말을 더듬거리며 에쿠오스 여자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혹시 보게 되면 연락을 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주위를 살피며 재빠르게 어둠속에 묻혔다.

나중에 들리는 말로는 이 사람은 인테리어 업자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중국인 마사지사를 알게 되어 우리 동네에 피부관리실을 열면 돈이 될 거 같다는 말에 솔깃해서 앞뒤 재 볼 것도 없이 일을 벌렸다. 특기를 살려 열심히 가게 인테리어를 했다. 그리고 투자자를 끌어들였다. 바로 그 에쿠오스 여자였다. 에쿠오스 여자의 지갑을 여는데 성공했다. 공사 중인 가게를 보고 몇 억을 투자했다.

오픈을 앞두고 잠깐이면 그 돈을 몇 배로 불려준다는 마사지사의 말에 정말 아주 잠깐 다른 곳으로 돌렸었다. 그러나 약속한 기일이 지나도록 통장은 제로였다. 마사지사를 찾아가 항의를 하고 돈을 받을 때까지 버틸 작정으로 드러누웠다. 잠깐 졸았던 것 같았다. 강한 힘이 그의 몸을 일으키고 여기저기 가격을 당했다. 죽지 않을 만큼 맞은 그는 외진 곳에 버려졌다. 중국인 마사지사와 돈을 빌려간 사람은 한 패였다.

에쿠오스 여자에게 노란 눈의 남자는 요즘 말로 돌싱이라고 했다. 에쿠오스 여자는 자금만
투자 한 게 아니라 미래도 함께 하기로 했다.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노란 눈의 남자의 아내라는 여자와 아이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미래에 대한 꿈으로 가득했다. 그것도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처음으로 한 생명을 잉태한 행복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 신비였다.

에쿠오스 여자를 설득했다. 아내와는 이미 이혼을 했는데 이혼 신고서 접수 기일을 놓치고 말았다. 아내는 차일피일 소송을 미루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이라고 절절하게 얘기했다. 방에서 유서가 발견 되었고 주변 사람들도 그녀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걸 다 잃어도 그녀와 아직 까만 초음파 사진으로 만난 아기는 내 생애에서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보물이라고 말하는 빨간 차의 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지고 노란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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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 파란만장한...

마음이 짠~! 💙 합니당...

세상이 먹고 먹히는 관계로 가득하네요. 사람에게 희망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네요.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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