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의 소원, 정치와 반정치>

오늘날 한국정치는 정치의 영역을 벗어나 반정치로 진입하고 있다. 정치란 인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이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잣대는 애정의 대상일 뿐이다. 진보는 약자를 애정하고 보수는 체제와 원칙을 애정하는 것이다. 내가 애정하는 대상을 위해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정치다. 그런 점에서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반정치는 애정보다 증오, 설득과 타협보다는 강압과 배제를 그 수단으로 한다. 반정치의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전체주의이다. 히틀러의 파시즘과 소련의 사회주의가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한국사회가 정치의 영역에서 반정치의 영역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 정권의 등장부터였다. 촛불혁명으로 한국사회가 모두 몸살을 겪었으나 순조롭게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모두가 80% 이상의 지지로 박근혜 정권의 탄핵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 제도안에서 정권을 중간에 중단시킨 것은 한국민주주의 역사의 어마어마한 쾌거였다.

국민들의 비폭력적 저항은 내가 살아온 사회 그리고 살아갈 사회에 대한 애정과 희망의 발로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증오가 발현되었다면 그런 어마어마한 사회변동이 아무런 폭력없이 진행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촛불혁명은 축제였다.

축제를 비극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 문재인 정권이었다. 애정대신 증오를 심었다. 난데없이 친일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일치대신 분열을 노래했다. 설득과 타협대신 상대방의 척결을 시도했다. 상대방에게 비아냥거리고 핀잔부터 준다. 일부러 감정을 자극한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지도록 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적대감을 정당화시킨다.

증오와 강압 그리고 배제는 악의 영역이다. 정치가 아니라 반정치의 영역인 것이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더욱 강력한 증오를 요구하는 이재명이 여권의 유력주자다. 야당또한 마찬가지다. 윤석열도 정치가 아니라 반정치를 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오로지 문재인 정권과 세력에 대한 배제와 척결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의 방식이나 이재명의 방식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종교인들도 반정치의 영역에 진입했다. 목사와 신부라는 사람들은 사랑대신 증오를 노래하고 일치대신 분열을 주장한다. 그들이 사는 하늘의 세계는 야훼의 하늘이 아니라 제우스와 헤라의 올림푸스다. 종교인들 스스로가 반종교의 영역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있는 것이다. 그러니 요즘에 누가 종교를 믿겠는가?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없는데…

무엇보다 반정치적 현상을 만드는데 가장 일조한 자들은 지식인들이다. 지식인들은 자신의 사명을 헌신짝버리듯이 내던져 버렸다. 지식인은 권력과 권위에 저항하는 것이 사회적 본분이다. 권력을 지지하기 보다 권력의 잘못을 경고하는 것이 임무다. 잘하는 것은 그냥 내버려두면된다. 잘한다고 용비어천가를 부를 필요도 없다. 문제는 잘못할 때다. 잘못할때는 추상같은 비판을 해야 한다.

오늘날 지식인 중에서 진정하게 인민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애정하는 자를 별로 보지 못했다. 지식인들은 멀리해야할 권력을 애정하고 돈을 애정할 뿐이다. 자신의 권력과 돈을 위해 애정대신 증오를 조장하고 분열을 획책할뿐이다. 비난하고 비판해야할 것을 옹호한다.

정권과 진영을 옹호하는 어떤 자도 지식인이 아니다. 지식인은 저항하는 자이지 옹호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정치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반정치의 영역에 진입한 것 같다. 그러나 바라는 것은 8월 대보름처럼 우리 모두 둥글게 화합하고 일치하는 것이다. 이미 상당기간 서로 죽이고 죽는 일이 반복될 것 같다. 그것이 역사의 과정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현명한 국민들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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