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8 미국 패권 약화의 전조 증상, 실금이 균열로 >

힘으로만 패권을 유지할 수는 없다. 패권을 유지하는데는 힘보다 설득력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패권 약화에 들어섰다는 전조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며칠사이에 주목할만 한 일들이 발생했다. 첫번째는 네델란드 ASML이 EUV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두번째는 EU가 미국의 IRA에 집단 반발을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26일 진행된 대만 지방선거에서 대만독립을 주장했던 집권 민진당이 참패를 당했다. 이 세가지 사건은 불과 며칠만에 발생했지만 미국의 향후 정책에 심각한 도전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하나씩 정리해보기로 하겠다.

먼저 11월 22일 네덜란드의 ASML사가 중국에 대해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EUV를 수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리제 슈라인마허 외무장관은 네덜란드가 ASML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판매와 관련해 자체 결정을 내릴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는 네덜란드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만일 네덜란드 ASML사가 중국에 EUV장비를 판매하면 미국의 반도체 동맹은 무의미해진다.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몇가지 중요한 포위망에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 미국정부의 보상금을 받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미국 보상금을 받는 것보다 차라리 중국에서 직접 반도체를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이 훨씬 이익일 것이다. 만일 네덜란드 ASML이 중국에 EUV 장비를 수출하면 중국내에 있는 한국 반도체 공장의 운영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된다.

우리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미국에게는 심각한 이야기다. 네덜란드도 미국이 자국의 기술을 이유로 제재를 하면 문제가 있을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강공으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ASML은 슈퍼 을이라고 불리는 회사다. 그들은 미국이 자신들을 제재하면 미국에 EUV 장비를 수출하지 않겠다는 각오까지 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ASML이 미국에 EUV장비를 수출하지 않으면 미국의 반도체 생산도 불가능하다.

네덜란드 ASML의 이런 입장은 한동안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칩4동맹을 사실상 와해시켜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미국에 공장을 지어 미국에 팔고, 중국에는 중국의 공장에서 반도체를 팔 수 있는 양수겹장의 길이 생길 수도 있다. 벌써 며칠이 지났으나 네델란드의 이런 입장에 대해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미국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면 앞으로 칩4동맹의 향방에 대해서 보다 분명하게 전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사건은 유럽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집단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징적인 것은 그동안 미국의 수족 노릇을 하던 EU의 외교안보 고위대표 보렐이 미국 IRA 반대의 선두에 나섰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선봉에 나서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언 유럽연합 집행위원장도 최근 들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유럽의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유럽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분위기라면 유럽의 거의 모든 집권세력은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국을 위한 일방적인 선전선동에 더 이상 앞장 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네덜란드 ASML사의 EUV 장비 중국 수출의사 표시는 아마도 이런 유럽 전반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문제는 유럽의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IRA를 강행할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과 경쟁을 위해 산업 생산 능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의 입장을 고려할 만한 여유가 없다. 만일 조속한 시일내에 산업생산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미국과 유럽은 더 이상 공동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없게 된다. 미국과 유럽간 경제적 이익의 분절은 안보정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으로 미국은 EU와 NATO를 통한 유럽 통제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EU와 NATO의 위상도 지금보다 많이 약화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 관계의 약화는 중국과 러시아의 브릭스 체제 강화와 맞물려서 그 속도와 정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도 어쩔 수 없이 브릭스 체제와 손을 잡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 몰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미국과 유럽이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은 절반은 미중패권 경쟁으로 드러난 미국의 내적 모순, 즉 생산능력을 상실한 미국의 모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번째 사건은 26일 대만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의 참패다. 21개의 지방자치단제장 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은 5곳에서만 승리했다. 대만 인민들이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한 보도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대만 독립 주장으로 조성된 안보위기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대만 인민들의 의지가 작동했다는 것 정도다. 이와함께 미국이 유사시 대만의 TSMC 공장의 파괴와 미국 이전을 언급한 것도 민진당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만의 독립을 추진해온 집권 민진당의 패배는 향후 미국의 대중국 정책구상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군사동맹으로 묶어 가려도 했다. 그런데 대만이 독립보다는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선회할 경우 한미일 3각 동맹을 구축할 명분이 사라진다. 물론 미국은 북한 문제를 이유로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을 강화하겠지만 명시적으로 중국을 대상으로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미일 3각 협력의 한계도 분명해질 수 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을 동원하여 중국에 대항하도록 만든다는 미국의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한 것이다.

불과 1주일도 되지 않은 기간동안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미국이 향후 세계전략을 구상하는데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일들은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경향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미국 패권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금이 어느 정도를 넘으면 심각한 균열로 이어지면서 벽이 무너진다.

지금 미국은 실금이 균열로 넘어가는 상황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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