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 비판했다가 대깨x 취급당한 썰

최근 제가 자주 다니는 A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두 가지 일을 겪었습니다.

사례 1.
의사 파업이 한창이던 때의 일입니다. 다른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였겠지만 A사이트도 의사파업 찬반으로 나뉘에 치열한 댓글 배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의사들의 주장 중에 경청할 부분도 분명 있지만, 의대 정원확대 반대를 제일 앞에 내세운 점, '덕분이라며' 챌린지는 의사가 아닌 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홍보가 아니라는 점, 의사들이 한국사회에서 상위 0.1% 계층인데 약자 코스프레 하는게 과연 맞느냐 등을 지적하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러자 바로 저를 공격하는 댓글이 돌아왔습니다. 혹시 친여 사이트인 C 커뮤니티 사람 아니냐라는 말부터 시작해 의사들이 정부에 비하면 약자인게 맞는데 우리들의 홍보가 뭐가 잘못됐냐, 정부에서 고용된 드루킹 알바단이냐 등등의 비아냥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제가 과거 윤미향, 조국 정국 때 달았던 댓글들을 소개하면서 '내가 무슨 친정부냐. 문재인 정부에 불만인 사람 중에도 의사파업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의사들이 싸우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받는 방식으로 싸우는게 맞다고 본다'고 다시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대깨x들이 아닌척 코스프레 하면서 밭갈기 오지게 한다'는 식의 댓글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사례 2.
A모 커뮤니티에는 난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걸그룹 아이즈원입니다. 아이즈원을 탄생시킨 엠넷의 '프로듀스48'은 이미 국민들의 투표가 아니라 제작진의 조작과 농간으로 진행됐다는 것이 확인되어, 담당 PD 2명은 현재 감옥에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프로듀스48의 결과가 가짜였음이 드러났어도 아이즈원 팬들의 팬심은 굳건했습니다. 그들은 꾸준히 게시판에 아이즈원 홍보글을 올리면서 프로듀스48 조작 관련한 내용은 애써 외면했습니다. 프로듀스48 조작 관련한 기사에도 꿋꿋이 '그래도 멤버들이 조작한건 아니지 않느냐'며 댓글을 달았습니다.
한편으로 아이즈원 팬들을 열받게 하고 싶은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아이즈원 팬 컨텐츠 게시물에도 굳이 몰려가서 주작그룹이니 주작즈원이니 하는 댓글을 올리는 바람에 A커뮤니티가 아이즈원 팬들과 안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프로듀스 조작의 진상이 밝혀지고 몇달이 흘러, 아이즈원 관련한 게시물의 비율이 상당히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커뮤니티를 불타오르게 하는 글이 올라옵니다. 아이즈원이 조작으로 탄생한 그룹이 맞는데 조작즈원이라는 말을 쓰는게 뭐가 잘못이냐는 내용입니다. 수백개의 댓글이 오가는 전쟁터가 열렸죠.
몇달간 계속되는 아이즈원 팬-안티간의 전쟁에 짜증이 난 저는 '아이즈원 팬, 안티들끼리 조용한 데서 싸워라. 소음좀 그만 일으켜라'라고 댓글 달았습니다. 그러자 바로 반응이 달립니다. 조작한 쪽은 조작즈원이고 우리들은 그걸 알리려는 것 뿐이다. 아이즈원을 조작그룹이라고 하는게 왜 소음이냐, 너도 혹시 팬이냐?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을 해도 '아이즈원 팬들이 글쓸땐 댓글로 문제제기 한적도 없으면서 이 글에는 왜 귀신같이 나타나냐'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이 두가지 일을 생각나게 한 장본인은 바로 추미애 장관과 민주당, 김어준 등 친민주당 언론인들입니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추 장관이 아들의 병가 연장에 있어서 심각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추장관의 잘못이라면 공사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못한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 사건으로 추장관이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날 이유도 없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추장관과 민주당의 대책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습니다. 그냥 추장관이 '공사구분을 제대로 못했다 죄송하다'며 낮은 자세로 대응했으면 끝날 일을 여지껏 질질 끌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마치 국힘(미래통합당 후신)과 조중동에게 굴복한 것마냥 버티고 있습니다.
앞의 글에서 민주당 정치인들의 발언을 검토하면서 한가지 공통적인 인식체계의 대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마치 추장관에 대한 비판을 '국힘의 정치공세'이자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생각합니다. 뉴스공장 등 친민주당 언론인들이 진행하는 뉴스프로그램에서 추 장관 아들문제 비판하는 사람은 꼭 국힘 쪽 사람입니다.
물론 국힘이나 조중동 쪽에서 추장관 아들 건으로 불확실한 정보를 유포하고, 무리한 주장을 하는 측면도 분명 있습니다. 이들은 검찰개혁도 싫어하겠죠. 하지만 제가 사례1에서 "문재인 정부에 불만인 사람 중에도 의사파업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 것처럼 국힘을 싫어하지만 동시에 추장관 아들 건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만 해도 평생 국힘-미통당 쪽 정당에 투표한 적이 한번도 없고, 평생 그쪽에 표를 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추장관 아들 건에 대해서만큼은 추장관과 민주당의 대처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처음에는 민주당이나, 커뮤니티를 오가는 네티즌들이나 이분법에 빠져있는 사람이 많아서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을 '적'처럼 대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너무 단순한 결론이 아닐까 싶어서 조금 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분법과 비슷하지만 약간은 다른 차원의 결론이 나왔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의견, 생각, 취미를 공유하지 않는 타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 아닐까 하는 지점입니다.
과학적 사실의 경우 A는 A고 B는 B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사상, 철학, 의견 등의 영역에서 A는 A이면서도 B일 수도 있고, A안에 A', A'', A+, A- 등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사고방식은 극보수이지만 지연, 학연 등의 이유로 민주당을 찍는 사람도 있고, 민주당이 꼴보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힘에 표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평등 주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진보적인 사람이 직장에서는 갑질하는 상사일 수도 있고,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도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변화무쌍한 존재이며,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요소를 함께 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런 점이 바로 인문사회과학의 오묘한 점이라고 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이런 인간의 복잡성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살아갑니다. 자신와 비슷한 나이대의 직장 동료이지만 꼰대의 절정인 사람도 있고, 회식자리에서 과거 운동권 경력을 자랑하면서도 갭투자로 1년 연봉 벌었다며 은근 자랑하는 부장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굳이 길게 말 섞고 싶진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도 아니고, 나이 들어서 만난 사람들과 죽마고우와 같은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일상 속의 타인과의 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자신이 스트레스 느끼지 않고도 말을 섞을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푸는게 가장 좋습니다. 같은 게임 하는 사람,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랑 이야기 하는게 가장 즐겁습니다. 저도 한창 게임할 때는 거의 매일 새벽 2~3시까지 협곡에서 구르면서 낄낄대면서 직장에서 겪었던 짜증을 잊었었죠.
인터넷이 없던 시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건 2020년 한국은 사람이 마음만 먹는다면 24시간 내내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저만 해도 여가 시간에는 제가 좋아하는 게임 유튜브 보고, 민주당에 비판적인 진보 지식인들의 글이나 영상을 찾아보는게 낙입니다.
사회학자 중에 이런 현상을 좀더 이론적으로 정리한 분도 있을 것 같은데, 암튼 점점 최근으로 오면 올수록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만 교류하는 경향은 심해지지 않나 싶습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결국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다는 분석도 어디선가 본 듯 합니다. 아직도 야근이나 주말잔업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점점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가시간이 늘어난 만큼 사람들이 자신만의 동굴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시간도 늘어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즐기기에도 인터넷 세상은 너무 넓습니다. 저만 해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새 글 올라온것 잠깐만 봐야지 하다가 두세시간 후딱 지나간 경험이 많습니다. 알게 모르게 지금의 저도 1년 전과 비슷하면 저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동기화가 더욱 심해졌겠죠.

물론 2020년의 한국인은 과거의 한국인들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현명하기에, 다양성의 가치에 대해서 머리로는 다들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자기와 다른 생각을 접할 일이 잘 없기에 타인들의 생각에 대해 구체적인 것까지는 잘 모를 것입니다.
보수파 안에서도 다양한 계파가 있고, 극우 유튜버 안에서도 이런저런 차이가 있지만 평소에 그런 것을 가까이 하지 않기에 그 차이를 알지 못합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내 또래집단의 시각(=상식)으로 재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몇몇 극우 유튜버들은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민주당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집단이라고 말합니다. 일부 진보 스피커들은 토착왜구와 일베가 아직도 사회 곳곳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게 '상식'이라며 목소리 높입니다.
스팀잇이니까 코인판을 이야기 해보자면, 현재 가상화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스팀은 커녕 현재 업비트에 몇종목이나 상장되어 있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업비트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아직도 가상화폐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이미 코인물결은 끝났는데 아직도 붙잡고 있는 미련한 사람들'이라 치부하거나, 도박중독자나 비슷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이들도 있을겁니다. 그게 그들의 상식이니까요.

암튼 말이 장황해졌는데, 결론은 점점 사람들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기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고, '자신만의 세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세계와는 멀어져가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세계' 밖의 세계 또한 점점 복잡해지고 전문성이 깊어지다 보니 '자신만의 세계' 밖을 이해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그러다 보니 나무위키에 나온 수준의 정보에 기반해 '자신만의 세계'에서 형성해온 '상식'이라는 잣대로 자신이 사는 동굴 밖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사를 동굴 안과 밖으로 재단하는 방식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용됩니다.

여기까지 적다 보니 추장관을 까면 국힘, 조중동이고, 민주당을 지지하면 사회주의, 공산주의 지지자로 몰아세우는 극단적인 목소리들이 과연 '극단적'인지도 혼란스러운 지경입니다. 사실 극단주의가 현대사회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이자 현대사회의 주류적인 정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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