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가 죽기 전 날 밤 썼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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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Hesse, Easter Monday, 1924.jpgHermann Hesse, Easter Monday, 1924

쪼개져서 부러진 큰 나뭇가지가
여러해 동안이나 매달려 있어,
바람이 불면 메마른 소리로 노래를 딸각거린다.
잎도 없고 껍질도 없어,
텅 비어 활력도 없이 너무 긴 삶에,
너무 긴 죽음에 지쳤어.
나뭇가지의 노래 단단하고 끈질기게 울린다.
고집스럽게 울리고, 은밀히 두렵게 울리네,
한 여름만 더,
한 겨울만 더.
 
부러진 나뭇가지의 딸각거림/1962년 8월 8일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듣다가 히트하지 못했지만 나만이 좋아하는 노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꼼꼼 숨켜두고 좋아하고 있다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이유 하나만으로 상대에게 엄청난 호감을 갖기도 한다. 공감이란 게 겉으로 빤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부로 숨켜두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무심코 읽은 어느 글귀가 새삼스럽게 다가와서 여러번 읽게되는 경우가 있다. 이 시를 읽다가 문득 헤세의 약력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는데 세상에나! 그가 뇌출혈로 죽기 바로 전 날에 쓴 시였다. 번역자가 이 사실을 알고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속으로 우쭈쭈하며 당장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헤세는 이시를 3번 교정하였고 죽기 마지막날 아내의 침대 위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Knarren eines geknickten Astes" - Hesses letztes Gedicht: Vergleich der drei Fassungen

나뭇가지를 인칭화한 것과 “두렵게 울리네”를 “은밀하게 두렵게 울리네”로 “은밀하게”를 첨가한 것 이외에는 두 번째 교정과 세 번째 교정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다만 나뭇가지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헤세의 관찰자 감성이 시 초안에서부터 두 번 세 번 교정을 통해서 어느덧 나뭇가지와 동일시되었다. 세 가지 원문의 시가 수록된 독일어 사이트이지만 요즈음 구글번역이 가능하니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KNARREN EINES GEKNICKTEN ASTES

나는 적어도 헤세처럼 죽고 싶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엄청난 고생을 하였겠지만 죽음 전날까지 홀로 일상생활이 가능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헤세가 더 위대하게 보인다.


헤세의 마음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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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자신이 죽을 걸 미리 예견하고 있었을까요? 독일어를 할 줄 알면 원어의 느낌으로 읽어보고 싶은 시이네요.

구글번역기가 그래도 꽤 쓸만해요. 헤세의 에세이 소품집을 여러 한국번역가들이 번역하다보니까 같은 제목의 글들도 전혀 다르게 느껴지긴하더군요. 소설이나 에세이의 번역이 제2의 창작인게 이해가 가더라구요.

한 여름만 더
한 겨울만 더

이런 날이 금새 올 것 같네요. ^^

ㅎㅎ. 너무 고통스러우면 그런 생각도 안드는 것 같더라구요. 제가 병자와 노인분들과 자주 있다보니까 죽음과 고통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헤세의 노년 글을 보면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늙어가는 과정에 대한 아름다운 성찰의 글모음이 꽤 많아요.

저도 헤르만 헤세 좋아합니다. 저는 유리알 유희 세 번인가 읽었어요. 내 사랑 그 책이 제 곁에 없는 관계로, 아쉽지만 못 읽고 있네요. 전쟁기념관에서 진행했던 헤르만 헤세 그림전도 갔었어요. 좋았어요^^ 보팅이 왜 안 들어왔을까요?^^ 제가 오늘 한 번 더 확인해볼게요. 좀 만 더 지둘려주세엽^^

ㅎㅎ. 감사합니다. 저는 유리알유희와 데미안, 싯다르타를 나중에 읽어보려고 해요. 특히 유리알유희는 거의 66세에 완성된 글이고 데미안은 43세에 완성된 글이니 시간 차이가 좀 나지요. 나이들어가면서 그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관찰하는 게 참 재미있습니다. 그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이해한 상태에서 왜 그런 글을 썼을지 생각해보는게 즐겁습니다. 더구나 그의 유럽, 아시아 여행기들도 꽤 번역되어 있는데 괴테의 여행기와 헤세의 여행기도 함께 읽어보면 어떨까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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