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_책방]골든아워. 지금 읽어야 할 때.

in #growthplate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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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리뷰로 <골든 아워>를 선택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작년 가을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이국종 교수님의 선함과 원칙에 대해서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2권의 책은 너무 두꺼웠고, 다큐 내용을 통해 나는 이미 어느 정도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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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책 몇 페이지를 잠시 읽다가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간명한 문체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아니, 사실은 너무나도 소설처럼 선명하고 생생하게 글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한줄 한줄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깊은 고뇌가 건조한 듯 간명한 문체 사이로 뿜어져 나왔고, 삶의 무거움들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래서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책을 읽다 말고 ‘축복합니다’를 되뇌었다. 그리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읽어내려 갈 수 없어서였다.

결국, 두 권의 책을 샀다. 책 두 권에 3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 이거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마음이었다.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의 깊고 낮은 울부짖음과 통렬한 비판을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나의 오만 가득한 생각이었다. 책을 읽어내려 가며, 그가 지난 세월 통과 해 온 어두운 시간들과 현실을 벽을 넘어서기 위한 몸부림에서 나오는 숭고함을 고작 3만원 조금 넘는 돈을 주고 조금 경험했다. 그의 삶이, 그의 존재가, 그의 고뇌들이, 그의 분노가, 그의 깊은 절망과 좌절이.. 다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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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애

책의 서문을 펼쳤다. ‘어찌 이리 소상히도 기억하고, 소설처럼 글을 썼을까?’하는 의문을 서문 첫번째 페이지에서 풀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책을 써보라는 주변 권유를 뿌리쳤던 이교수님은 ‘활자로 남겨둔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헌신을 잊히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는 한 기자의 말 덕에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교수님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설득이나 동기부여는 그 사람의 ‘가치’와 연결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는 명예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의 동력이다.

그의 선하고 진한 동료애는 서문 곳곳에서 드러난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에게 병원은, 중증외상센터는 생명을 건 전쟁터다. 생사를 가르는 전쟁터에서 만난 전우에 대한 끈끈한 애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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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동료애는 서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의 글의 취지가 함께 하는 사람들의 헌신에 관한 기록이지 않은가. 그래서 서문 바로 앞장에 이름 하나가 박혀있다.

“정경원에게”

정경원이라는 분이 이교수님에게 아주 각별한 사람인가 보다 했다. 그의 아내 이름일까? 작가들 중에는 가족들에게 감사와 헌사의 표현을 이렇게 하는 분들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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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상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이교수님의 첫번째 수련의이자 임상강사 였다.

이국종 교수님이 정경원님을 만난 경위가 담긴 페이지에는 이런 글월들이 있었다.

“나는 2002년 외상외과를 세부전공으로 시작한 이래 아주대학교병원이 중증외사특성화 센터가 되기 전까지 혼자였다. 사람이 필요했으나 사람은 없었고, 나중에는 나 스스로 사람을 들이지 않았다. 간혹 외과전문의를 마친 후 수련받고 싶다고 찾아오는 임상강사 지원자들이 있었으나 모두 거절했다. 새 구두를 신고 새 길에 접어드는 그들을 진창으로 잡아끌고 싶지 않았다. 삶을 보편성으로부터 먼 일상과 상식 밖의 시선까지 버텨야 하는 진흙탕에 뒹구는 것은 나 하나로 족했다. 나는 지원자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다른 세부전공을 추천했다.” p.140

당시 이국종 교수는 십자가를 혼자 짊어지고 가려 한 모양이다. ”새 구두를 신고 새 길에 접어드는 그들을 진창으로 잡아 끌고 싶지 않다’는 표현에 가슴이 메인다.

정경원님이 외상외과 임상강사 지원했을 때에도 그를 허락치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정경원님은 “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거면 됩니다. 큰 욕심 없습니다.”라고 답하며, 이교수가 두서없이 늘어놓은 암흑 같은 미래를 담담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후 책에서 정경원님은 1년에 집에 딱 4번 갔을 뿐이라고 했다. 병원을 집 삼아 긴 시간을 보냈노라고 했다. 글의 행간에서 이교수님에게 정경원님은 외상외과의 학맥을 이어줄 제자이자, 헌신적인 동료이며, 아끼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의미있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다.

골든아워 2권 말미에는 ’인물지’라는 부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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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책에 등장하는 환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이들의 이름과 소개글이 담겨있다. 고향은 어디고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장점이 있고, 어떤 헌신을 했는지에 관한 간명하지만 애정이 넘치는 글들이다. 이렇게라도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싶었던 그의 진정성이 전해진다. 그것에 따르면, 정경원님은 현재 아주대학교 외과학교실 부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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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김지영님에 대한 소개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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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의 본질


책을 읽다 보면 ”업의 본질”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경영 전략 서적이나 동기부여 책에서나 볼 법한 “업의 본질”이라는 단어가 그의 책에서 이렇게 자주 만날 줄은 몰랐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던 모양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하고…

도망치고 벗어나고 싶을 만큼 외롭고 고독한 길이었으며, 육체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통스러운 길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어찌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지 않았겠는가.

원칙주의자인 그 또한 때로는 이 무거운 현실 앞에서 눈을 질끈 감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질문이 그를 그가 하고 있는 ’업의 본질’ 앞으로 계속 데려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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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어느 신문 글에서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보고 ’이국종 판 <칼의 노래>’라고 칭했다. 그 신문기사 타이틀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그의 책꽂이에 늘 꽂혀 있는 책이고, 다큐에서도 그의 책장에 있는 <칼의 노래>를 비춰준 적이 있다고 지인은 말했다.

서문에서도 김훈의 칼의 노래가 인용된다. 이 교수님이 이 구절은 인용한 것은 그 부분이 퍽이나 자신의 마음을 잘 설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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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 있는 몸으로 감당해내면서 이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를 나는 바랐다”

실제 책에 묘사된 이국종 교수의 삶과 병원 생활은 그러했다.

붉은 피가 흘러 넘치는 수술실에 잠은 고사하고 잠시의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환자를 살려내면 그것이 문제가 된다. 환자를 살려내면 살려낼수록 병원은 적자가 되었고 이국종 교수는 욕을 먹어야 했다. 몸은 고단하고 마음은 참담했다.

환자가 죽기라도 하면, 몸의 참담함을 넘어서는 마음의 무거움 그리고 현실적인 책임들이 그를 짓눌렀다. 떠나고 싶으나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고, 언제 외상외과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직업적 불안정성이 그의 삶을 더 어둡게 했다.

희망의 빛이 조금이라도 보일 듯한 기미조차 없이 그의 삶은 어둡고 어둡고 또 어두운 길을 걷는 거 같았다. 그래서 희망 없는 곳에서 희망 하나 세우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기여이 살아내는 방식으로 희망을 뚫어버리는 듯 한 모습이, 김훈의 <칼의 노래> 속 이순신 장군과 꼭 닮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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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의 따듯함

그는 무표정하다. 시종일관 무표정하다. 나는 그가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구글 검색을 찾아보니, 2장의 웃는 사진이 있다. 그 나머지는 양쪽으로 가늘게 찟어진 눈 사이로 번뜩이는 눈빛과 담담한 입 매무새의 표정들이 담긴 사진이다. 웃는 것같기도 하면서 웃지 않는 듯한 느낌들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텔레비전 인터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웃음끼 없는 얼굴로 시종일관 진지하고 진중하게 대답하고 생각을 전한다. 그가 인터뷰에 응하는 답현 내용들은 지극히 겸손하면서도 소신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손석희 아나운서님 혼자 웃는 듯한데 손석희님는 ‘교수님 웃으시는 거 처음 본다’라고 대답했다.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어내려 가며 그의 무표정들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해하게 된다.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붉은 피바다의 수술방에서 하나하나 받아내고 닦아내고 꿰매면서 얼마나 웃음지을 수 있겠는가.

성실하고 최선을 다 하는 그의 성정상 수술 후 환자의 회복을 지켜보면서 일의 보람은 크겠으나, 그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 얼마나 길겠는가. 또 불합리한 현실의 벽을 아무리 넘어가보려 목소리를 높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상황 앞에서 얼마나 가슴 답답했겠는가.

그래서 그의 무표정 안에는 미묘한 좌절과 섬세한 배려, 따듯함들이 함께 지나다닌다. 그의 그런 마음은 서문의 마지막에도 이렇게 표현된다.

“출간을 앞두고 가장 큰 걱정은, 이 책이 중증외상으로 사망한 환자의 보호자들에게 마음 아픈 기억들을 상기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 그러하다면 미리 이것에서 정중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와 만났으나 결국 세상을 떠난 모든 중증외상 환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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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아직 2권의 책을 다 끝내지 못했다. 책의 서문만 해도 이렇게 할 말이 많다. 그냥 간단하게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길어지고 말았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또 글을 적을 지도 모르겠다.

나의 긴 말 말고, 이국종 교수의 긴 독백을 들어보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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