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독일전과 중도

in #choongdo6 years ago

월드컵 독일전과 중도

한국 축구가 세계랭킹 1위 독일을 어떻게 잡았을까? 그 핵심은 경기 끝나고 난 후의 인터뷰에서 드러났다. “16강전 진출을 못해도 고춧가루나 제대로 뿌리자” 한 선수가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16강 진출 가능성은 희박해졌으니 세계랭킹 1위 독일을 잡아 ‘한풀이’나 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선수단 전체의 분위기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미 2패를 안은 우리는 암만 잘해도 자력으로는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 때문에 선수단은 자연스레 마음을 비웠다. 그러나 “한번 해보자”는 열망은 어느 때보다 강했다. 이로써 한국 선수단은 순수하게 경기를 즐길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진짜 ‘즐김’은 열심히 준비하고도 마음을 비운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다.

열망으로 충만함과 그 열망 자체를 내려놓음, 이 두 가지 상반되는 마음을 동시에 지니는 것, 그것을 일러 우리는 “도가 통했다”라고 한다. 이는 일찍이 한국 기계체조계의 기린아, ‘도마의 신’이라고 불리는 양학선에 의해서 표현된 바 있다. 양학선은 올림픽에서 도마에 도전하기 전의 경계를 이렇게 말했다.

“무아지경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긴장을 해서 긴장했다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긴장을 했는데 긴장하지 않은 것 같고, 오히려 차분해진 것 같고, 그런 긴장감이다. 그때 눈에는 딱 도마만 보인다.”

“눈에 딱 도마만 보이는” 이런 상황은 선승(禪僧)들이 늘상 말하는 ‘화두만이 성성한’ 상황이다. 도마란 몸통의 길이 1.6미터, 너비 35cm이며 높이 1.35미터인 올림픽 체조 경기용 도구이자 종목명으로, 선수는 10여미터를 달려와 도마를 짚고 뛰어올라 몸을 비틀고 돌리는 연기를 한다. 도움닫기로 달리기 시작해서 도마를 짚는 동작, 공중 동작과 착지 등을 다 합해도 6~7초면 끝나는 이 종목은 무엇보다 “성공할 수 있다”는 정신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데에 집착하면 또 안 된다. 집중하면서 집착하지 않는 이런 자세는 승부사들에게는 필수다.

바로 이런 정신이 석가모니 붓다가 설한 ‘중도’의 정신이다. 중도는 불교의 가장 기초가 되는 개념이지만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일상어로 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도는 마치 수많은 고행을 겪고 난 다음에 혹은 참선 수련을 거친 끝에 이르는 정신적 경지인 것처럼 신비화되고 있어서 수행하는 스님들에게나 의미 있는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상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일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불교는 아무것도 아니다.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붓다의 마음’이다. ‘붓다’란 무엇인가? 깨달은 사람이다. 무얼 깨달았다는 것인가? ‘중도’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런, 순환논리에 빠졌다. 다시,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세상의 깊은 원리’로서 매우 포괄적인 개념인데, 그 중도를 ‘수행의 마음’에 적용시켜 보면, ‘집중하면서 집착하지 않는 자세’라는 것이다.

중도의 원리는 긍강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금강경에서 제자 수보리는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의 마음을 냈으면,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하오리까?”라고 묻는다. 이는 “불도(佛道)를 이루겠다”는 초발심을 낸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한다.
“뭇 보살마하살들이 반드시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을지어다. 존재하는 일체의 중생의 종류인 알에서 태어난 것, 모태에서 태어난 것, 물에서 태어난 것, 갑자기 태어난 것, 형태가 있는 것, 형태가 없는 것, 지각이 있는 것, 지각이 없는 것, 지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 이것들을 내가 다 남김 없는 온전한 열반으로 들게 하여 멸도하리라. 이와 같이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 없고, 가없는 중생들을 멸도 한다 하였으나, 실로 멸도를 얻은 중생은 아무도 없었어라.”

금강경은 무엇에 대한 경인가? 수보리의 질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마음을 항복받는 방법’, 즉 ‘마음을 다스리는 법’, ‘수행하는 법’에 대한 경이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구원하겠다”라고 먼저 서원을 말한다. 중생을 구하겠다는 서원은 불자로 살기 위한 전제다. 이는 현대 일상인들에게도 그렇다. 우리들이 “청소년들에게 꿈을 갖도록 해야 한다”라고 외치는 것도 삶을 위해서는 ‘꿈’, 즉 ‘서원’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화의 핵심 주제가 아니다. 수보리는 “서원을 세운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왜냐하면, 서원을 세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서원을 세웠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굳은 서원을 세운 사람일수록 이를 방해받거나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집권 세력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서원을 세운 운동권 내에서 서로 다른 계파 간에 얼굴도 마주치지 않는다든지, 토론을 연구하는 협회 안에서 연구자들 간 토론이 안 돼서 분열한다든지 혹은 ‘갈등해결’을 주제로 모인 사람들 간에 갈등이 생겨 내분을 겪는 경우 등이 그런 예다. 이럴 때 수행자는 어떤 마음 자세를 갖추어야 하겠는가? 수보리는 이것을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나로 인해 멸도를 얻은, 즉 구원을 받은 중생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서원을 세운 다음에, 혹은 서원을 이룬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서원을 이루었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부처님은 자신의 서원을 말한 후에 곧바로 자신의 발언을 부정해 버림으로써 제자들에게 ‘집착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자신의 서원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금강경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교훈이며 그것이 ‘중도’의 원리다.

집중하면서 집착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중도는 다른 말로 하면 ‘깨어 있음’이다. 서원은 보통 언어로 표현된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고 하는 국민교육헌장은 훌륭한 서원이었고 이것이 경제를 일궜다. 그러나 그 서원에 매몰되는 순간 인권 유린이 자행됐다. 우리는 서원을 이루기 위해서 분발심을 내야 하지만, 그 서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자신의 행위를 항상 보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깨어있지 못할 때, 자기 행위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할 때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옮겨 처형하는 히틀러의 하수인이 탄생한다. 나치 치하의 '선량한' 수용소 직원은, 2차대전 이후 전범에 대한 재판에서 이렇게 반문했다. “수용소가 이미 다 찼고 그래서 그 중 일부 인원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일을 맡은 내가, 어떤 사람을 이송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자기 행위의 의미를 스스로 깨치지 못하고 남이 정해 놓은 일을 기계적으로 하는 이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좀비’였다고 하겠다. 그런데 정신줄을 놓으면 좀비로 전락하는 일은 눈깜박할 사이에 일어난다.

‘집중하면서 집착하지 않음’, ‘서원을 위해 분발하지만 그 서원에도 얽매이지 않음’, ‘깨어 있음’ 등을 포괄하는 의미에서 ‘중도’란 한마디로 ‘붓다의 마음’이다. 그러나 중도는 이에 국한되지 않는 더 넓은 개념이다.
중도에는 유무중도, 고락중도, 팔불중도 등이 있다. 존재란 무엇인가? 이 세상은 존재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존재한다”라고 해도 틀리고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해도 틀린다는 것이 ‘유무중도’다. 수행의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신적 육체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는 고행도 아니라는 것이 고락중도다. 팔불중도란 불생불멸 (不生不滅) (나고 소멸됨이 없으며) 불거부래 (不去不來) (오고 감이 없으며) 부단불상 (不斷不常) (끊고 항상 함이 없으며) 불일불이 (不一不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를 의미한다.

이런 중도를 다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도의 원리가 일상의 모든 부문에서 실천되는 것이 곧 불국토(佛國土)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대회 독일전에서 그 중도의 원리를 실천했다. 그 실천으로 인해서 맛본 것이 해탈이며 열반이다, 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신비화된 불교, '말로 할 수 없는 불교'를 부르짖는 기성불교의 불자들은 이에 반감을 갖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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