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예찬 1

in #busy6 years ago (edited)

만약에 남은 평생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된다 해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다.

나는 무엇에 의존하는 것을 거부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시력이 많이 나쁜데도 안경에 의존하는 것이 싫어서 안 쓰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어리석은 일이지만 이해는 간다. 나 역시, 커피를 마시는 손쉽고 향기로운 과정을 거쳐서 카페인에 의존하게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나 커피향이 나는 카페를 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견디지 못할 것 같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은 커피숍과 카페를 나누고 후자를 알콜을 파는 곳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던데, 여기에서 카페란 말 그대로 커피 위주로 파는 곳을 말한다.

널찍한 원목 테이블과 커다랗고 푹신한 의자가 있어서, 글을 읽으면서 유유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좋다. 음악이 내 취향이 아니라면 이어폰을 끼면 그만이지만, 이왕이면 거슬리지 않는 음악을 조용하게 들려주는 곳인 편이 좋겠지.

제일 처음으로 단골로 드나들게 된 곳은 편안한 자리 외에는 다 그저 그랬다. 그곳에 자주 갈 당시에는 커피를 아예 마시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지금은 더더욱 입에 안 댈 설탕 가득한, 말도 안 되는 엉성한 레시피의 음료들을 들이키곤 했다.

당시에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정문 앞의 유명한 체인점은 국내 1호점이라고 했는데, 어차피 커피를 마시지 않는 입장에서는 그런건 관심이 없었다. 무조건 덜 붐비고 더 조용한 곳을 찾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카페에 갈 이유는 많았다. 홍차, 스콘, 케익, 아이스크림, 요거트, 푸딩....이렇게 늘어놓으니 먹으려고 학교 다닌 것 같다.

학교에 남자가 없어서인지 유독 소개를 받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날에는 단골 카페에 갔다. 별로 재미없어도 편안한 공간에 있으면 시간이 아깝지는 않으니까. 조금 몰아서 며칠을 갔더니 아르바이트생이 자꾸 웃음을 감추었다. 당시에는 그저 왜 그러지,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상대가 계속 바뀐 것만으로 웃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내 무심한 표정과 말투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나는 첫 인상이 차가워서 상대를 긴장하게 하는 편인데, 하는 말 내용이 어울리지 않게 거침없으면 그 긴장이 탁 풀리는 걸 종종 본다. 일단 그러고 나면 급격하게 친근하게 다가오곤 한다. 그 중간은 어려운 것인가보다.

그러고보면 카페든 아니든, 아무런 의도 없이 여자 아르바이트생들을 잘 웃게 하는 편이었다. 한번은 같이 밥을 먹던 친한 오빠가 말했다. 네가 남자였다면 쟤는 이미 너의 노예... (뭐,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애일 수도 있잖아, 라고 말은 했지만 아닌 걸 안다. 그런 건 귀신같이 알아보는 편이다. )

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다. 첫 인상이 차가우면, 괜히 뭔가 자신을 깔보는 걸로 생각하고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다 개개인의 축적된 경험의 결과겠지. 어차피 사장의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상관은 없다.

그간 좋은 카페들이 너무 많이 생기고 또 사라져 갔다. 요즘 내가 갈만한 조용한 곳들은 주로 남자 아르바이트생들이 많다. 내 첫 인상은 여전히 차갑지만, 공부를 마친 후로 가게 운영도 해보고 또 접고 그러면서 조금 더 세상 때가 묻고 (비록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넉살이 늘다 보니, 상대가 받는 느낌도 다른가보다. 반응이 약간 다르다.

최근 들어서는 연속으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나는 원래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하면 꼭 물어본다.
"여기 몇 시까지 해요?"
그런데 웃을 수 없는 답변을 받았다.
"저요?"
너겠냐, 라고 웃으면서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속마음은 좀 놀려주고 싶지만, 안 그래도 얼굴 붉히고 있는 사람 무안 주면 벌 받는다. 뭐, 그런 반응 역시 개개인의 경험에서 생겨난 기대치를 반영하는 것이겠지. 어쨌든 나는 카페가 좋다, 커피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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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피부가 너무 민감하길래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하고 들었던 말이

이거 완치하시려면 당분간 아래 음식을 드시면 안되요 라고 하더군요.

면류 튀김류 인스턴트 식품, 맥주....

한참 읽다가 "커피" 가 써 있는 것을 보고
"죄송한데 저 이렇게는 못살것 같아요 그냥 좀 불편한거 달고 살래요."
라고 말하고 나왔던 기억이...

전 의지가 약해서 앞으로 평생 커피는 포기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음...저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아직까진 없으니 마실거에요 ㅎㅎ 근데 아마 먹어도 괜찮은 이유가 애초에 많이 안 먹어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신경 쓰면서까지 관리하면 계속 더 민감해지는게 피부더라구요. 좋아하는건 다 적당히 즐기는게 피부에도 좋은 듯요!

여기 몇 시까지 해요?

이 질문이 그렇게 들리는 건 개인의 경험을 반영하기 보단 그냥 개인의 이해력의 문제가 아닐까요....?
'너겠냐' 라고 해보시지..반응 궁금 ㅋㅋㅋㅋㅋㅋ
'너겠냐'라고는 안하셨어도 그게 아니라 카페 운영시간이라고 되물으셨을텐데, 그 알바생 무안해하지 않던가요 ㅎㅎㅎㅎ

ㅎㅎ제 경험상으로는 뭔가 한 문장에서도 딱 특정 단어만 집중해서 듣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나가면서 하는 얘기 같은건 굳이 눈 잘 안 마주치고 하는데 그래서 뭔가 잘못 캐치한거 같기도 하고...

거의 저요? 내뱉자마자 스스로 깨닫고 아차 하는게 느껴지기 때문에...반사적으로 아, 엄청 무안하겠구나 싶어서 무표정 그대로 "아, (너 말고) 여기요...:그랬죠. ㅎㅎㅎ

어느 커피에 너무 의존하게 된 것 같아요
나중에 진짜 끊으려면 큰일이네요
팔로 하고 갑니다~^^
자주 소통해요!

적당하게 줄여나가면 좋겠죠? 맞팔했어요. ^^

저요?
자주듣는 말인가 봅니다.
나름 웃길려고 한말인가?^^;,

웃길려고 했으면 그거 꽤 괜찮은데요?! 물론 웃고 끝나지만 ㅋㅋ

오호.. 생각이 많으신분이였구나.
누구랑은 다르게 끄덕끄덕

가즈아로 판단하지 말아주세욧

알바생이 풋풋하거나 능글맞거나 중 하나겠군요 ㅎㅎ

무안을 주지 말아야겠단 판단이 잽싸게 들어서 포커 페이스를 유지한건...전자라서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뭐라 해야 될 지 모르겠는데,,, 글을 보면 표정이 떠오르네요...ㅎㅎ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이제 제 글을 보실 때마다 쭉...감사합니다. ㅎㅎ

날파리님 카페예찬 잘보고갑니다.
프로필도 차가워서 냉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참 정이 많으시더군요
저도 표정이 차가운데.. 좀 웃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ㅠ

날파리 이름 너무 싫어요 ㅎㅎㅎㅎㅎ날파리 땜에 여름이 두려워요...정 없으니까 탈퇴시켜 주세요ㅠㅠ

아니면 탈퇴 안할테니깐 이름만 바꿔주시고 보팅은 그대로...굽신굽신

그러면 날라리 어떠신가요? ㅎㅎ
뭔가 정겨운 닉네임같습니다

날파리보다는 낫군요. ㅎㅎ 날파리도 하나 영입하심이...

생각해보니 날파리 좋아할만한 사람이 없을꺼 같네요 ㅠ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ㅠ
날라리 날궂이 초파리 마음에 드는걸로 골라보세요 ㅎㅎ

엑스트라 1 안될까요?

안됩니다
날파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에요
제가 100번 양보해서 막둥이라고 불러드리겠습니다. 콜 ?

거 단호하시네 ㅋㅋ 콜 ㅋㅋ

'너겠냐' ㅋㅋ
jamieinthedark 님 글에서 웃음 포인트 찾는 재미가 쏠쏠해요
요즘은 헤이즐넛 커피향이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네요. 추억도 있었지만 그 냄새가 그렇게 좋았는데

후훗 헤이즐넛 커피는 저 학생 때 파는 곳이 없다시피 했는데, 좀 형님들이 좋아하시더라구요. ㅎㅎ 헤이즐넛 들어간 초콜렛 맛있어요!

알바가 커피대신 박카스를 건내려 했나봅니다. ㅎㅎㅎ

아, 전 다 마시고 나가면서 끝나는 시간 물어봐요 ㅋㅋ 어쩌면 그래서 말 실수가 더 생겼는지도요...

사실 박카스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완벽하게 이해는 가지 않지만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아 캔커피 레쓰비 광고랑 착각했나 봅니다. 버스에서 '저 이번에 내려요' 하면서 캔커피를 건내는 상황이 알바가 건넨 '저요?'라는 물음이랑 오버랩되면서 생각이 나 댓글을 달았어요. ㅎㅎㅎ

아, 그런 광고가 있었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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