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과 나쁜놈

in #busy5 years ago (edited)

어쩌다보면 짧게 붕 뜨는 시간이 생긴다. 해가 진 이후의 시간이라면 냉장고의 맥주와 찬장의 과자가 좋은 친구가 되겠지만, 평일 한 낮이라면 혹시 다른 게 있을까 머리를 굴리게된다. 두어시간 정도 되는, 주변 지인과의 접선이 불가능한 어정쩡한 시간이라면 더더욱 머리를 굴리게 된다. 비가 구질구질하게 내리던 날 어쩌다 생긴 대낮의 여유, 만화방이 떠올랐다.


예전에 자주 갔던 구질구질한 '만화방'은 망해버렸다. 노숙자 냄새와 유사한 퀘퀘한 냄새를 풍기는 아늑한 그곳에 갈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만화카페'로 향한다. 1시간에 2,500원 정도 하는 것 같다. 카페라는 이름에 맞게 컵라면 외에도 많은 음료를 파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간과 음료를 묶은 세트메뉴도 있는 것 같다. 예전, 고향에 내려가는 첫 차 시간을 기다리며 지하로 들어가 퀘퀘하면서 시큼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컵라면을 먹던 동대구역 부근 만화방의 구질구질한 아늑함은 없었다.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에 어색하게 쭈뼛거리며 들어가 주인과 인사를 나눈다.


1.jpg


'신발은 신발장의 실내화로 갈아신으시고 신발장 열쇠를 가져오시면 됩니다'라고 그는 익숙하게 읊는다. 자정쯤 5천원을 내고 해뜰무렵까지 만화책을 보던 만화방과 사뭇 다르다. 밤 11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비유하자면 가요톱텐과 쇼음악중심의 차이만큼 다르다고 하면 될까.


2.jpg

3.jpg

4.jpg

5.jpg

6.jpg


제목만 봐도 반가운 책들이 있다. 중간의 어떤 부분부터 시작해도 아! 하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그러면서 '이게 아직도 완결이 안 됐나' 하면서 혀를 차게 만드는 책도 있다.


7.jpg

8.jpg


처음엔 다락방에 들어가서 커튼을 치고 잠시 누워서 책을 들었다가 금방 나왔다. 이렇게 보면 집에서 보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조명이 좀 어둡기도 했고. 집엔 없는 저 빨간 의자가 왠지 편안해보이기도 했고.


9.jpg


이런저런 책들을 집어 왔지만 갑작스레 생긴 일 탓에 다 볼 수는 없었다. 집어온 책 중 두 개만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유튜브의 영화소개 채널에서 보았던 물고기에게 다리가 생기면 어쩌고하는 영상의 원작인 것 같아 고른 이토준지의 책. 그리고 내 장래희망인 '백수'에 대해 다룬 책.


10.jpg


백수 책에 들어있던 괴테의 말


11.jpg


이토준지 만화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뚫어지게 쳐다보았던 페이지. 누군지는 몰라도 세상에 이렇게 나쁜놈이..


Sponsored ( Powered by dclick )

dclick-imagead














Sort: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ㅠㅠㅠㅠㅠㅠㅠㅠ

요즘 만화방은 참 좋죠.
예전의 낭만은 없지만요.^^

바뀌어 가는 게 많네요. 동네의 허름한 국밥집과 식당, 가게들도 세련미를 갖춘 깍쟁이 까페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좋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이토준지 만화는 섬뜩함이 있죠

그 맛에 찾게 되더라고요. 저런 분위기는 뭘보고 만드는걸까 궁금했는데 일본불교 경전에 있던 지옥그림을 보고 아, 이거 이토준지스럽다고 느낀적이 있습니다.

저도 한번 가봤다가 시간가는줄 모르고있었어요^^~
추억의 만화방

가끔 가면 재미있고 시간도 잘 가죠ㅎㅎ

베가본드, 너무나 존경스러운 만화이지만 실제 고수들간의 결투가 베가본드에 나온 것처럼 흘러갈거라는 제 순진한 믿음이 사실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저도 가끔 인터넷에 떠도는 개화기 사무라이의 사진들을 보며 베가본드처럼 싸울것 같진 않은데...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칼싸움 겨루기를 넘어 철학 겨루기를 하는 경지부터는 만화방에 가서도 베가본드에는 손이 잘 안 가게 되네요.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스팀잇을 시작하시는 친구들에게도 널리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진정한 백수다운 자세입니다...
하고싶지만 할수없고 할수있지만 하고싶지 않다...멋지네요~ㅎㅎ

두 문장을 연결하니 그렇게 되네요. 멋진 백수의 자세인 것 같습니다ㅋㅋㅋ저는 월급쟁이 답게 따로 '(퇴근후에)하고싶은 일은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하기 힘들고, (출근해서)할 수 있는 일은 여유가 없어 (자발적으로)하고 싶지는 않다.'로 읽혔습니다. 코인의 떡상이 저를 백수의 길로 안내할텐데 과연 그런날이 올런지ㅋㅋ

올거라고 믿습니다~백수되는 그날까지~~~아뵤~~~ㅎㅎㅎ

열혈강호는 완결 됐나요?

아직 책에 ' 완결'이라고 쓰인 게 없었어요ㅋㅋㅋ완결 안하고버티기에선 베르세르크를 능가할듯.

저는 퀘퀘한 냄새가 나는 만화방 보다는 이렇게 깔끔한 만화카페가 더 좋은 걸요?ㅋ
저는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이라 만화도 엄청 느리게 읽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화를 많이는 못봤지만, 애정하던 만화 시리즈는 몇개 있네요.
왠지 비오는 날 가면 재밌을 거 같은 만화카페네요.^^

대로변 10층에 위치했는데 말씀대로 비오는날 창가자리에 앉으면 더 재미있을것 같네요. gghite님 같은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서대여점'도 예전엔 성업이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아.. 만화 정말 좋아하는데.. 보고 싶은 옜날 만화가 하나 있는데 만화방 가고 싶네요~

주말에 따로 시간이 나지 않으면 평일 귀가길에라도 한두시간 들러보는 거 어떨까요? 출장갔다가 오는 길인데 차가 막혀 좀 늦겠다면서ㅎ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35
TRX 0.12
JST 0.040
BTC 70884.24
ETH 3570.27
USDT 1.00
SBD 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