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9. 악마의 증명 | 도진기 스릴러 소설집

in #booksteem6 years ago (edited)

스릴러를 챙겨읽진 않는 제가 '괜찮을까?'라며 몇 장 넘기다가 푹 빠져버린 스릴러 소설집입니다. 판사 출신답게 법적으로 치밀한 내용들이 펼쳐지는데요, 읽는 내내 감탄이 쉬지 않고 나올 정도입니다. 범죄를 저지르려는 범죄자와 범인을 잡으려는 자와의 두뇌싸움이 곳곳에서 펼쳐지는 게 딱 제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법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도 있는데요, 법의 허점을 정확하게 꼬집어서 놀라웠습니다. 법대로 하면 무죄지만 사실은 달랐던 사건을 보며, 법이 만능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판사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들이기에 작가님의 능력이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도진기 작가님이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작품들이니까요.

악마의 증명


이 작품에서 범인은 검찰의 뒤통수를 제대로 칩니다. 이 소설에서 알게 된 사실 하나가, 검찰에서 자백했어도 재판장에서 부인하면 검찰에서 자백한 내용이 모조리 무효가 된다는 것입니다. 범인은 이것을 악용합니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CCTV에 얼굴이 찍힙니다. 그 후 체포된 다음 순순히 자백합니다. 그런데, 재판장에서 부인합니다. 법을 잘 모르는 제가 또 하나 배운 게, 범인이 누군지 모르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범인은 쌍둥이였던 것. 범인과 또 한 명의 쌍둥이 중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를 악용한 범인은 무죄로 풀려납니다. 하지만 여기에 물러날 검찰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검찰은 순순히 자백하는 범인의 행동에 의심을 품고 다른 꿍꿍이를 만들고 있던 것이죠. 그 꿍꿍이는... 책에서...

선택


엄마(아빠)가 돼보지 못하면 어른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요?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아는 건 다릅니다. 머리로 아무리 알고 있어도 절대 가슴으로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요. 저도 아빠가 되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절대 머리로는 알 수 없는 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부모가 돼보지 못하면 절대 어른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자식 문제만큼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게 자식이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돼보지 못한 여자는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내 목숨이라도 내놓겠으니 내 아이를 축복해달라는 엄마의 기도를 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모르는 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저자는 이 소설에 이런 엄마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법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을요. 한 사고가 났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엄마와 아이가 죽어 있었고 엄마의 손목은 예리한 칼에 그어져 있었습니다. 보험사는 자살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고, 경찰도 자살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변호사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죠.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저도 보험 여러 개를 가입하고 있지만, 정말 보험사만큼 나쁜 집단도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보험금을 안 주려고 온갖 수를 다 쓰죠. 기업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유가족들이 처한 상황보다 돈이 우선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법으로는 밝혀낼 수 없는 엄마의 사랑, 법의 한계. 보험은 어쩌면 미완의 법에 기생하는 사기꾼 집단인지도 모릅니다.

구석의 노인


이 소설도 역시 법의 한계를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어느 식당에서 한 남자가 여자의 남편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살인자를 살해합니다. 식당에 설치된 카메라에 모든 상황이 녹화됩니다. 여자는 정당방위 아니면 과잉방위. 법은 여자의 손을 들어줍니다. 정당방위로 풀려납니다. 하지만 재판장 구석의 노인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노인의 생각은 달랐던 것이죠. 노인은 여자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봤던 것입니다. 죄를 찾는 검사, 보호하려는 변호사, 판단하는 판사. 이 세 무리가 전혀 알아채지 못한 여자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 이 반지를 노인은 알아봤습니다. 살아보니 연륜이라는 게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땐 이론보다, 지식보다 육감이 더 정확할 때가 있거든요. 저도 나이 40이 넘으니 사람 보는 눈이 조금은 생겼다는 걸 느낍니다. '이 사람은 사기꾼'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네' '이 사람은 조심해야겠군'이라는 생각이 사람을 만나고 짧게는 몇 분만에, 길게는 며칠이면 듭니다. 그리고 상당히 정확하다는 게 나중에 확인됩니다. 이 소설에 등장한 구석의 노인도 아마 그런 육감으로 반지를 본 건 아닐는지요. 때론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바보가 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고학력의 똑똑한 무리보다, 저학력의 평범한 무리의 문제해결능력이 더 뛰어나다'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많이 배울수록 창의력이 고갈된다는 것.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나 얼마나 많이 배운 사람들일까요. 하지만 그들은 너무 똑똑해서 바보가 된 것입니다.

아,,, 작가님의 소설들은 정말 대단하네요. 이 소설집으로 도진기 작가님을 좋아하게 돼버렸습니다. 법의 한계를 소설로 푼 능력이 정말 너무 대단합니다. 그냥 푼 것도 아니가 다양한 주제와 설정에 사랑까지 넣었습니다. 존경스럽고 부럽네요. 이 소설집을 읽으며 '세상에 이렇게 대단한 작가들이 많은데 나도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 읽고 쓸 때도 됐는데, 저는 소설을 못 쓰고 있네요. 읽고 감탄만 하고 있습니다. 아~~~ 쓰고 싶다.

악마의증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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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을 읽으면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또 좋은 글을 읽으면 나는 못 쓰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참 사람 마음 간사하게.. ㅠ.ㅠ
세상에 랍스터도 있고 라면도 있듯이, 저렇게 잘 쓰는 사람도 있고 나 같이 쓰는 사람도 있고 하는 거지, 라고 합리화시키면서 글을 쓴답니다. ^^;

ㅎㅎㅎㅎ 맞아요. 잘 쓰는 사람 보면 그냥 한없이 부러워요.
난 언제 저만큼 쓸까... 하면서...
그래도 그냥 자신감으로 밀어붙이기 해보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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