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Moon Palace) - 폴 오스터(Paul Auster)

in #booksteem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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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에는, 주인공 M.S Fogg가 인생의 한 시기와 시기를 지나는 자리마다, 깊게 관계한 사람들, 삼촌, 키티, 토마스 에핑, 그리고 솔로몬 바버의 이야기들이, 하나씩 따로 때어내서 단편집으로 엮어놔도 손색이 없을만큼 독립적이고 드라마틱하게 그려진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어느정도 이야기가 진전되고 나면, 그 뒷이야기가 예상되는, 그런 정직한 구도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 ‘폴오스터’ 소설들의 가장 큰 특징인 만큼, [달의 궁전] 또한, 각 각의 이야기들이 나름의 무게와 밀도를 가지고 그 자리에서 묵직하게 고정되기는 하나, 독자들에게 고개를 돌려 앞과 뒤를 관찰할 수 있게 만들지는 않는다. 즉, 지금의 이야기가, 나중에 있을 이야기에 대한 정보로서의 작용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촌의 삶과 그 삶이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내 인생의 한 시기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였지만, 삼촌의 죽음 이후에 내 인생으로 들어온 사람들과 또다른 인생의 한 장을 채워 나가는 중에는 삼촌의 실체는 철저히 배제된다. 그러나 그 시간의 그림자는 진하게 드리워져 있어, 삼촌이 죽으며 남긴 1,492권의 책이 나에게 의미했던, 혹은 작용했던 방식과 그 결과가, 내가 앞으로 다른 시기의 삶을 살아갈 때, 마치 삼촌의 또다른 이미지로 다가와서 독자들에게 도달하듯,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1,492권의 책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습득하게 하고, 토마스 에핑을 만나, 눈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 무심코 지나치는 모든 세상의 유기적인 물체들을, 언어를 이용하여 하나하나 독립적인 실체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내가 온 몸으로 받아들였던 추상의 것들을, 가시적인 언어로 만드는 행위를 통해 사방에 흩어진 모든 유형, 무형의 것들을 스스로 자각해 나가는 과정이었으며,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면서 마침내 나는 그 언어들을 활자화 시킨다. 그 행위를 통해 나는 세상의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솔로몬 바버를 만나게 되면서, 이제까지 아무렇게나 던져 두었던 크고 묵직한 돌덩이들이 개천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듯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일종의 패턴을 만들고, 그제서야 모든 인물들의 관계가 재편된다.

나는,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도, 성장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결국에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폴 오스터’는 단 한번도 엉뚱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챕터 한챕터를 내 어린 시간들을 기억하듯 천천히 읽어 내렸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화들이, 가끔은 그 대사까지도 되살아나며, 그 때 읽었던 폴오스터가 그저 허세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다시 그날 저녁의, 그 서재에 꽂혀 있던 폴오스터의 책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폴오스터가 좋아 라고 말하는 내가 좋아 참조.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이 다루는 인물과, 폴오스터가 말하는 인물들의 닮은 점은, 특별히, 주변인물인 경우, 적극적인 방법으로 주인공의 삶에 깃들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지나간 시간의 흐름에 있던 한 시기의 사건인 채로, 오래오래 짙고 긴 그림자처럼 주인공의 삶에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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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경우, 금쪽 같은 내아들 준페이는 바닷가에서 어떤 소년을 구하고 물에 빠져 죽는다. 그 이후 매년 있는 그 아들의 기일에, 그 때 살아남은 학생 요시노군을 초대해 그날을 기억하고 내 아들을 기리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식으로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 아이에게, 엄마가 하는 매년의 복수였고, 그 아이에게 그 사건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게 하는 엄마의 삶에 있어, 하나의 뚜렷한 목표였다. 여기서, 죽은 아들과, 살아남은 아이가, 영화 전반에 걸쳐, 어떻게 이 한 가족에게 관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은 마치 그 두 인물이 주인공 격인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까지 하게 된다. 주변인이지만, 그 가족이 겪는 모든 갈등과 아픔의 기저에서, 마치 주인공인양 징하게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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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의 죽은 아버지, 세 자매의 어린 시절, 젊은 여자를 만나 가족을 떠난 무정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젊은 여자의 딸인 스즈가, 또다른 젊은 새엄마와 배다른 동생과 함께, 슬픈 눈을 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연민이 생긴 첫째언니 사치가 우리랑 살자며 본인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간다. 그리고 세 자매와 배다른 여동생의 또다른 삶이 시작된다. 그 인연의 끈은 다름 아닌, 영화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아버지로부터 시작이 되었고, 모든 에피소드와 모든 등장인물들의 삶에 진하게 드리워져 있다.

[달의 궁전] 속 나의 죽은 어머니와 삼촌의 이야기를 해 보자. Fogg라는 성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고 같은 성을 가진 삼촌과 성장기를 보낸 내가, 삼촌의 삶을 그가 남긴 1,492권의 책을 통해 읽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습득한 나의 지식이, 나의 여자친구 키티를 매혹시킨다. 삼촌의 죽음 이후, 뉴욕 맨해튼의 물질의 풍요 속에서, 이율 배반적으로, 극심한 생활고로 인해 걸인이 되어 삶의 끝까지 떨어져버린 그 때에, 끝까지 팔아버리지 못했던 삼촌의 클라리넷(팔아봐야 크게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였음에도), 그리고 그 안에서 너풀거리며 나온 징병통지서…

내가 굳이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과 폴오스터를 엮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어린시절 한 시기를 떠올리며 가장 선명했던 어떤 시점에서 떠오른 폴오스터를 읽는 중에, 한 장면에서, 강하게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연상했기 때문이다. 고레다 히로카즈의 오마주참조

[달의 궁전]은, 다른 폴오스터의 책과 마찬가지로, 정말이지 글로 풀기 어려운 책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미끈하지도 않고, 인물과 인물사이에 유기적인 관계라고는 찾기 힘들고, 그야말로 뜬금없다. 그렇지만 읽다보면 내가 얼마나 집요하게 인물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내가 애정하는 감독의 영화들이 오버랩 되면서, 자연스레 그 영화들과 같이 연계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지, 절대절대 어떤 특별한, 대중에게 알려진 뭐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순전한 개인적인 생각이고 감상이니, 반하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은 참과 거짓의 명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시기를.

그야말로 견강부회(牽强附會)

절름발이가 범인이예요~!

영화 [유주얼 서스팩트]가 한참 핫 할 때, 영화관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영화를 다 본 한 관객이 타고가던 버스 창문을 열고 이렇게 외쳤다는, 실화인지 꾸민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하나의 일화로서 유명하다. 나도 그짓을 해보고 싶다.

사실은 그사람이 할아버지래요~~!

뭐 다 아니까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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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작품이 하나도 없어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영화가 오버랩 되는 경험은 너무 멋진거 같아요. 저두 해보고 싶은.ㅎ 영화를 보고 그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오버랩은 되어 봤지만 이런 경험은 없거든요... 역시 사람은 책을 많이 읽어야되나봐요.ㅎㅎ
북키퍼님 글을 흐믓한 표정으로 술술 풀어내신 거 같아서 보기 좋아요 ㅎㅎ

영화와 오버랩된 것은 특정한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부터예요. 그다음부터는 영화들에 의지했다고 보시면 되구요. 정말 글로 풀어내기 힘든 글이었어요...ㅠㅠ

ㅎㅎ 아는 작품이 없어서 감정이입이 안되도 술술 읽혔던 제 착각이었나요?^^
그럼 북키퍼님이 글을 너무 잘 쓰시는걸로!
폴 오스터 책 한권만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 글 보셔서 저에 대해서도 조금은 아실테니 폴 오스터를 모르는 제가 처음으로 읽기 좋은 책으로 ㅎ 주말에 서점이라도 가서 사볼라구요^^

ㅋㅋ 저도 잘 몰라요 ㅎㅎ 뉴욕 삼부작 먼저 읽어보세여. 다른 책들 보기전에 좋을 듯요 ㅎㅎ

ㅎㅎ 감사합니다~~ 꼭 사서 읽어볼게요 ^^ 기대된다잉.ㅎ

그 무렵 에핑은 거의 언제나 눈에 검은 안대를 하고 있어서 그와 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나 자신을 속일 기회는 없었다. 그는 자기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야기와 함께 혼자였고, 나는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과 함께 혼자였다.

저는 달의 궁전 중 이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옮겨적어 봅니다. 북키퍼님 덕분에 달의 궁전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머 감사합니다. 손수 찾아서 써주시고~ 영광이고 감동입니다 ㅎㅎ

갖은 것이라고는 책밖에 없는 그래서 다 읽은 책을 내다파는 빈자의 삶, 키티와의 불같은 사랑, 에핑과의 지난하고도 번뜩이는 대화, 그리고 여행. 제 시선을 진득이 붙들었던 책이에요. 읽은 지 오래 되어 이야기의 형상은 흐릿한 구름처럼 보이지만요. 재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ㅎㅎ 그만큼 기억하시면 다시 읽을 필요없으실듯요 ㅎㅎ 다른 책을 읽으심이 ㅎㅎ

보팅부터2^^

급한 애정어림에 감사요 ㅎㅎ

이 뜻을 알려면 달의궁전을 봐야겠군요 ㅎㅎㅎ

솔로몬 바버를 만나게 되면서, 이제까지 아무렇게나 던져 두었던 크고 묵직한 돌덩이들이 개천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듯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일종의 패턴을 만들고, 그제서야 모든 인물들의 관계가 재편된다.

raah님께서 이 책을 안 읽으셨다니요.. 하하 맞아요 저 말이 딱이에요.

오늘밤엔 무엇이 필요하려나요....^^
잘 보고가요~

읽어주셔 감사해요 ㅎㅎ

1등 하고 싶어서 보팅부터.ㅋㅋ 찬찬히 읽어볼게요~~ ^^

대박보팅 감사요^^

아주 재밌을 것 같은데요.

ㅋㅋ 아주 재미있진 않아요 ㅎㅎ 재미있다가 지루하다가 다시 재미있다가... 작가에 대한 애정없이는 읽어내기 힘든 작품이지요..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니
부재의 존재가 떠오르네요.^^
그게 공통점일까요?^^

부재의 존재는 무엇일까요? 댓글에서 화두를 찾습니다. ㅎㅎ

아버지가 돌아가심(부재)으로 저들이 모여 아버지 닮은점을 발견하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통해 오히려?아버지를 더 생각하는(존재감) ;;;
아는 작품이 저 하나여서 저 맥락인건가 싶었어요^^

영화 식스센스도 그랬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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