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치] 도시는 새로운 정치의 거점이 될 수 있는가?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도시는 새로운 정치의 거점이 될 수 있는가?

[레드빈 시절에 지어진 노동자 공동주택 중 하나인 칼 맑스 호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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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도시’론자라는 자부심이 있다. 도시 오타쿠 뭐 이런 취향의 측면이라기 보다는 운동적 차원에서 도시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높이 친다는 면에서 그렇다. 도시는 개인 공간이 적고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높다. 대부분의 공간이 빽빽하게 밀집해 있으며 거의 모든 일상생활의 필요가 지근 거리에서 해소된다. 그리고 도시는 질 좋은 일자리 뿐만 아니라 질 나쁜 일자리가 몰린다. 일자리 자체만 주목한다면 도시는 광범위하게 노동력을 집적해서 소비하는 공장과 같다. 이런 조건에서 불만과 항의는 상당히 구체적이며 영향권도 매우 명확하다. 공간의 높은 밀도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타자의 낯선 침입을 열러 놓는다.

그래서 일까, 어떤 변화의 계기로 도시를 주목했던 사례가 그리 낯설지는 않다. 가장 익숙한 예가 68혁명의 자장 속에서 나온 도시학자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책이다.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은 당시 도시공간의 사유화흐름에 반대하는 68세대의 스콰팅(점거운동)과 호응했다. 대처리즘이 출현한 1980년대 영국의 런던시정부에서 나타난 좌파지방정부의 고투를 다룬 사례는 서영표 교수가 <런던 꼬뮌>이라는 책으로 자세히 소개되었다. 그리고 최근 지그문트 바우만이 언론인터뷰에서 언급한 탓에 주목받은 벤자민 바버의 <시장이 세계를 다스린다면>이라는 책 역시 국민국가 중심의 국제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가능성으로 도시간 국제 질서의 가능성을 주목한 결과물이다. 이와 함께 에드워드 소자는 자신의 지론인 '공간 정의론'을 정리한 <공간 정의를 찾아서>라는 책을 출간했고, 대표적인 좌파 도시학자인 데이비드 하비도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논문을 뉴레프트리뷰 지에 기고한 것은 물론이고, 이 논문을 담은 단행본 <반란의 도시>를 냈다.



<반란의 도시>는 담고 있는 주제 외에도 미덕이 많은 책이다. 무엇보다 읽기가 어렵지 않다. 각각의 사례들은 구체적인데, 특히 제2장(자본주의위기의 진원지,도시)는 자본주의 체계 내에 잉여를 소비하는 공간으로서 도시를 설정하고, 초과 생산물의 결과물로서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도시개발의 흐름을 따라간다. 게다가 통합적이다. 제3장(도시는 누구의 것인가)실제로 새로운 도시의 통치문제를 다루면서 제3의 공유지 관리 방안을 사례연구를 통해 제시한 오스트롬의 이론을 소개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이와 대결한다. 비슷하게 도시를 유토피아의 공간으로 본다는 점에서 유사한 입장인 사회생태주의자 머레이 북친의 도시 자치주의와도 지속적인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또 대안 부분을 다루고 있는 제5장(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되찾자)에서는 미국내 노동운동의 혁신 흐름을 소개하면서 그동안 사업장 내로 한정되었던 계급투쟁의 장을 지역사회로 확산시킬 것을 제안한다. 어느 것 하나 관념적인 것 없이 구체적인 사례에 바탕을 두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이 책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두말할 것 없이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 더 이 책으로 가는 손길을 이끌기 위해 이 책이 함의 하는 쟁점들을 살펴보자. 이 부분은 대안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다.

첫번째는 도시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에 대한 부분이다. 하비는 명확하게 “도시 공간의 형성은 잉여가치를 추구하는 자본가가 쉬지 않고 생산한 잉여생산물을 흡수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31쪽)고 말한다. 좀 더 차이를 위해 ‘어바나이제이션’과 ‘도시'를 구분하는 머레이 북칙의 논의를 들어보자. 북친은 자본주의 체제 내의 도시가 아니라 과거 도시가 구성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도시없는 도시화>라는 저작을 통해서 북친은 도시화의 과정을 전 근대적인 도시형성의 역사, 즉 모두에게 열려있고 “감정의 공동체"로 등장했던 맥락과 민족국가로 수렴하면서 ‘국가'라는 특권적 기구로 전환되는 근대 도시의 기능을 맞대고 있다. 하지만 하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시각은 ‘자치주의'라는 이념형을 끄집어 내기 위한 조작적 행위에 가깝다. “국가 개입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데다 부르주아 입헌주의의 정당성도 모두 부인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들은 지역 공유재와 관계를 맺는 사회의 여러 집단이 일을 올바르게 처리할 것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협상과 상호작용을 통해 집단 간 실천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순진하고 모호한 희망을 품을 뿐이다.”(154쪽)라는 하비의 비판은, 지금-여기라는 문제의식이 아니라면 간파할 수 없는 내용이다. 실제로 가맹국의 이산화탄소 감축에 어떤 기능도 할 수 없는 ‘다극적 유로존'의 사례가 언급된다. 미시적으로 쪼개지는 생활권에 대한 관심, 우리에게 익숙한 마을이라는 이상이, 그리고 마을의 연합체로서 도시가 가지는 기능이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들을 달성하는데 충분한가?

두번째는 노동운동 특히 조직노동인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견해다. 하비는 2000년 볼리비아의 엘 알토에서 물사유화에 저항하며 발생한 대중투쟁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소위 네그리와 하트 류의 ‘새로운 조직형태'와 ‘투쟁 방법'만을 주목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전통적으로 강력하게 존재했던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성을 되짚는다(250쪽). 특히 노동조합이 형성해온 노동자계급의 문화적 토대가 지역 특유의 공동체적 문화를 형성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런 관심은 그대로 현재 노동운동의 방향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하비는 최근 미국 조직노동운동의 전환을 제안한 플레처와 가파신의 논의를 빌어와, “노동운동은 부문별 조직형태보다는 지리적 조직형태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미국 노동운동 역시 부문별 조직과 더불어 각 도시의 노동조합평의회에도 더 많은 권한을 주어야 한다"(230쪽)고 제안한다. 우리 식으로 보면, 산별 중심의 조직 노동운동이 좀 더 지역적 차원의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1970년대 붉은 볼로냐나 1980년대 런던의 사례를 들면서 ‘자치 사회주의'의 역사적 흐름이 도시 내 지역을 조직화의 대상으로 삼은 노동조합 운동의 기여를 통해 가능했다는 점이 강조된다.

영국 노동당 런던의 젊은 좌파그룹이 런던광역시에 다수당이 되었던 1980년대 초반의 모습

개인적으로 이 쟁점들은 사회적 경제니, 협동조합을 고민할 때마다 가지고 있던 의구심이었고, 노동 정치의 재구성이라는 맥락에서도 조직 형태의 변화 없는 관심만으로 ‘지역 노동운동'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이 책의 미덕은 이와 같은 쟁점들에 대해 분명한 저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토론하는 기분을 갖도록 한다는 데 있다. 물론 이런 긴장감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것을 빼더라도 도시를 성장기계로 작동시키는 의제자본에 대한 논의(90쪽)나 세계화에 대하여 미분화된 통일체로의 관점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가 지리적으로 접합된 편성양식으로 접근하는 논의(181쪽)는 이론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비의 <반란의 도시>는 이미 학계의 권위를 획득할 데로 획득한 좌파 학자의 그렇고 그런 이론서가 아니다. 당대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 논리를 탐구한 실천적 교본에 가깝다. 이 책의 미덕은 온전히 이런 저자의 태도에 놓여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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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칙인가요 북친인가요? 여기서도 적립해 주시나요 ㅎㅎ 그러고보니 jjangjjangman 태그를 쓰시기 시작해셨군요 ㅋㅋㅋ

글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예전에는 산별 노조가 지역적 노조의 역할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단이라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게 여기저기 흩어지면서 의도치 않은 분할통치가 되어버리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밋업 등을 볼 때, 정보통신이 발달한다고 해도 아무래도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서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기도 하고..

저에겐 너무어려운 주제이지만 좋은글 감사합니다. 상디이미지.gif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잘 몰라서 거칠게 정리를 하다보니...ㅠㅠ

오래전에 첫글 읽고 팔로우한 줄 알았더니 안했네요.ㅠㅠ 뒤늦은 봇/팔/리 삼종세트 날아갑니다~~^^

오옷 대박. 하비가 도시에 관한 책을 썼군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urbansocialism 님 글 제가 너무 관심있어하는 주제들이라 팔로우하고 다른 글도 정독하겠습니다!

1일 1회 포스팅!
1일 1회 짱짱맨 태그 사용!
^^ 즐거운 스티밋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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