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빈학파 (관계론의 볼츠만과 존재론의 마흐)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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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빈학파 (관계론의 볼츠만과 존재론의 마흐)

루트비히 볼츠만: 앤트로피의 증가 (관계의 증가)

20세기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으로부터 핵물리학과 입자물리학, 그리고 빅뱅우주론에 이르는 현대 물리학의 세기라 말할 수 있다. 현대 물리학의 현주소는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 즉 우주에 존재하는 4가지 힘 전자기력, 중력, 강력, 약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통일장 이론’의 모델로서 초끈이론(Super String Theory)이 강력한 후보로 대두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초끈이론은 아원자의 미시 세계의 물리적 현상(양자역학-강력, 약력, 전자기력)과 전 우주에 걸쳐 작용하는 거시 세계의 물리적 현상(상대성이론-중력, 전자기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추구하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의 이론’이다.

1900년 양자론을 처음 소개했던 막스플랑크의 흑체복사이론의 결정적 단서인 열역학2법칙, 즉 엔트로피 이론을 창안한 사람이 바로 루트비히 볼츠만이다.

열역학 법칙은 보통 제1법칙 제2법칙의 형태로 이야기되곤 하는데...

제 1법칙은 에너지 보존을 제 2법칙은 엔트로피의 증가를 이야기합니다.

에너지가 보존된다는것은 에너지가 열에서 전기로 전기가 다른 에너지로
등등 변화를 거치더라도 그 총량에는 변화가 없음을,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것은 비가역적인 정도를 표현하는 수치(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살다보면 관계및 여러가지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고 한번씩 정리할 때가 필요하다는 말도 됩니다. 엔트로피의 증가를 없애려면 무슨 사건이 벌어져야 할겁니다.

에른스트 마흐: 논리실증주의 (측정가능한 것을 믿어라)

19세기 말∼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였던 에른스트 마흐는 “경험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이론적 언술을 과학에서 수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험과 관찰을 강조한 마흐의 생각은 논리 실증주의 과학철학을 출범시킨 빈 모임의 구성원들은 물론 조지프 슘페터 같은 경제학자, 막스 아들러 같은 사회과학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흐의 영향은 한동안 논리실증주의라고 부르는 사고방식을 신봉했던 빈학파로 알려진 철학운동으로 계속되었다. 그들의 목적을 간단히 표현하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경험적 사실에 이미 확립된 논리를 적용해서 납득할 수 있는 과학적 아이디어를 구축하는 것이다.

“과학과 사회 각 분야 사이에는 모세혈관과 같은 소통의 관(管)이 존재하는데 그 관에서 이뤄지는 소통의 흐름이 일방적이거나 막히면 사회가 병들고 문제가 생긴다”고 강조하고 대표적인 사례로 우생학을 들었다. 과학이 사회의 요구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거나 사회가 과학의 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 ‘인종 청소’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아인스타인: 관계론 + 존재론

볼츠만은 고전열역학의 확실성에 대한 철학에 정면으로 거슬러 자연과학에 통계적 접근 방법을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며 직관과 창의성을 중시하여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비교적 덜 알려진 천재물리학자이다. 플랑크가 불연속적인 에너지입자, 즉 양자를 가정하게 되는 데는 볼츠만이 수많은 원자들의 에너지를 분석적인 목적으로 에너지를 연속적이 아니라 범위에 묶은 방법론이 작용했으며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 (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을 안긴)도 유사한 방법론의 영향이다. 아인슈타인은 '브라운 운동'에 대한 논문으로 볼츠만의 원자론을 실험적으로 입증한다.

1906년 9월 5일 금요일 아드리아해 연안의 휴양지인 Duino에서 한 남자의 목맨 시신이 발견 된다. 그는 19세기 말과, 오스트리아를 빛냈던 위대한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으로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의한 자살로 판명 되었다. 그의 자살 배경에는 그와 평생 학문적 경쟁자였던 독일 출신의 에른스트 마흐(소리의 속도를 발견한 물리학자)와의 오랜 논쟁도 하나의 요소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 사교적이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방법론에 대한 에른스트 마흐와의 철학적 논쟁에 필요 이상 많은 정력을 소비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시달리다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되는 비극을 맞는다.

마흐의 원리는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의 이름을 딴 것으로 마흐는 뉴턴에 대한 비평가로 유명하며, 젊은 앨버트 아인슈타인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마흐의 원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사물의 질량은-운동 변화에 대한 저항력의 척도-궁극적으로 그 사물과 우주의 다른 모든 물질과의 중력상호작용으로부터 유도된다. 이 원리는 아인슈타인의 흥미를 돋우고 그의 사고를 자극했지만 그의 일반상대성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은 결국 그로부터 벗어난 것이었다.

마흐의 원리를 중력이론과 결합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모든 유형의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스칼라 장(scalar field)의 존재를 가정했다 (스칼라장은 시간과 공간상의 각 점에서 하나의 값만 갖는다). 1961년 프린스턴 대학교의 대학원생이었던 칼 브랜스와 그의 논문 지도교수였던 로버트 디키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에서 중력의 세기가 뉴턴의 상수 G에 의해 고정된다고 지적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G가 지구상에서 같은 값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장 멀리 떨어진 은하에서도 같은 값을 가지며, 그 값이 시간에 따라 변하지도 않는다. 브랜스와 딕은 또 다른 가능성으로 뉴턴상수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는 경우에도 마흐의 원리가 만족한다는 사실을 보였다.

원근법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세 살 정도 됐을 때였던가? 원근법에 따라 그려진 그림들이 내게는 대상을 왜곡해 묘사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왜 화가들이 책상의 한쪽 면은 길게 그리고 다른 쪽 면은 짧게 그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현실의 책상은 가까이 있는 면이나 뒤쪽의 면이나 길이가 같은데….”

‘경험비판론’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흐의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서구 원근법이라는 낯선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눈이 느끼는 당혹감이 표현되어 있다. 파노프스키의 말대로 서구의 원근법은 그저 ‘상징형식’, 말하자면 3차원 공간을 2차원의 평면에 투사하는 한 가지 규약에 불과하다. 그럼 공간을 다르게 표상하는 또 다른 규약은 없을까? 왜 없겠는가. 애초에 약속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서구의 원근법과는 다르게 그릴 수 있다.

‘하나의 움직이지 않는 눈으로 본다. 그렇게 본 장면을 평면에 투사한다.’ 이것이 서구의 원근법을 지탱하는 두 가지 규약. 이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하면 각각 다른 투시법들이 얻어진다. 가령 선원근법의 규약과 달리 장면을 곡면이나 사면에 투사하면 마니에리스모와 바로크 시대에 유행하던 왜곡상(anamorphosis)이 얻어질 것이다. 반면 시점을 고정시킨다는 규약을 깨고 시점에 움직임을 도입하면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서구의 것과는 정반대로 뒤집어진 ‘역원근법(obratnaya perspektiva)’이 탄생한다.

“지구 전체의 면적을 재려는 사람에게 지표면은 하나의 구체(球體)일 터이지만

집터를 재는 사람에게 지표면은 여전히 평면인 것이다.”(에른스트 마흐)

세상은 한가지 작대로 보려면 너무 힘들어진다. 필요에 의해서 지구는 평명일수도 둥글수도 있다는 것.

세상은 재미있어서 20세기 모든 물리학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하였는데 결과는 미국으로 망명을 온 아인스타인이 풀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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