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역사: 대항해 시대에서 제국주의시대로 (결과는 세계 1차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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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역사: 대항해 시대에서 제국주의시대로 (결과는 세계 1차 대전)

대항해 시대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을 하던 시기를 말한다. 그 과정에서,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아메리카 대륙과 같은 지리적 발견을 달성했다. 이 시기 이전에 정화의 대항해 등, 해상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유럽인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편협한 용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유럽의 대항해 시대는 필요에 의해서 시작 됩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변방에 포르투칼,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 마지막에는 영국.

대항해 시대를 통해서 무역을 잘하려다 보니 식민지도 필요해지고 자신들이 필요한 원자재를 탈취하고 생산한 것을 강매하려고 식민지들을 만듭니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서 식민지의 활용도를 극도화했습니다.

제국주의

제국주의(Imperialism)는 제국을 가리키는 임페라토르(Imperator)에서 왔으며 이는 원래 로마의 황제를 뜻하는 말이었다. 유럽의 역사상 많은 국가나 왕이 로마 제국을 모델로 스스로 제국임을 선포한 것에서 그들이 취하였던 팽창주의 정책 및 사상을 제국주의라 부르게 되었다. 제국주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이후 등에서 비판적인 용어로 많이 사용되었으나 제국주의라는 낱말 자체는 그 이전부터 흔히 쓰였던 말이다.

포르투갈 제국으로부터 독립및 반환된 국가(지역)

브라질 - 1822년 독립
기니비사우 - 1974년 독립
동티모르 - 1975년 일시 독립 후 인도네시아가 점령, 2002년 독립
모잠비크 - 1975년 독립
상투메 프린시페 - 1975년 독립
앙골라 - 1975년 독립
카보베르데 - 1975년 독립
마카오 - 1999년 중국에 반환

스페인 제국

스페인 제국은 전 지구에 걸쳐 세력을 넓힌 최초의 근대적 제국이었다.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 국가들의 대항해시대로서의 추구와 식민지 지배 확대를 통해 무역로를 대양을 통해 확보하고 대서양을 사이로 아메리카 대륙과 교역을 이루는 한편 태평양을 통해서는 동아시아와 멕시코,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교역로를 넓혀간다.

정복자(콘키스타도르)들은 남미에 널리 세력을 떨치고 있던 아즈텍, 잉카, 마야 문명을 무너뜨리며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전체에 걸친 세력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이는 지역 세력과의 유착으로 가능했다. 당시 스페인 제국은 항해시대의 강자로서 해양시대의 군주로 우뚝 서올라 뛰어난 화력으로우위를 점했으며 16~17세기 스페인의 황금기를 누린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역사학자 피에르 빌라르는 "인간의 역사상 가장 비범한 대서사시로서 활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표현한다.

네덜란드 제국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네덜란드 공화국이 본국과 식민지를 확대해 구축한 식민지 지배 및 교역체제를 가리킨다. 17세기 초 네덜란드 공화국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동인도에 진출해 포르투갈에서 향료 무역을 빼앗았으며,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도 설립하는 등 점차 식민지를 확대하고 황금 시대를 맞았다.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식민지주의 대국으로 도약하였다.

스페인에서 독립을 했던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를 최초로 만듭니다. 1492년에 스페인에서 종교탄압으로 탈출한 유대인들이 금융에 많은 도움을 주게 됩니다.

원인

주로 유럽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유럽의 초기 식민지는 희귀한 자원과 노예의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남아메리카의 은, 아프리카의 금, 상아와 노예, 인도의 후추등이 대표적인 목표물이었다. 이후 산업혁명은 대량생산을 위해 보다 많은 자원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고 동시에 생산된 제품을판매할 판매처가 필요했다.

당시의 대표적인 식민무역은 영국의 경우 인도의 값싼 노동력과 면화로 면직물을 만들고 이것을 다시 인도에서 아편과 바꾼 후 중국에서 은과 교환하는 것이었다. 이는 나중에 아편 전쟁이 일어나는원인이 되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식민지는 에너지및 자원의 확보와 자본 투자처로서 더욱 유용해졌다. 이를위해 제국주의 국가는 식민지에 척식회사를 설립하였는데 영국의 동인도회사나 일본의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이 그것이다. 후발주자로 미국과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대열에 등장했다.

제국주의의 역사

넓게는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의 각 나라들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및 아시아에 대해 크고 작은 식민지를 만들고 자원과 노동력을 약탈하던 때부터 제국주의의 시작이라 간주하나, 좁은 의미의 본격적인 제국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앞다투어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든 18세기 무렵부터 나타났다.

제국주의의 전성기였던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시기에 이르러 세계는 이른바 열강이라 불리던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로 양분될 지경에 이르렀으며 에티오피아와 타이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열강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식민지들은 대부분 격렬하게 제국주의에 저항하였으며 결국 제2차세계 대전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독립을 회복하였다.

여러 세계대전을 거치고 이후 식민지 해방의 합의사안으로 민족자결주의가 합의되었으며, 세계대전 당시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 볼셰비키 혁명과 UN세계주의 (냉전)이념에도 영향을 주었다.

산업 혁명 (영국제국주의)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의 혁신과 이로 인해 일어난 사회, 경제 등의 큰 변혁을 일컫는다. 산업 혁명은 후에 전 세계로 확산되어 세계를 크게 바꾸어 놓게 된다. 산업 혁명이란 용어는 아널드 토인비가 《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Eighteenth Century in England》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배경

영국에서는 다른 국가보다 일찍 여러 혁명(17세기 명예혁명)을 거치고, 봉건제가 해체되어 정치적인 성숙과 안정이 이루어지면서 이전보다 자유로운 농민층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농촌에서는 모직물 공업이 많이 발달하게 되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근대적인 산업이 발전했다. 또한 영국에서는 풍부한 지하 자원(기계와 동력에 필요한 석탄, 철), 제 2차 인클로저 운동의 결과로 풍부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식민지 지배 등을 통해 자본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상태였다.

18세기에 들어서 영국 내외에서는 면직물의 수요가 급증하자 와트가 증기 기관을 개량해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는데, 이를 산업 혁명의 출발점으로 본다. 그 후 면직물 공업이 산업 혁명을 주도하게된다. 산업 혁명 중에는 기계가 무수히 발명되었다. 이 때부터 기계는 생산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혁신

산업 혁명의 시초는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몇 개의 혁신과 연결되어 있다.

직물 – 아크라이트의 수방적기, 하그리브스의 다축 방적기, 크롬턴의 뮬 정방기(수방적기와 다축방적기의 결합체)를 이용한 면방적기.제닝의를방저긷등며1782년1783년에 그 효력이 발생되었다. 면직∙방직 공장이 설립됨에 따라, 빠르게 그 효력이 줄어들었다.

증기력 – 와트가 발명한 개선된 증기기관은 즉시 광산을 퍼내는 데 이용되었지만 1780년대부터는동력기로 대체되었다. 이 기술은 수력발전이 존재하지 않았던 작은 규모의 과거 상황으로부터 능률적인 반자동화 공장의 빠른 발전을 가능케 했다.

제철 – 철강 산업에서, 석탄이 숯을 대신하여 철 제련 단계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구리, 용광로의 선철보다 훨씬 전에 발견되었다.

핵심적인 혁신인 이 세 가지 발견은 산업 혁명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가져 왔다. 다른 발명들을과소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물의 발견은 큰 변화를 일으켰다.

초기의 발명이 없었다면, 직물 산업의 다축 방적기나 플라잉 셔틀과 코크스를 이용한 선철의 제련과 같은 성과를 불는능것을 것이다. 후에 발명된 역직기나 트레비식의 고압기관 역시 영국의 산업화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증기 기관을 수력발전으로 가동되던 면직 공장과 제철소에 도입함으로써 편리함을 더욱 증가시켰다.

사회적 영향

산업 혁명은 경제 구조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치 구조도 크게 바꾸어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왕족과 귀족 지배 체제가 무너지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선거법 개정을 달성하였다. 이러한 부르주아들의 활약은 영국에서 노동자 계급의 성년 남성들이 하나로 모여 선거권을 요구한 차티스트 운동이 벌어지게 했다. 이런 일련의 규제가 폐지되면서 점차 자유주의적인 경제 체제로 가게 되었다.

공업화로 농촌 인구의 대부분은 도시로 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도시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세를보였다. 하지만 결국 산업 혁명 때 도시에서는 석탄이 타는 연기로 공기가 나빠졌고, 비위생적이고악취가 심하며, 사람이 북적대는 불결한 도시로 변한 점이다. 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도 산업 혁명 때부터 대두되기 시작되었다.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고, 소비와 휴식도크게 제한 받았다. 또한 어린이 노동이라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자본가들은 고아들을 구빈원 이라고도 부르는 고아원에서 감언이설로 유혹해서 데려와서 일을시켰으며 (아동 노동), 1833년 영국 의회조사에 따르면 지각을 했다고 해서 임금을 깎는 일까지 있어서 영국에서는 어린이 노동을 금지시켰다. 또한 야간 근무를 금지하는 등의 관련 법이 제정되기도 했고, 미국에서는 정부의 탄압과 언론들의 왜곡 보도에도 불구하고, 임금 감축과 장시간 노동에반대하는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노동 운동이 일어났다. 식사는 빵과 감자가 거의 전부였으며, 거기에 차와 버터 등이 곁들어지는 정도였다.

산업 혁명기에 발생한 사회 문제 중에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도 있었다. 노동자의 수명은 귀족 계급보다 훨씬 짧았는데, 이를 비위생적인 전염병 때문으로 본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물결이 일게 하였으며, 이상적 사회주의에 반발한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정립에 의해서 논리를 갖게 되었다.

산업 혁명은 19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돼 세계 근대화의 촉매가 되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속도는과장된 점이 있다. 유럽 대륙에서 조차 그 충격은 1850년까지는 몇몇 지역에 국한돼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파도가 밀어닥친 것은 1875년 이후였다. 유럽 이외 지역의 산업화는 미국을 제외하면훨씬 늦게 일어났다.

1895년 독일에서조차 인구의 3분의 1이 아직도 농부였으며, 동유럽과 남유럽의 대부분 지역은 실질적으로 산업과 무관한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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