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9: 순자 (인간의 운명은 인간 스스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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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9: 순자 (인간의 운명은 인간 스스로 만든다)
[출처] 인간의 운명은 인간 스스로 만든다 : 순자 이야기 |작성자 제3노총

순자와 프로메테우스

역사를 보면 자신의 주장 때문에 불행해진 철학자들이 몇 사람 있다. 신은 죽었다고 한 까닭에 기독교로부터 사탄처럼 취급받는 니체나 프로레타리아트의 혁명을 꿈꾸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문화권에서 악마처럼 취급받는 마르크스 등이 모두 그러하다. 하기는 그렇게 따지면 지난 호에 다룬 맹자도 역성혁명을 주장하였다 해서 한 때 금서로 다루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동양에서 정말 불행한 철학자는 아마도 순자일 것이다.

순자를 생각하면 그리이스 신화에서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다는 프로메테우스가 떠오른다. 불을 얻고부터 오만해진 인간의 모습에 화가 난 제우스가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판도라라는 아릿다운 여자를 만들게 하여 신들의 저주가 가득 든 예쁜 상자 하나를 주어 인간 세상으로 보낸다.

그리고 판도라가 호기심에서 상자를 열었을 때 그 속에 들어 있던 질병과 재앙이 온 세상에 퍼지게 된다. 하지만 상자 구석에는 마지막 한 조각 희망이 남아 있었다. 이어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카우카수스 절벽에 매달아 놓고는 독수리에게 그의 간을 쪼아 먹게 했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 간이 생기고 그 때마다 독수리가 날아와 쪼아 먹는 고통이 계속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헤라크레스가 독수리를 쏘아 죽이고 프로메테우스를 구해 주었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비록 하늘로부터 버림받았지만 신으로부터 인류를 구한 존재로 평가되며, 그가 훔쳐다 준 불은 인류문화를 상징한다.

어쩌면 순자는 여러 면에서 프로메테우스와 비슷하다. 순자 이전의 사상가들은 대부분 하늘이 모든 만물을 낳고 주재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하늘은 생성의 근원이며 인간 도덕의 근원이기도 했다. 어진 임금이나 포악한 임금이나 모두 하늘의 뜻이며 일식과 지진 같은 현상도 하늘이 인간 행위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순자는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끊어 버렸다.

하늘이란 비가 오고 바람 부는 자연 현상에 지나지 않을 뿐, 인간을 낳아 준 존재도 아니고 인간의 도덕적 행위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보았다. 이렇게 되고 나니 그 전까지 운명이라고 여기던 것에서 자유로워지기는 하였지만 그 대신 인간 스스로 홀로 서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다. 이러한 순자의 생각은 인간의 지위와 실천을 극대화시킨 인문정신의 완성이었다. 하지만 하늘과의 관계를 끊어 버린 순자의 눈에 보인 인간의 참 모습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끊임 없이 싸우는 존재였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순자의 성악설은 판도라의 상자인 셈이다. 그러나 순자의 판도라 상자 속에는 악한 본성을 이겨 나갈 숭고한 인간 의지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순자의 철학이 인문정신의 극치를 보였음에도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본 한 가지 이유만으로 프로메테우스처럼 뒷날 많은 학자들에 의해 두고두고 비판받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심리학자와도 같은 인간 이해

순자의 이름은 황이며 공자와 맹자를 이어 유가철학을 발전시킨 사람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혼란이 더 심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서히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던 전국시대 말기를 살았다. 순자는 살아있을 당시 제나라 직하학파에서 최고의 사상가로 꼽혔다.

그래서 비록 명예직이기는 하지만 국가의 제사를 주관하는 좨주 벼슬을 세번이나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의 철학이 부국강병책은 아니었기 때문에 권력의 핵심에 이르지는 못하였고, 말년에는 난릉에 정착하여 제자들을 기르고 책을 짓는 일로 일생을 마쳤다.

다만 그의 제자들 가운데서 법가 사상의 이론적 기초를 세운 한비자와 진시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한 이사가 나온다. 이런 점은 순자를 원시유가의 틀을 만든 사상가라고 평한 덥스(Dubs)의 말 처럼 그가 현실지향의 측면에서 공자 사상을 구체화해 냈음을 잘 보여준다.

순자가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한 근거는 무엇일까? 순자도 맹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을 타고난 것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인간의 도덕적인 면에 주목한 맹자와 달리 배고프면 먹고 싶고 피곤하면 쉬고 싶은 자연적이고 생리적인 욕구에 주목했다.

이 욕구는 감각기관의 이기적 욕구와도 통하는 것으로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바로 이 욕구 때문에 다툼이 생긴다는 것이다. 순자가 볼 때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 춘추전국의 혼란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면 사람들이 늘 악한 짓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을 한다고 해 보자. 피곤하면 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생리적 욕구이며 그 욕구대로라면 서로 상대방에게 일을 떠맡기고 들어가 쉬려고 하겠지만, 실제 행동은 오히려 그 반대로 서로 자기가 남은 일을 다 할테니 어서 먼저 들어가서 쉬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자신의 악한 본성을 거스르는 착한 행위는 어디서 오는가?

순자는 인간의 마음 작용을 성(性), 정(情), 려(慮), 위(僞)의 네 단계로 나누었으며 이 단계가 마음이 움직이는 순서이기도 하다.

첫 단계인 성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생리적 본성이다. 며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사람은 당연히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을 뿐이다. 자 그런데 지금 눈 앞에 음식이 놓여 있다면

두번째 단계로 입에 침이 고이면서 저 음식을 먹고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감정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곁에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있거나 음식의 주인이 따로 있다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셋째 단계인 려이다. 이런 고민의 결과 제 본성대로 혼자 다 먹어 치울 수도 있고, 반대로 불쌍한 사람에게 주거나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 후자의 행동 처럼 굳센 의지로 본성을 억누르면서 참아내는 것이 위 단계이다.

이같은 사람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분석은 현대 심리학자의 분석을 방불케 한다. 순자는 본성대로 가면 결과가 악이고 본성을 거스르는 의지적 실천대로 가면 선이기 때문에, 성은 악이고 위僞는 선이라고 한다. 하지만 순자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보았다고 해서 본성대로 살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순자에게는 어떻게 하면 의지적 실천을 통해 본성이 가져올 악한 결과를 변화시켜 갈 것이냐가 문제였다.

따라서 순자의 철학이 갖는 가치는 위에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의지에 기초한 실천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위라는 글자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거짓이라는 뜻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러나 '위'자의 의미를 거짓이라는 뜻으로 새기면 순자의 철학은 죽는다.

여기서의 '위'는 사람 인(人)과 할 위(爲)를 합쳐 놓은 글자로서 사람의 의지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이처럼 순자의 철학은 철저히 인간중심적이었으며, 그 속에는 인간 의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맹자는 앞서 보았듯이 인의도덕이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어린 아이가 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불쌍하게 여기는 감정을 들었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주장의 근거를 인간 내면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순자는 현상에서 출발하여 인간 내면으로 거슬러 들어가서 본성이 악하다는 규정을 내린다.

순자는 사회가 잘 다스려진 상태는 선이고 혼란한 상태는 악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현실은 혼란상태로 놓여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적 혼란은 인간의 이기적 욕구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순자는 맹자와 달리 선악을 가르는 기준을 인간 외적인 현실에 둔 셈이다.

의지적 실천을 제도화한 예

순자는 인간의 의지적인 실천을 통해 악한 본성과 그 때문에 생기는 사회적 혼란을 바로잡으려 하였고, 그러한 의지적인 노력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으로 예를 강조하였다. 순자는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그 욕심을 채울 수 있는 재물은 부족하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서로 더 많이 갖기 위해 다툴 수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을 다투지 않고 화합하게 할 수 있는 통제 수단으로 예를 생각했던 것이다. 순자는 사람에게 예가 없다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으며, 예를 통해 인간의 행위를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규제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순자는 이같은 예의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이지만 사회는 항상 바뀌는 것이고 예는 언제나 구체적이며 현실적이어야 하므로 오늘에 맞는 예를 만드는 사람들은 현실의 군주라고 보았다.

이같은 생각 속에는 현실중시나 미래지향적인 모습과 함께 예의 탄력성을 인정하는 생각이 담겨 있다. 순자가 이처럼 사회의 통제 수단으로 강조한 예는 순자의 제자들 가운데 법가 사상가에 해당하는 한비자와 이사에 의해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생각으로 발전해 갔다. 하지만 순자 철학의 핵심은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그 의지적 실천에 주목한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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