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2: 나의 인식론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서 오나요?)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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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2: 나의 인식론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서 오나요?)

철학은 순수하게 논리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식 양식이다. 체계적인 인식을구성하기 위해서는 논리가 필요하지만, 철학적 진리는 논리에 선행한다. 다시 말하면 철학은 다 스스로 만든 구라다!

사랑은 어디에서 오나?

인식론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지식.진리 말하기' 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리는 어디서 왔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식과 신념이 진리인지...제한된 언어로 어떻게 진리를 표현할 것인지?

결국 사람들은 철학이나 인식론이니 하는 것으로 포장을 하긴 하지만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습니다. 그것을 자신의 지식, 경험으로 포장을 하고 믿음이라는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이 나름대로 자신 스타일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삶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부에 대한 사랑 (사업), 누구는 지식.진리에 대한 사랑 (학문), 누구는 가족에 대한 사랑 (가족애), 누구는 사회에 대한 사랑 (정치) 다 다르게 표현을 합니다.

나는 지식.진리에 대한 사랑을 합니다. 그리고 나의 지식은 이렇게 물어봅니다. '당신의 사랑은 어디서 오나요?'

'사람은 측은지심이 있습니다. 측은지심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사랑을 합니다. 사랑은 어디서 왔을까요?'

배우지도 않았는데도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자비를 베풀고 우리 DNA안에 사랑과 자비가 어떻게 탑승되었을까요? 이기적인 유전자 때문일까요 아니면 영혼일까요?

유전자는 부모님께 받지만 영혼은 어디서 올까요? 영혼도 유전자에서 성장할까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기는 하지만 사랑자체를 배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스스로 배우는 것 같기도 하고,

니체는 진리에 대한 신념이나 인식이 절대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보고 "사실이야말로 존재하지않는 바로 그것이며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니체의 이러한 주장은 진리에 대한상대주의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이라는 깨달음 실천이라는 해탈

자신의 사랑은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완성하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고. 다시 깨달고 다시 실천하고 반복을 통해서 완성을 하고 더 큰 사랑으로 성장도 하고...

한번의 삶으로 깨달고 실천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윤회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유가 있어졌습니다. 이번에 못하면 다음 삶에 하고 그렇지만 숙제 같은 것이라서 항상 불편하기는 합니다.

한2년전 아주 재미있던 드라마 도깨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적이지 않은 도깨비를 왜 좋아했을까요? 꼭 판타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드라마 도깨비와 연결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느낌이라는 것으로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윤회를 하지만 우리는 과거를 기억 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필요 없어서라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기억은 기억 못하고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느낌으로 기억합니다. 제일 중요한 모든 것이 느낌으로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어디서 오나요?

사랑의 근원지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느낍니다. 이성과 감정보다 더 앞서서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느낌입니다.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우리는 느낌으로 결정을 해야 실패를 해도 후회가 적습니다. Gut Feeling.

느낌은 한번의 삶에서 쌓인 것 같지는 않고 아주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자신만의 집단지성입니다. 느낌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자신만의 도서관이고 숙성된 지혜입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신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 아주 많습니다. 넉넉합니다. 이번 생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분들, 이번 생은 공평하지 않다고 느끼시는 분들, 걱정하지 마세요...기다리면 됩니다.

대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왜 왔는지 그리고 자신의 느낌에 충실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왔고 그 경험은 우리 느낌에 담겨져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의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고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있을 때 우리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염화미소가 됩니다.

자주 염화미소를 띄울 때,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있는 것이고 깨달음과 해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고 화를 낼 때 우리는 멀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인식론
(펌 위키백과에서)

배경

인식론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epistemology)는 지식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ἐπιστήμη(에피스테메)와 낱말 또는 말하기를 뜻하는 λόγος(로고스)를 합하여 만든 말이다.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제임스 프레더릭 페리에는 존재론을 뜻하는 ontology의 조어 방식을 참조하여 epistemology를만들고 그 성격을 규정하였다.

독일에서는 요한 피흐테와 베르나르드 볼차노가 동일한 의미로 Wissenschaftslehre를 사용하였고, 이는 뒤에 에드문트 후설이 다시 채용하였다. 프랑스에서는 1908년 에밀 메이에송이 《정체성과 실제》에서 보다 좁은 의미로 "지식에 대한 이론"을 뜻하는 용어로 épistémologie 를 사용하였다. 메이에송은 이를 과학 철학과 같은 의미로 보았다.

인식론 연구의 역사

인식적인 연구는 그리스·중세에도 있었으나, 철학의 중심적인 과제가 된 것은 근세, 특히 로크부터이다. 인식의 기원에 관한 주장으로는 이성론과 경험론이 있다. 근세에 와서 이성론은 주로 유럽에서 그리고 경험론은 영국에서 발달했다.

영국에서는 중세기 이후 경험론의 전통이 있었으며 로크 이후에는 더욱더 치밀해졌다. 칸트는 이양자를 종합하려고 선험적 관념론을 주장했다. 다음으로 인식의 본질에 관해서는 '인식의 대상'이관념적이라는 관념론과 실재적이라는 실재론이 대립한다.

칸트의 비판주의는 인식이 경험적 실재론인 동시에 선험적 관념론이라 하여, 이 양자를 종합하려했으나 충분히 종합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후 철학도 복잡해짐에 따라 인식론도 복잡해졌다. 신칸트주의, 그리고 현상학에서는 인식론이 철학의 방법 그 자체가 되어 있다.

지식

지식의 세 가지 종류: 2+2=4 라는 수학 지식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수와 연산에 대한 지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철학에서는 선언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노하우) 그리고 숙지된 지식을 구분한다. 예를든 덧셈의 계산에는 수와 연산에 대한 선언적 지식과 함께 이를 계산하는 절차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며, 결과적으로 연산의 숙달에 의해 터득된 지식을 내면화하게 된다.

버트런드 러셀은 《표현에 대하여》(On denoting)와 《철학의 문제들》(Problems of Philosophy)에서 기술된 지식과 숙지된 지식을 구분하였다. 또한, 길버트 라일은 《마음의 개념》(The Concept of Mind)에서 선언적 지식(Know that)과 절차적 지식(Know how)를 구분하였다. 마이클 폴라니는 선언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을 자전거를 타면서 균형을 잡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즉, 자전거동역학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도 훈련을 거쳐 균형을 잡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다면안정적으로 자전거를 탈 수는 없다.

신념이나 믿음이나

신념은 개개인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신념의 형성에는 종교적 신앙, 타인의 견해에 대한 신뢰, 권위에 대한 인정 등이 작용한다. 철학의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인식론 역시 "우리가 무엇을믿는가?"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 때문에 어떤 것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가에는 인식의 관점이 작용한다.

인식론에서 신념의 문제에 대한 유명한 사례로는 코페르니쿠스 전환이 있다. 임마누엘 칸트는 자신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에 대하여 인식에 대한 코페르니쿠스 전환이라고 자칭한바 있다. 토머스 쿤은 우주에 대한 지식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변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인식의 관점인 패러다임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진리

철학은 순수하게 논리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식 양식이다. 체계적인 인식을구성하기 위해서는 논리가 필요하지만, 철학적 진리는 논리에 선행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서양 철학에서 진리는 일원적인 것이었다. 진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아(Αλήθεια)는 잊혀진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에서 잊혀진 이데아를 상기하는 것이 철학의 주요 임무라고 보았고 이는 이후 중세를 거쳐 서양의 철학과 신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근세 이후 합리론과 경험론, 비판론 등의 철학 관점이 등장하면서 진리에 대한 인식은 다양해 지기시작하였다. 데카르트는 합리론을 내세워 모든 지식에 대한 시험을 거쳐 남는 절대적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고 보았고, 존 로크 등의 경험론자들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절대 진리의 개념을 유보하고 경험의 축적만이 인간이 진리를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고 보았다.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 모두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진리는 이성과 경험의 양측에서 구축된다는 이론을 세웠다.

한편, 니체는 진리에 대한 신념이나 인식이 절대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보고 "사실이야말로 존재하지 않는 바로 그것이며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니체의 이러한 주장은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 존 듀이는 지식의 유용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진리와 유용성을 구분하면서도 참이라고 인정되는 것에 대한 행위만을 유의미한 것으로보았디.

과학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적 방법은 기본적으로 진리에 대해 경험론적 입장을 취한다. 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얻은 진리는 경험적이며 귀납적인 것으로, 여기에는 반증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즉, 과학의 발전에 따라 과학 지식은 그 의미와 내용이 변할 수 있다.

정당화

인식론에서 지식은 참이라고 정당화되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당화는 지식의 종류에 따라 수학적 증명, 과학적 방법에 따른 시험, 언어 논리적 논증과 같은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각각의 분야에서는 지식의 정당화를 이끌어내는 여러 방법이 존재한다.

지식이 진리를 근거로 해야 한다는 철학적 전통에 의해 지식은 정당화의 방식에 따라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대응적 진리, 전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정합적 진리, 검증 가능성과 유용성을 척도로 삼는 실용적 진리 등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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