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미술의 세계 (3/3: 정신 세계를 시각화하다)

in #kr6 years ago

정신 세계를 시각화하다


우리는 이전 문단에서 반 고흐의 예술 세계가 당대에는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고, 그의 사후에나 독일의 표현주의(Expressionism)에 영향을 주었음을 언급한 바 있다. 노르웨이 화가인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가 대표적이다. 그는 정신적 동요가 우리의 감각적 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것은 예쁘장하고 매끈한 품새를 띈 것들만을 예술로 여기는 부르주아식 자기만족에 대한 반항이었다. 뭉크는 인생의 즐거운 면만을 묘사하려는 태도는 불성실한 예술이며, 인간의 고통, 가난, 폭력 등에 정직하기를 거부하는 태도야 말로 거짓 예술 행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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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The scream), 1893, 에두아르 뭉크

이제 예술가들은 미술이 더욱 순수한 것을 추구해야 하며, 그것은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자신의 작업으로 순수한 정신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는 색채와 정신을 대응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칸딘스키는 악보의 음표와 오선을 그림의 색과 선에 대응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치환했다. 그의 캔버스에는 대상(혹은 목적)이 시각적으로 암호화되어 표현되어 있다. 칸딘스키의 예술은 추상미술(abstract art, 비구상 미술)의 기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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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VII(Composition VII), 1913, 바실리 칸딘스키

칸딘스키가 활동하던 시기엔 입체주의(Cubism)운동도 있었다. 입체주의는 대상을 다른 형태로 바꾸려는 노력이다. 이것은 카메라가 등장함에 따라 “미술이 단지 현상을 재현 하는 도구인가?” 하는 질문의 돌파구였다. 대중들은 예술가의 그림과 스냅사진을 비교하면서 예술의 의미를 물었다. 예술가들은 곧 자신의 길을 찾아야 했다. 치밀한 그림이 화가의 목적이라면, 카메라가 곧 예술이 될 뿐 아니라, 기존 예술가들보다 묘사가 더욱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입체주의 화가들은 기존 미술을 던져버렸다. 이들은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인 색과 형태를 사용했다. 당대 사람들은 이것을 ‘야수’ 또는 ‘야만’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기존 미술에 비해 표현이 과격하다하여 붙여진 조롱조의 별칭이었다.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와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대표적인 입체주의 화가였다. 그들은 평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서도 입체감을 주어 한계를 극복하는 예술을 추구했다. 두 사람은 선과 형태라는 단순 요소를 사용하여 사물의 형태를 구성하되, 그곳에 깊이감을 줄 수 있는 기법을 연구했다.

네덜란드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은 입체주의 사조의 구성을 더욱 단순화하고자 했다. 그는 직선과 원색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누가 보아도 객관적이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회화일 것이다. 몬드리안은 개별자의 '눈'이라는 주관성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순수한 형태의 예술을 추구했다. 가장 단순한 선, 그 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기는 면. 그것을 율동감있게 채우는 것이 몬드리안의 일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근대 및 초기 근대 화가들은 주관적 여정을 사조(-ism)로 발전시킨 연구자들이다. 이제 사상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거쳐 근대주의(모더니즘, Modernism)를 지나고 있었다. 예술역시 근대주의의 영향을 받아 변화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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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살바도르 달리

근대주의에는 인간의 정신이 정복 가능한 것이며, 이것을 분석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론을 세워나가려는 흐름이 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이것을 정신 분석학이라 명명했다. 프로이트는 기원에 대한 매혹, 꿈과 환상, 야만성과 유아성의 근원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의 학설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자신들의 작업 세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적합한 작업 지침서였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정신적인 것을 끄집어내어 캔버스에 옮겨보기로 했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오슈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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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아이들, 오스카 코코슈카, 1909

작가들은 현실 세계에서 서로 모순되는 사물들을 한데 배치했다. 또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관과 관점의 변화를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기원에 대한 궁금증이거나 인류의 추한 모습, 환상, 황금빛 물결이 흐르는 세계로 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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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살바도르 달리, 1946

이 시기 화가들은 ‘미술이 자연을 재현해야 한다’는 불문율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였다. 돌이켜보면, 자연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름답다 정의하는 것은 미술 본연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통'이란 이름 아래 화가들이 습관적으로 생각했던 고정관념일 뿐이다.

다시 말해, ‘보이기에 아름다운 것을 생산하는 것’은 미술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모던/포스트 모던 예술에 던지는 각종 아름다움에 대한 의구심이란 일부는 결국 잘못된 학습과 믿음에 기반한다. 보기에 좋아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오늘날 예술가들이 생각하는 본질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티에리 드 뒤브(Thierry de Duve, 1944-)가 요약했듯 현대 미학의 문제는 "무엇이 아름다운가"가 아니라, "예술(과 문학)로 일컬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 존재하는 괴이하고 악랄한 예술 작업은 대부분 이러한 기준 아래 던지는 질문이다. 서론에 이야기 한 ‘예술에 관한 클리셰적 질문’은 결국 예술계와 일반 대중이 서로 다른 관점으로 예술을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모더니즘 예술이란 추함, 가난, 동정, 분노 등 인간의 어두운 감정도 다루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은 더 이상 미술이라는 단어가 제한하는 회화 중심 활동에 국한된 활동이 아니고, 보기에 편안한 것을 주제로 다루는 예술은 더더욱 아니다.

필자는 본 글에서 '미술'과 '예술'을 혼용해서 사용했다. 오늘날 미술계는 미술과 예술의 단어 사용에 굳이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미술이란 본디 아름다운(美) 것을 다뤄야 하지 않는가?”라고 묻는 사람들의 단어-의미적 접근과 종종 혼선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미술과 예술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했다.

이제 근대에서 포스트모던을 이야기 할 때가 됐다. 지루한 미술사 여정에 끝이 보인다.

시계를 그림처럼 바라보기 위해서, 시즌2를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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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데요 친절한 설명까지 그림도 잘 봤습니다. 팔로우 하면 계속 포스팅 볼수있겠네요 ^^

감사합니다 :) @welovequiz님! 힘이 나는 말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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