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미술의 세계 (2/3: 자립하는 건축)
자립하는 건축
미술계가 반체제로서 현대미술의 기틀을 다지고 있을 때, 건축 역시 나름의 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19세기 말, 건축계는 산업혁명에 따른 대량생산과 복제가 주된 흐름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수공예 기술은 천시받다 못해 사라졌다. 영국의 건축가들은 이같은 사실에 불만을 품었다. 이들은 값싸고 천한 복제 제품이 주는 유사 심미감에 지쳐 있었다.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과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는 돌파구를 찾아 다양한 실험을 했다. 대량 생산이 절대로 하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기능성과 본질을 수공예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들은 마침내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어떤 기법을 개발하게 되고, ‘새로운 미술’이라는 뜻의 아르누보(Art-noveau)라는 이름을 붙인다.
공작새 방(The peacock room), 제임스 맥닐 위슬러(James McNeil Whistler(1876-1877))
두 사람은 쇠를 구부리거나 일부러 장식적인 문양을 덧붙이는 방식을 사용하여 기존의 획일적이고 구획적인 건축 디자인에 저항했다. 아르누보는 전통적 기법과 장식 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대량생산과 복제 건축에 대항했다.
아르누보 양식 포켓 워치, 파텍 필립, 18K 금 바탕에 에나멜과 다이아몬드로 치장
아르누보는 건축뿐 아니라 19세기 예술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상단의 포켓워치의 경우, 오늘날까지 여러 브랜드가 응용, 참고하는 애정 하는 예술 기법이다. 스켈레톤 타입의 시계는 아르누보 양식의 식물과 꽃의 굴곡을 모티브로 무브먼트의 뼈대를 세운다. 이것은 100년도 넘은 방식이지만 여전히 제 골자를 유지하며 업데이트 중이다.
파텍필립의 스켈레톤 시계, 칼라트라바 5180/1R, 파텍 필립
다소 완곡한 표현이긴 하지만, 19세기 말 주류 건축 운동은 예술에서 영향을 받은 아르누보 중심의 운동이었다고 요약 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건축 운동은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 시대 젊은 건축가들은 건축이 예술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고방식을 거부했다. 건축가들은 건물의 장식적 요소를 모조리 제거하고, 사용 목적에 비추어 새로운 규칙을 세워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예나 지금이나 참신한 실험은 전통 세력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라기 마련이다. 20세기 건축의 주된 실험 무대는 미국이었다. 미국의 건물, 그러니까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직접 본 분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텐데, 그것들은 제법 무뚝뚝하고 획일적이다. 뉴욕의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거대하고, 성냥갑처럼 생겼다. 실용주의 이론에 기반하여 지어진 건물이라 그렇다.
실용주의 건축가들은 '건물'의 기능을 정의하고,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장식을 모두 떼어버렸다. 헨리 호프마이스터(Henry Hofmeister, 1891-1962)와 앤드류 라인하르트(Andrew Reinhard)가 지은 록펠러 센터를 포함하여 뉴욕의 건축물 다수는 실용주의 기조 아래 완성됐다.
록펠러 센터, 헨리 호프 마이스터/ 앤드류 라인하르트
뉴욕 뿐아니라 독일에서도 장식 위주의 건축 예술을 탈피하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독일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는 산업혁명으로 소외받은 예술과 기계 기술을 한데 모아 발전시키고자 했다. 그는 독일 동부 데시우에 실험적인 건축물을 세우고, 기능 중심의 이론을 설파했다. 이 건물의 이름은 바우하우스(Bauhaus)다.
바우하우스는 교육기관으로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실습하는 것을 장려하면서도 물건의 설계 목적을 잊지 않도록 커리큘럼을 구성했다. 이곳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철제 파이프 의자나 실용적인 합체 그릇이 처음 등장했다.
"B3" 바실리 의자(Wassily Chair), 1925, 바우하우스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소유(Collection Vitra Design Museum)
바우하우스는 기능주의(Functionalism)를 고도화했다. 기능주의란 '목적에 맞게 설계된 형상이야 말로 가장 형태가 아름다운 것이'라는 신념이다. 이것은 19세기 말 주류 관념이었던 장식적이고, 불필요한 덩어리를 떼어내는 이론적 기반이 됐다.
TC 100, 적층구조 식기, 1959, 한스 닉 롸이히트(Hans Nick Roericht), 사진가 울프강 아들러(Wolfgang Adler)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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