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밑에서』 — 나의 기억보다 생생한 사춘기

in #buk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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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돌아보게 된다. 또래 여학생과의 거리만 가까워 져도 심장 박동은 빨라지고 정신은 혼미해 졌던 기억들, 속옷 가게를 지날 때면 누가 볼까하는 두려움 속에도 몰래 빠른 시선으로 훔쳐보며 얼굴이 화끈거리고, 느껴서는 안될 것만 같은 그런 감정에 부끄러워 했던 기억들이 생각난다.

이 책에는 누구나 경험했던 사춘기 시절이 기억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다.

가정이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사춘기 광기가 들킬지 모르는 불편하고 수치스러운 공간으로 느껴지고, 경직된 교육이 강요하는 정형화된 인간상에 본능적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사춘기 소년의 갈등이 헤르만 헤세의 마법과도 같은 서사로 펼쳐진다.

선생의 의무와 국가가 선생에게 맡긴 책무는 어린 소년들의 내면에 있는 난폭한 힘과 자연적인 욕망을 제어하고 그 대신 국가가 인정하는 균형 잡힌 인상을 조용히 심어주는 것이다.

교육의 한계는 한 인간이 경험하는 것들을 부끄러움없이 온전히 감당하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기로 한 집단의 가치만을 세뇌한다는 데에 있다.

학교도 타고난 그대로의 인간을 무너뜨려 굴복시키고 힘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의 사명은 정부가 승인한 원칙에 따라서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사회의 유능한 일원으로 변화시켜 잠재된 개성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결국에는 빈틈없는 군대식 훈련을 통해 훌륭하게 완성된다.

사춘기 시절만큼 양심의 가책을 온 몸으로 느끼는 시기도 없었던 것 같다. 공부에 대한 회의, 알을 깨고 나와서 겪는 어리둥절함과 결정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초라한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결정권을 주지 않는 환경에 대한 분노, 이러한 모든 사출기 시절의 경험, 갈등, 심적 고통을 헤르만 헤세는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얘기한다.

선두에서 높이 치켜든 들것에 실려가는 것은 조그만 양복점 주인의 아들이 아니라 친구 하일러이며, 성적이나 시험이나 월계관이 아니라 양심의 깨끗함과 더러움만을 평가하는 다른 세계로 한스의 배신에 대한 고통과 노여움을 싣고 가는 것 같았다.

환경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에 느끼는 좌절은 커지고, 주변의 관심은 경멸을 내포하는 형식적 걱정으로 바뀌며 환경은 사춘기 소년에 적대적인 공간만을 의미하게 된다.

한 소년이 온전히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의 일부인 알을 스스로 깨고 나올 수 밖에 없다.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 줄 수 없다.

간신히 난파를 모면한 그의 조각배는 이제 새로운 폭풍우와 심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암초 근처에 휘말려 들어간 것이었다. 여기에는 안내자도 없고, 최고의 가르침을 받은 젊은이들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활로를 찾아야만 했다.

한 인간이 탄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잊었던 자신의 과거이며, 헤세의 수줍은 사춘기 회고록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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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싯타르타도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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