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1]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중에서
한달에 한두권의 책은 읽자
제가 저 자신과 한 약속이었는데요
책에 대해 까탈스러운 제가
제목만으로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책이랍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을 공유합니다
바로 이 문장이었습니다
”천년을 함께 있어도 한 번은 이별해야 한다 ”
모든 만남에는 반드시 이별이 있습니다.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합니다. 만남 속에는 이별의 날카로운 얼굴이 숨어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별의 얼굴은 더 날카로워져 이별의 순간만을 엿봅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이별의 얼굴이 지닌 눈빛은 날카롭습니다.
만남과 이별은 둘이지만 하나의 몸과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과 사가 둘로 나누어지는 게 아닌 것처럼 만남과 이별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만남을 너무 기뻐한 나머지 이별을 깜빡 잊고 살 뿐입니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가 때가 되면 느닷없이 나타나는 게 이별의 본성인 줄 우리가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정작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두렵고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립니다.
만해 한용운 시인도 “님의 침묵”에서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노래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도 “이별노래”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는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이별이라고 하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습니다. 서로 열심히 사랑하다가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어떤 연유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선언하는 이별입니다. 젊은 남녀의 경우는 “이제 우리 그만 만나. 이쯤에서 헤어져”라고 말할 수 있고, 결혼한 이들의 경우는 “우리 이제 그만 살아. 이혼해”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별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별 그 자체가 또 다른 만남을 잉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별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별하고자 하는 이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이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통한 이별은 다릅니다. 그것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이별도 아니고 의지가 반영된 이별도 아닙니다. 결코 원하지 않지만 기어이 찾아오고야 마는 무섭고 두려운 이별의 형태입니다.
죽음을 통해 이별하고 나면 또 다른 만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설혹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의미는 사뭇 다릅니다. 죽음에는 영원한 이별만 있을 뿐입니다. 이별의 완성이라고 할까요. 죽음만큼 완전한 이별은 없습니다.
저도 문득 죽음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저의 죽음을 생각할 때가 있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죽음이 곧 이별을 의미한다 싶어 두렵습니다.
죽음을 통한 이별은 만나고 싶을 때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게 합니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찾아갈 수 없는 게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이 아픈 것은 결국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아픈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나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보지 못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나면 내가 그를 보고 싶을 때 그를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통한 이별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저리고 아득해집니다.
저는 복되게도 여든 중반을 넘기신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십니다. 어머니는 직접 살림을 하실 정도로 건강하시지만 연로한 분이라 언제 돌아가실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이미 노인성 질환에 의해 한쪽 눈을 실명하셨고, 청력도 떨어져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지팡이가 없으면 비틀비틀 걸음조차 불안합니다. ‘아, 하루하루가 이별의 나날이야!’ 부모님을 뵐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아예 부모님 집으로 작업실을 옮겨 매일 부모님 집으로 마치 회사원처럼 출퇴근을 합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의 집이 저의 일터인 셈입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까닭은 이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슬픔 이별의 힘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도 어머니 아버지와 이별할 생각을 하면 슬픕니다. 그때마다 저는 ‘천년을 함께 있어도 한 번은 이별해야 한다’는 중국의 중운지휘 선사가 이별의 슬픔에 우는 제자 언초에게 읊은 게송인 이 말씀을 늘 생각합니다. ‘천년을 함께 살 수 없지만, 설령 함께 산다고 해도 결국 한 번은 이별해야 한다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 이별을 견뎌낼 수 있는 강한 힘이 생깁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은 늘 죽음을 통한 이별의 연속입니다. 뜻하지 않게 어린 자녀를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낸 젊은 부모들이 어디 한둘입니까. 성수대교 붕괴사건이나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만 하더라도 사랑하는 이들과 하루아침에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 희생자 가족들에게 결코 위로의 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천년을 함께 살아도 언젠가 한번은 이별해야 한다’는 점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씀을 드리곤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별은 우리들 삶의 일상이자 본질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는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중요합니다. 사랑은 오늘 하는 것이지 내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제 이별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지니고 하루하루를 살고자 합니다.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늘 하루의 만남에서 영원을 찾고자 합니다.
천년을 함께 있어도 한 번은 이별해야 하니까요.
출처 :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정호승 저)
책 리뷰 너무 좋네요 ^^ 저도 책 좀 더 많이 읽겠다 했는데, 최근 1-2주는 마음을 좀 쉬이고 있어요~ 다시 마음 다잡고 가을을 독서로 채워가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그러고보니 이제 가을이네요^^
책 좋은데요!!^^ 죽음에 대한 이별을 커가면서 점점 느끼는거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이상 보지 못하고 잘해줄 수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때면 먹먹해 지더라구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해요~^^ mukstar님 포스팅이 진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