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후에 반역을 할것이기 때문에 처벌받은 주아부와 입법불비된 암호화폐 ICO를 억지논리로 처벌하는 정부

in #kr7 years ago

개한민국.jpg죽은 후에 반역을 할것이기 때문에 처벌받은 주아부와 입법불비된 암호화폐 ICO를 억지논리로 처벌하는 정부

주아부(周亞夫, ? ~ 기원전 143년)는 중국 전한의 관료다. 승상을 역임했으며, 작위는 조후(條侯)다.
전한의 개국공신 주발의 아들로, 작위 없이 하내수를 지내고 있다가 습작한 형 주승지가 죄를 지어 봉국을 빼앗기자 문제에게서 조후에 봉해져 아버지의 작위를 이었다.
문제 후6년 겨울(기원전 158), 흉노가 상군·운중군을 침입했다. 문제가 군을 편성해 흉노를 막으면서 종정 유례(劉禮 - 후의 초문왕), 축자후 서여(徐厲)와 함께 장군이 돼 각각 패상, 극문, 세류에 진을 쳤다. 문제가 군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각 군영에 곧장 수레를 달려 들어가자 패상과 극문에서는 영접했으나, 세류에서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선발대의 진입을 저지했다. 천자가 곧 도착한다고 선발대가 말했으나 통하지 않았고, 황제가 부절을 사자에게 줘 조명을 전하게 한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에도 군중에서는 말을 타고 달리지 못하는 군법을 황제 일행에게 지키게 했으며, 절하지 않고 군례에 따라 인사했다. 문제는 매우 감동했고, 나와서는 놀라워하는 신하들에게 함부로 범할 수 없는 군영이라며 주아부의 군영을 칭찬했다. 한 달 후 세 군영을 파하고 주아부는 중위가 됐다. 문제가 죽을 때가 되자, 태자 경제에게 위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주아부를 장수로 삼도록 가르쳤다. 문제가 죽자, 주아부는 거기장군이 됐다.[1]
경제는 즉위한 후 어사대부 조조의 계책을 받아들여 제후왕의 영토를 삭감하는 과감한 중앙집권적 정책을 폈고, 이는 여러 제후왕의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경제 3년(기원전 154), 가장 강력하고 또 태자의 죽음으로 인해 전부터 경제에 불만을 품어온 오왕 유비의 봉토를 삭감하자 유비가 반발해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났다.
중위를 지낸 주아부는 태위가 돼 오나라와 초나라를 치러 나갔다. 주아부는 오나라와 초나라의 날쌘 병사들과 교전하는 것을 피하고, 속전속결의 태세를 취하는 오나라와 초나라의 군을 양나라에게 맡겨두는 한편 양도를 끊는 전략을 세웠다. 패상에 이르자 조섭(趙涉)이라는 사람이 주아부를 가로막고 자신의 말을 들어보라고 하자 수레에서 내려와 예를 갖춰 물어봤고, 그 말에 따라 효산(殽山)과 민지(黽池) 사이에 오왕이 숨겨놨을지 모르는 간자를 피해 무관을 통해 낙양으로 갔다. 도착해서 효산과 민지 사이를 뒤져보니 과연 복병이 있었다. 이에 조정에 청해 조섭을 호군으로 삼았다.
형양에서 병사를 모았을 때 오나라는 양나라를 공격했고, 양나라는 거듭 패해 사세가 궁해져 나중에는 황제의 조서까지 받아 주아부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주아부는 극벽에서 수비를 견고히 할 뿐 결코 양나라를 직접 구원하지는 않고, 궁고후(弓高侯) 한퇴당 등에게 경기병을 맡겨 오나라와 초나라의 양도를 끊게 했다. 오나라와 초나라는 결국 양나라의 마지막 반격에 패퇴했고, 주아부를 공격하려 하읍에 주둔하였다. 그곳에서 오나라와 초나라의 도전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고, 군중에 소란이 일어나 서로 죽이는 일이 있었음에도 가만히 있음으로 상황을 진정시켰다. 오나라와 초나라 군은 양식이 떨어져 양동작전을 벌였으나 주아부는 이를 간파해 마지막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오나라와 초나라 군이 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달아나자 주아부는 정예병을 내 추격해 대파했다. 오왕 유비는 군대를 버리고 강수를 건너 단도로 달아났고, 초왕 유무는 자살했다. 주아부는 추격해 오나라와 초나라의 현들을 항복시키고 오왕에게 현상금을 거니, 오왕을 비호하던 동월에서 오왕의 머리를 베어 바쳤다. 결국 서로 싸운 지 석 달 만에 반란군 중 가장 강력한 나라로 꼽힌 오나라와 초나라를 평정했다. 한편 제·조 방면의 반란군은 난포와 역기 등이 제압해 오초칠국의 난은 반군의 패망으로 끝났다. 제장들은 이에 주아부의 계책이 옳은 것이었다고 여겼으나, 양효왕과 주아부 사이에는 틈이 생겼다.
오초칠국의 난을 평정하고서 태위직을 계속 지냈고, 5년 뒤 승상에 취임해 경제에게 중용됐다. 그러나 경제가 율태자를 폐하려고 하는 데 반대해, 얼마 못 가 틈이 생겼다. 또 양효왕은 입조할 때마다 태후와 함께 주아부의 단점을 늘어놓았다.
한편 태후는 효경황후의 오빠 왕신(王信)을 후로 삼고자 했고, 경제는 태후의 형제들이 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후가 되지 못했다며 반대했으나 태후는 그 때문에 자기 오빠 두건이 생전에 후가 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며 굽히지 않았다. 경제는 주아부와 의논해보겠다고 했고, 주아부는 “고황제가 약속하기를 '유씨가 아니면 왕이 되지 못하며, 공이 없으면 후가 되지 못한다. 이를 어기는 자, 천하가 그를 쳐라!'라 했습니다. 왕신은 비록 황후의 오라비이니나 공이 없는데 후작이 되는 것은 이에 어긋납니다.”라고 답했다.
나중에 흉노에서 왕 서로(徐盧) 등 5명이 투항했는데, 주아부는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했으나 경제는 이들을 모두 열후로 삼았다. 이에 주아부는 칭탈하고 사직했으며, 경제 중3년(기원전 147년)에 병으로 승상에서 면직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아부는 경제의 부름을 받아 식사를 했는데, 자르지도 않은 큰 고깃덩이만을 받았고 젓가락도 없었다. 주아부가 젓가락을 청하자 경제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정도도 그대에게는 부족한가?”
주아부가 즉시 사죄하고 물러나니, 그 모습을 보고 경제는 말했다.
“저렇게 언짢아하는 사람이라니, 어린 임금의 신하는 아니로구나!”
주아부.JPG
주아부의 아들이 상방의 공관에 갑옷과 방패 500장을 사서 장례를 준비했는데, 품꾼을 고되게 부리고 돈을 주지 않았다. 품꾼은 이것이 황제의 물건을 함부로 매매한 것임을 알고 분노해 고발했고, 주아부도 연좌돼 심문을 받았다. 주아부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자 경제는 분노해 사건을 정위에게 맡겼고, 정위가 꾸짖었다.
“군후는 모반하려고 했는가?”
주아부가 대답했다.
“신이 산 것은 부장품일 뿐인데 어찌 모반했다 합니까?”
“군이 지상에서 반역하려 한 게 아니라면, 지하에서 반역하려 한 것일 뿐이지!”
원래 주아부는 소환되었을 때 자결하려고 했으나 아내의 만류로 그만두고 정위에 넘겨진 것인데, 정위의 심문은 더욱 혹독해졌다. 결국 주아부는 닷새를 굶다 피를 토하고 죽었으며, 봉국은 폐해졌다. 가문은 형제 주견이 평곡후(平曲侯)에 봉해짐으로써 이어졌다.

주아부가 하내수이던 시절, 온(溫) 땅의 허부(許負)라는 노파가 주아부에게 말하였다.
“군께서는 3년 뒤에는 후(侯)에 봉해지실 것이고, 그러고 나서 또 3년 뒤에 장상(將相)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니 존귀해지실 것이며, 또 9년 뒤에는 굶어서 돌아가실 것입니다. ”
주아부가 웃으며 말하였다.
“신의 형이 이미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후가 되었으니 돌아가시면 마땅히 그 아들이 이어야 할 것인데, 어찌 제게 후가 되라고 하는 것입니까? 또 당신의 말대로 존귀해진다고 치자면 어찌하여 굶어죽겠습니까?”
정말로 3년 후에 주승지는 죄를 지어 작위가 박탈되었고, 문제가 주발의 아들들 중 어진 자를 물으니 모두 주아부를 추천하여 그가 대신 작위를 이었다.

허부는 그의 입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의 얼굴에 수직선 무늬가 입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그것이 굶어죽을 관상입니다.”

주아부는 5초7국의 난리를 평정하고 황제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장수의 기개를 보여주는등 공적과 절개에서 으뜸이다.
그런데 결국 부장품으로 무기를 마련했다는 이유로 죽은 뒤에 반역을 하려고 하지 않느냐는 누명을 쓰고 결국 비참하게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사실 절대왕조의 권력이란 황제 마음대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지만 법에 의하지 않고는 절대 처벌을 하면 안된다. 그냥 심증을 가지거나 오만불손한 태도가 있다고 해서 반역죄로 몰아 죽인다면 충성을 바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필자는 법에 의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정부는 예전의 히틀러 괴벨스의 나찌정권, 스탈린, 김일성 김정은등 북한 정권에서만 있는줄 알았다. 하지만 법을 넘는 버젓이 이런 처벌하는 괴이한 문화가 대한민국안에도 존재한다.
헌법 119조를 보면
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1조항을 보면 정부의 부동산 투기의혹이 있고 벤츠를 2대나 가진 박상기 법무장관처럼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를 절대 말할 수 없다.
2조항을 보면 코인 거래에 있어서 특정 은행[신한, 농협, 기업은행등]과 특정 거래소[빗썸, 업비트, 코빗, 코인원]만 독과점적으로 시장 우월한 지위를 내세우게 카르텔을 만들 수 없다.
또한 가장 가관인 것은 암호화폐를 발행해 ICO로 투자자금을 모으는 행위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9월 29일, 금융위, 기재부, 법무부, 방통위, 국세청, 금감원 등이 주축이 된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TF’를 개최하고 ‘증권발행 형식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공산주의인 중공을 따라서 한 이런 헌법 파괴적인 가치가 공공연히 장관이나 정책 당국자의 말에서 마구 토해내도 되는 것일까?
큐냅스는 국내에서 1차 Pre-ICO를 통해 724.92 이더리움을 모금했다. 이달 20일부터 4월 1일까지 2차 모금을 통해 4000이더리움을 모금하는 것이 목표다.
큐냅스 큐시티.jpg

유영근 큐냅스 대표는 법무법인의 조언을 통해 국내에서 ICO를 실시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 하에 ICO를 진행하고 있다. 유 대표는 "현재 가상화폐에 대한 정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ICO 금지하는 것은 ‘입법불비(立法不備)’ 상태"라며 "먼저 가상화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ICO 같은 행위를 하지 말라고 해야 한다. 큐냅스는 지속적으로 법률자문을 구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투명하게 업무보고와 회계보고를 하는 등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자는 유영근 대표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http://www.ekn.kr/news/article.html?no=350706
立法不備입법불비란 말이 있다. 대한민국은 성문법이기 때문에 법이 만들어져야 처벌을 할수 있다. 예를 들어 금융감독원 직원이 금융감독원이 제재가 들어간다는 정보를 미리 빼돌려서 암호화폐를 팔아 시세차익을 얻었지만 금융감독원 직원은 공무원이 아니며 또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기 때문에 처벌을 못하고 좌천을 시켰다는 기사가 있다.
이런때는 법에 없으니 준공무원을 징계를 못한다는 헛소리나 해대고 있다.
그런데 코인이 암호화폐인지 상품인지 법도 안 만들어졌는데 미리 ICO를 하거나 처벌을 하거나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는 행위를 일상다반사처럼 저지르는 정부에 대해서 300만 투자자들은 분명히 2018년 선거로 반드시 복수의 칼날을 목에 겨눌 것이다.

신해철 넥스트(N.EX.T) - 아! 개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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