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동안 스타트업에서 원격근무 개발자로 일한 후기

in #kr-life6 years ago

이 글은 지난해 5월 스타트업을 퇴사하면서 썼던 글을 옮겨 온 글입니다.
내용이 주저리 주저리 꽤 깁니다. 결론만 보고 싶으시면 그냥 제일 아래로 스크롤 하시면 됩니다.


이 회사와 인연을 맺었던 것은 2016년 2월이었습니다.
본인들이 만들고 있는 서비스가 있는데 모바일에서 크로스 브라우징을 하지 못해서 그걸 좀 잡아 달라고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것을 인연으로 2개월 정도 일을 했었고 2016년 5월에 제주에 일 때문에 온 김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입사 제의를 했었고 전 제 조건을 이야기했었습니다.
여러 조건 중 가장 큰 조건은 원격근무였고 두 번째는 연봉이었습니다.
원격근무는 지원해줄 수 있는데 연봉은 지금은 컨디션이 안돼서 어렵다고 하더군요.
본인들의 컨디션이 될 때 다시 제안을 하겠다고 하고 이야기는 마무리는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6월에 제가 제시한 조건을 들어줄 수 있는 컨디션이 되었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와서 같이 이야기를 해보자고요.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프리랜서를 할까 어떻게 할까 많이 고민을 하던 시기였기에 분당까지 가서 이야기를 듣고 입사 조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팁스라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되어서 2년 동안은 안정된 연봉을 줄 수 있다.
다만 팁스에서 인건비 제한은 월 300으로 두어서 제 월급으로 300을 주고 오버되는 금액에 대해서는 아내 통장으로 넣든지 하는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들을 하더군요.
제가 원하는 장비, 일하는데 있어서 자유로움의 보장 등등....
심지어 다른 일을 해도 자기는 상관없다고까지 했습니다.
암튼 그런 이야기들을 마치고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제주로 돌아와서 결정을 하고 회사에 퇴사를 알리고 2016년 7월에 퇴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7월 중순 연봉 계약서를 쓰기 위해 회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6월에 했던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더군요.

  • 저와 이야기한 연봉에 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그건 스타트업에서 줄수 없는 연봉이다.
  • 회사 일을 하는데 다른 일은 안된다. 그런 알바를 해줄 때 이야기지 입사인데 그런말을 내가 했을리가 없다.
  • 당장 돈이 없어서 장비는 못 준다.

당황했죠...ㅎㅎㅎ
팁스에서 주는 돈 이외의 나머지를 지급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직접 이야기했던 대표인데.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 입사 전 계약서 쓰는데 그런 적이 없다니........
하지만 이미 퇴사는 했고 수익이 생기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광고 아이템은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표보다는 아이템을 믿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입사하고 한 달쯤 후에 영업하던 분이 나가고.
막상 상용화가 되고 나니 생각하지 못한 오류들이 많이 생겨서 국내 영업은 중단되고.
영업담당은 제대로 구해지지 않고.
안되겠다 싶어서 코드까지 기존 방식과 아예 다른 방식으로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후에 새로 구해진 영업은 오프라인 영업만 해본 분이라 온라인이나 기술은 모르는 사람이 왔고요.
대표의 추가 투자유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국내 영업이 이루어져서 여러 사이트에 들어가긴 했지만 트래픽이 작은 뉴스 매체사 혹은 블로그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익은 적었고 해외 영업도 아무 성과도 없었습니다.
사실 수익이 얼마나 났는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회사는 수익을 내지 못했고 투자도 유치하지 못했고...
그런데 대표는 항상 코드가 불안해서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투자유치를 못 받아 오고 영업에 문제가 되어서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초기에 팁스 투자를 받았을 당시는 샘플만 존재했고 그걸 가지고도 투자를 받았었는데.
상용화도 되었고 코드도 아예 새로 만들어서 큰 이슈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런 말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스크립트 에러가 많이 나서 매체사들이 빠져나간다는데 관련 자료는 어떤 것도 주지 못합니다.
다른 개발자 두 명도 새로 만들어진 스크립트는 큰 문제없다고 하고요.
그러면서 본사 팀들은 정말 고생하고 힘든데 저는 원격근무하고 있으니까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연봉, 장비는 둘째 치고 점심, 저녁을 사주는 것도 아니었고 휴무날에도 저는 쉰 적이 거의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잘 하던 모바일 게임도 할 시간이 없었고 이 블로그에 포스팅을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아내는 그 회사에서 일해야겠냐고, 차라리 시내로 출근을 다시 하라고 말하고 이 문제로 작은 부부싸움까지 해야 하는 저에게 혜택이라고 느낄 만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1월에 다녀온 워크숍에서 대표는 회사의 비전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정확한 계획이나 비전 제시는 없이 회사에 대한 무조건 적인 충성, 희생을 하면 회사는 성공할 것이고 그럼 그에 상응하는 것을 주겠다는 말만 하더군요.
투자 현황, 논의되는 사항들, 계획, 현재 매출 현황 등등...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회사에 집중하지 않고 있고 그러면 우리는 잘 될 수 없다.
넌 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이고 너의 역할이 크니까 회사에만 집중해 달라.
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저에게 준 돈을 다른 프리랜서에서 주면 지금보다 결과는 더 잘 나오지 않았겠냐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전 관두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연봉도 문제고 그런 말 들어가면서 내가 일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고.
대표는 생각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이후에 해외에 몇 번 나가면서 이후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고 전 계속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연휴 전에 중국 출장을 다녀온 대표가 회의 자리에서 영업담당에게 불만 이야기하라고 저와 대놓고 싸움 붙이려고 하더군요.
그런데 영업 담당자는 저에게 뭐 그리 큰 이야기를 하지는 못하더군요.
말을 못한 건지 말할 것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대표는 저 때문에 회사가 망해간다고 하더군요.
제가 느리게 작업하고 바로바로 뭘 해주지 않아서 회사가 망해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늘어나면 작업이 빨라지냐고 묻더군요. 사람 뽑아주면 얼마 만에 오류 없는 걸 만들어 낼 수 있냐고 합니다.

이 회사의 아이템은 광고 시스템입니다.
웹페이지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분석해서 코드에 광고를 삽입합니다.
그리고 스크롤 해서 지정된 가이드라인을 지나면 원본을 보여주는 형식입니다.
구글 광고처럼 아이프레임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원본 콘텐츠의 코드를 직접 바꾸는 형식이기 때문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웹페이지는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이슈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css의 영향 자바스크립트의 충돌, 로드 순서에 따른 문제 등등... 개발자분들이라면 잘 아실 겁니다.
영업해오는 사이트들은 최적화나 표준 같은 것은 전혀 준수되지 않은 광고로 발려진 사이트들이 대부분이구요.
제가 아는 한 이런 시스템에서 저런 사이트들에 들어가는데 오류가 없는 걸 만든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걸 처음 일할 때문에 말하고 오류들을 해결해 가면서도 꾸준히 이야기했는데 그런 이해가 전혀 없었던 겁니다.

대표의 말은 제가 제주에서 놀면서 일해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회사는 망해가고 있고 뭐 그런 이야기인 거죠.
당장 관두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슈 리스트는 해결하고 관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제가 만든 작업물이고 마무리는 잘 하고 관두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에 카톡이 하나 왔습니다.
본인이 최근에 바꾼 G6의 페이스북 브라우저에서 광고의 라인이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확인해보니 광고 폰트가 굵게 들어가는데 그러면서 라인이 약간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월요일 회의에서 대표는 본사로 출장 와서 영업하는 사람과 함께 페이지를 확인하며 수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그동안신경 못 썼는데 폰 바꾸고 페북 브라우저도 보니 문제가 있으니
본사로 출장 와서 영업담당과 함께 테스트 센터에 가서 영업은 모든 앱별 브라우저를 확인하고
저는 옆에서 바로바로 수정을 하라는 겁니다.

테스트를 해서 문제가 있는 것들을 리스트 업하고 그걸 제가 수정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이 들었고.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르는데 출장을 가서 바로 옆에서 바로바로 수정하는 건 불가능하고.
해당 문제가 G6에서 생기는 건지 모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생기는 건지 정확하지도 않고.
새로운 스크립트를 적용한지 3개월이 지났는데 이제와서 봤으니 올라와서 당장 수정하라니.
이 상황에서 당장 내일 출장을 오라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비상사태고 이건 빨리 해결을 해야 하니까 무조건 올라와라.
너한테 수정하라고 하고 그걸 기다리는 동안 회사는 망한다.
너볼일 다 보고 일하는데 이걸 언제 끝낼지 어떻게 아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대표에게 물어봤습니다.
지금 그걸 수정하는 게 중요해서 오라는 거냐 아니면 날 못 믿어서 올라와서 대표님 보는 눈앞에서 일하라고 하는 거냐.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대표가 출장오라는데 그렇게 말이 많냐고 하더군요.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할 말도 있으니 당장 출장오라는 겁니다.

빨리 해결을 하려면 무작정 작업하는 것보다는 일단 테스트를 해서 어느 범위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파악하고 이후에 출장을 가든 말든 하는 게 맞는 거지 일단 무조건 올라와서 눈앞에서 해결하라고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맞섣습니다.
할말이 있으면 통화하면 되고 화상회의 하면 되지 할말 있으니 당장 올라오라는게 말이 되냐고 맞섣습니다.
결국에는 아무도 말로 널 이기지 못하니깐 너가 결정하고 전화 하라고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더군요.
전에 개발자에게 이번 출장에서 대표가 아무 성과를 못 가져오면 관두겠다고 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연휴 전에 개발자가 정말 관둘 생각이냐고 물었었는데 그럴 꺼라고 했더니 대표님이 주석 꼼꼼하게 표시해 달라고 한다고 말했었거든요.
관두기 전에 어떻게든 더 부려먹자라는게 노골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퇴사전에 뭐라도 더 시키겠다는게 노골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잘 마무리 해서 실업급여라도 받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년은 채우고 퇴직금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 부질 없는 생각이더라구요.
아내는 괜찮다고 더 이상 그렇게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더군요.
고마웠습니다.
결국에는 퇴사하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의외로 한숨 한번 쉬고 알았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2017년 5월에 10개월 간의 스타트업 원격근무 개발자 생활은 끝났습니다.
10개월간 느낀걸 요약하자면

  1. 이제 막 시드머니를 받은 스타트업은 신중하세요.
  2. 우리가 지금은 어렵지만 나중에 성공하면 보상할께요. 이딴말 믿지 마세요.
  3. 스타트업의 구두계약은 믿지마세요.
  4.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말이 달라진다면 무조건 당장 관두세요.
  5. 내가 원하는걸 준다고 하면 두발 물러서서 더 신중하도록 하세요.
  6. 개발자는 코드로 말하고 스타트업 대표는 투자로 말하는겁니다.

이 여섯줄을 말하고자 주저리 주저리 긴 글을 썼네요.
다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ㅎㅎㅎ

연차가 오래된 개발자들은 여러가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디지털노마드, 원격근무 이런 것들에 관심이 더 가게 됩니다.
하지만 더 신중해야 합니다.
꼭 더 신중하세요.
겪어본 사람이 하는 말은 한번 쯤은 더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10년차 넘는 개발자가 저런걸 몰랐어? 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원하는걸 준다고 하니 판단력이 흐려지더라구요.
그러니 저도 사람이겠죠.


이 후에 제 후임으로 들어온 사람은 연봉5천을 보고 입사해서 엄청 고생하고 저에게 조언 구하는 전화를 두번 한 후에 결국에는 퇴사 한다며 저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했고.
같이 일하던 개발자 중에 하나는 괜히 경리업무까지 맡았다가 퇴사 직전에 돈 잘못 입금해서 횡령으로 고소까지 당하면서 관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회사 넘버2로 일하면서 회사에 엄청 충성한 개발자는 얼마 전 제주에 왔다 갔는데 결국 관뒀다고 하더군요.

2018년이 되어서 이 글을 옮겨오면서 생각해보니 그래도 이 경험 덕분에 프리랜서로 전향도 하였고.
코딩 강사라는 새로운 일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말이 기억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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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어서 이런 글 반갑네요 :). 뭐 대우 해줄 때는 스타트업이라 안된다고 하면서 일할 때는 대기업에선 이렇게 한다며 비교할 때가 많죠.... ㅎ...! 그래도 마지막 문장 쓸모 없는 경험이 없다는 말이 저도 와닿네요 :) 팔로 하고 갑니다!

현 스타트업 종사자로서 불편하실 수도 있는 글인데 공감해주시니 고맙습니다 :)

저도 개발자의 길을 가고있는데 좋은 경험글 읽고 갑니다~

좋은 글이었다니 다행이군요 ^^;

스타트업이 말이 많긴 하지만... 무섭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잠시 눈이 멀어 그랬던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ㅎㅎ

옷.. 강사님이... 많은 가르침 바라겠습니다. 퇴직하면 입장 바꾸는건... 뭐 일상다반사군요. ㅎㅎㅎ

아직 완전 초보강사입니다 ^^;;

정말 다이나믹하군요..ㅡㅜ 이건 스타트업이 아니라 요새 흔히말하는 그냥 중소..기업아닌가요 ㅋㅋ

많이 다이나믹했었죠 ㅠㅜ

오 대단하시네요~ 파이팅하시고 뉴비라 보팅하고 팔로남겨요~ㅎ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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