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상식)-화투의 유래가 이러한 데도 고스톱을 치시렵니까?

in #kr6 years ago

우리나라의 모임장소에서 세 사람 이상 둘러앉아 있으면, 보지 않아도 십중팔구 고스톱 판이다. 초상집이든, 교외 음식점이든, 명절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두들기고 패댄다.

일본으로부터 화투가 유입되었는데, 실제 화투(花鬪)를 만든 일본인들은 5%미만이 이것을 즐기며, 나머지 사람들은 마작(麻雀. 중국에서 전례 된 오락)과 파친코(빠칭코 バチンコ)를 즐긴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가히 ‘고스톱 공화국’이라도 지칭해도 과한 표현이 아닐뿐더러, 한때 정치현장에서까지 그런 풍조가 번져 ‘고스톱 망국론’까지 화두로 올랐던 적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예 놀이를 갈 때면 화투와 군용담요를 필수품으로 챙긴다. 아닌 게 아니라 상대방의 부아를 야금야금 돋아가며, 앞자리에 앉아 팍팍 끊고, 질러가노라면 카타르시스마저 느낀다.

그런 열기임에도 고스톱의 5광에 고도리, 3단까지 하는 대가라도 정작 48장의 화투의 실체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을 만큼 드물다.

물론 화투로써 할 수 있는 놀이는 ‘고스톱’뿐만 아니라, 육백, 민화투, 나이롱뽕, 짓고땡, 섯다, 등이 있으며, 그 방면의 놀이에 뛰고 나는 고수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12개월 각각 4매로 총 48장으로 이루어진 화투가 일본 문화의 축소판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 담겨진 일본문화의 비밀코드를 모르는 채, 그들이 전해준 고스톱에 탐닉하여 식음 전폐까지 하고 있으니,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런 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화투 속에는 36년간 이 땅의 모든 인권을 유린하며, 민족문화의 뿌리마저 말살하려했던, 그 일본의 고유 세시풍속, 월중축제와 갖가지 행사, 풍속, 선호도, 기원의식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교훈까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일찍 공주대 김덕수 교수는, 화투문화를 비판한 글을 썼는데, 이를 읽은 적이 있어, 그 바탕을 옮기면서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자 했다.

우선 화투의 만들어진 경로부터 더듬어보자. 일본에 화투가 처음 들어온 경로는 16세기쯤이라 알려져 있다. 당시 포르투갈인 선교사가 기독교를 전하면서 총, 카스텔라(포 castella)와 함께 ‘가르타(포 carta)’, 즉 카드게임이라는 것을 들여왔다고 전하고 있으나, 실제 기록에 따르면 1573년에, 이미 일본에서 가르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서민의 카드놀이를 금지해버린다. 그러나 이미 카드놀이 재미에 빠진 백성들은 카드놀이를 금지하는 대신 막부 몰래 풀과 꽃으로 디자인한 오늘날의 화투의 원조인 ‘하나후다(花札: はなふだ)’를 만들어 놀이를 즐겼다. 물론 지방마다 디자인이 가지각색이던 것이 ‘하치하치하나[八八花]’라는 이름의 화투로 통일되기는 메이지(明治) 시대라 전한다.

700년간의 무신정치를 청산한 메이지정권은, 화투금지를 풀어주는 대신 화투공장에 세금폭탄을 퍼부어 공장들이 하나, 둘 문을 닫게 만들었고, 그 겨를에 화투놀이가 점차 수그러들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세기말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항으로 오가는 뱃사람들로부터 유입되면서 화투라 불러졌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수투(數鬪)’라 해서 숫자가 적힌 패를 뽑아 우열을 겨루는 놀이가 성행하고 있었는데, 화투의 유입으로 이 전통놀이가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화투의 1월 그림이다. 구성은 20점짜리 광(光), 5점짜리 홍단, 그리고 2장의 피로 되어있다. 광의 그림을 보면 1/4쪽 짜리 태양, 한 마리의 학(鶴)과 소나무, 그리고 5점짜리는 소나무와 홍단 띠가 그려져 있다.

여기서 태양은 신년 새해의 일출을 나타내며, 학은 장수(長壽)와 가족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드러내는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적 코드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1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소나무를 현관 옆에다 장식해 두고, 조상신과 복을 맞아들이기 위한 일련의 행사를 하는데, 이를 ‘가도마쯔(門松; かどまつ) 행사’라 칭한다. 이것은 1월에 맞이하는 일본의 대표적 세시풍속이다. 1월의 화투에 소나무가 등장하는 이유는 가도마쯔행사에 소나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을 의미하는 츠루(鶴; つる)가 소나무를 뜻하는 마쯔(松; まつ)의 말운(末韻)을 이어받는 것도 일본식 풍류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열두 달 중에서 8·11월 달을 의미하는 화투 팔(八)과 오동을 제외한 나머지 열 달의 5점짜리 화투에 등장하는 청?홍색 띠는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일명 ‘단책(丹冊)’이라는 종이를 상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하이쿠(俳句; はいく)라는 일본의 전통 시구(詩句)가 있는데, 이것을 적을 때, 대략 가로(6cm)×세로(36cm) 정도의 크기인, 그 종이를 사용하는데, 이것을 ‘단책’이라고 한다. 이것 또한 일본인들이 시를 짓는 풍류의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내는 적색과 청색의 상징은 우리와는 그 상징성이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붉은 색은 사망이니, 화재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였지만, 일본인들은 붉은색을 경사스러움과 성스러움을 나타낸다. 일본에서는 1, 2, 3월을 성스러운 달이라는 의미로 1, 2, 3월을 홍단으로 표시한 것이다.

그러면 6, 9, 10월의 화투 5점짜리는 왜 푸른색인 청단인가. 일본에서는 청색을 우울하거나 불행한 상징으로 사용하는 색상인데, 실제 6, 9, 10월 일본에서는 태풍이나, 집중호우로 인한 많은 수재민들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평균적으로도 1년 중 사건사고가 비교적 많이 발생한다 해서, 그렇게 그려진 것이라 전해진다.

2월의 화투의 그림이다. 그림은 꾀꼬리의 일종인 휘파람새(鶯 : 우구이스)와 매화다. 2월에 일본의 매화 축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동경도 오매시(靑梅市)의 매화 공원을 비롯한 전국의 매화 공원에서 2월이면 매화 축제는 동시에 개최된다. 또한 일본인들은 매실절임인 ‘우매보시(梅干)을 즐겨 먹을 만큼 매화를 중히 여긴다.

휘파람새는‘우구이스다니’라는 도쿄의 지명(地名)에도 남아 있을 만큼 일본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새다. 그런데 조류학자들에 따르면 철새인 휘파람새가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시점은 대체로 4월 이후라는데, 2월 화투에 등장한 것은 어인 일일까.

휘파람새와 매화가 봄의 전령사임을 노래하는 대표적 시어(詩語)인 동시에 휘파람새의 일본어 표기인 우구이스(うぐいす)와 매화를 뜻하는 우메(うめ)간에 두운(頭韻)을 일치시키려는 일본인들의 풍류의식을 반영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3월의 화투는 벚꽃, 아직도 노년층의 입에 남아있는‘사꾸라(櫻)’다. 두말할 여지없이 3월은 일본의 벚꽃 축제가 절정에 이른다. 일본 곳곳에 벚꽃들이 가득 차고 화객(花客)들이 고궁에 넘친다. 그런데 3광(光) 밑에 그려진 것은 무엇인가.

광주리에 벚꽃이 담긴 듯한데, 그것이 아니라 지금도 일본인들이 경조사 때에 천막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막(慢幕; まんまく)’을 상징하는 그림이란 것이다.

아마도 그 휘장 속에는 벚꽃을 감상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상춘객들의 유희 모습이 생략되어 있을 뿐이다. 그림의 분위기를 보면 지금 당장 낮술에 취한 채 봄날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는 상춘객이 그대로 튀어나올 법 하지 않는가. 상상이 좋다.

4월의 화투 그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못 알고 있는 중의 하나가, 이 4월의 화투장이다. 흑싸리라는 것이다. 심지어 인터넷 사전에도 ‘화투에서 검은 싸리와 까마귀가 그려진 패’라고 알려주고 있다. 싸리종류에서 흑싸리라는 식물이 있을까? 물론 없다는 게 정답이다.

문제는 그림이 흑싸리가 아니라 등나무 꽃이고 까마귀가 아니라 비둘기(鳩 :하토)여서 100년 동안이나 헛짚어온 것이다. 바다를 건너오면서 변종이 되었단 말인가. 4월은 일본에서 등나무 꽃 축제가 열리는 계절이다. 그래서 4월의 화투 그림에서 등나무 꽃이 늘어진 모양이니 위의 배치된 그림처럼 위·아래를 구별해 보는 것이 옳다.

등나무는 일본 전통시의 시어(詩語)로 많이 차용되는 여름식물의 상징이다 그리고 등(藤)나무는 일본에서 가문의 명칭으로 쓸 만큼 귀하게 여기는 식물이다. 후지모도(藤本), 후지타(藤田), 후지이(藤井) 등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10점짜리에 그려져 있는 비둘기 역시 일본에서는 시제(詩題)로 자주 등장할 만큼, 그곳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면 헛것으로 팔이 아프도록 두들겨 팼던 당신이 불쌍한 것이다.

5월의 화투 그림이다.

이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못 알고 있는 중의 하나다. 모두가 ‘난(蘭)’, 또는‘난초’라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난이 아니라 어처구니없게도 ‘창포(菖浦 :쇼우부)’이란 게다. 5월의 창포는 보라색 꽃이 피는 습지의 관상식물로서 일본에서는 여름을 상징하는 시어(詩語)다.

그런데 5월의 10점짜리 화투, 창포 꽃 아래에 빨강 머리에 노랑 기둥 3개와 가로 끼어 놓인 T자 모양의 막대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그 T자 모양은 창포 꽃을 구경하기 위해 정원 내 습지에다 만들어 놓은 산책용 목재 다리이며, 3개의 작은 막대기는 목재 다리를 지지하는 버팀목이라면 픽션이란 소리를 들을까? 일본인들은 그런 목재 다리를 ‘야쯔하시(八橋; やつはし)’라고 부르고 있으니 탈은 탈이다.

이도 3월의 광처럼 다리 끝에는 창포 꽃을 감상하는 사람이 있을 법한데, 그런 상상까지 챙겨가면서 화투를 쳐야 운치가 있지 않을까.

6월의 화투 그림은 모란꽃이다.

일본에서는 모란꽃은 여름의 시어(詩語))일 뿐만 아니라 고귀한 이미지마저 갖는다. 모란꽃을 일본인들은 가문(家門)을 나타내는 문양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6월 화투의 모란꽃에는 나비가 그려져 있다.

이는 당 태종이 신라의 선덕여왕에게 보낸 모란꽃의 그림에 나비가 없었다는 점에서 연유하여 한국화(韓國畵)에서는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것이 오래된 관례(慣例)인데, 비하여 꽃과 나비하면, 바로 모란꽃을 떠올릴 정도로 동양 사회에서는 모란꽃을 꽃의 제왕으로 쳐주는 대로 그렸다. 이것이 곧 모란꽃과 나비에 대한 한국화(韓國畵)와 일본화(日本畵) 차이점이랄 수 있겠다.

7월은 붉은 싸리나무(萩)다.

우리나라에서는 빗자루를 만들만큼 흔한 식물이지만 일본에서는 ‘가을 7초’중의 하나로 귀중하게 여기는 식물이다. 7월의 화투에 멧돼지(猪 : イノツツ)가 나오는 이유는 근대 일본에서 성행했던 멧돼지 사냥철이 7월이었기 때문에 멧돼지가 그려졌다는 게 정설이다.

8월의 화투 그림은 공산명월(空山明月), 즉 산(山), 보름달, 기러기 3마리다.

이는 일본에서도 8월이 오츠키미(月見子; おつきみ)의 계절인 동시에 철새인 기러기가 대이동을 시작하는 시기임을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그림이다. 오츠키미는 둥근달을 보며 과일 같은 것을 창가에 담아두고, 달에게 바치는 소박한 명절이다.

또 한국에서 제작되는 8월의 화투에서 검은색으로 처리된 것이 산이다. 10점짜리와 피에서 흰색으로 처리된 부분은 하늘을 의미한다. 8월의 한국 화투에는 산에 억세 풀이 없는데 반해, 일본의 화투에는 억세 풀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억세 풀이 그려진 화투를 본 적도 있었다. 일본에서 제작된 것이었을까?

8월의 화투에는 5점짜리 화투도 없고 홍색이나 청색 띠도 없는데, 그것은 일본에서도 8월 달이 1년 중에서 제일 바쁜 추수철이라서 한가롭게 시(詩)를 쓰고, 낭송할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라 전해진다.

9월의 국화그림이다.

고스톱꾼들이라면 이 패만 떴다하면 ‘죽거나, 광 팔지 않고 고’다. 9월의 10점짜리는 11월의 10점짜리처럼 멋대로 쌍 피가 되기도 하는데, 무슨 까닭일까?

국화 축제는 일본에서 열리는 9월의 대표적인 행사다. 따라서 또 9월의 화투에서 10점짜리를 보면 ‘목숨 수(壽)’자가 새겨진 술잔이 등장한다. 이는 9세기경인 헤이안 시대부터 ‘9월 9일에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꽃을 덮은 비단옷으로 몸을 씻으면 무병장수를 한다.’는 일본의 중양절(中陽節) 전통의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특히 국화가 일본의 왕가(王家)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그것은 일왕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흐르는 물에다 술잔을 띄워놓고 국화주를 마시면서 자신들의 권세와 부귀가 영원하기를 기원했던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9월의 화투 가운데 10점짜리 화투만이 자기 맘대로 쌍 피가 될 수도 있고, 10점짜리 화투로 남을 수 있는 특권을 갖는 것도 바로 9월의 10점짜리화투가 일왕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술잔을 의미하는 사카즈키 (さかずき)와 국화를 뜻하는 키쿠(きく)간에 말운(末韻)과 두운(頭韻)이 연속성을 갖는 점도 재미있는 일이다.

10월의 그림은 단풍이다.

일본에서 10월은 전통적으로 단풍놀이의 계절인 동시에 본격적인 사슴 사냥철이다. 10월의 화투를 보면, 10점짜리 화투에 수사슴과 단풍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계절의 특성을 반영했다.

사슴을 의미하는 시카(鹿; しか)와 단풍을 뜻하는 카에데(丹楓; かえで)간에도 이 또한 말운(末韻)과 두운(頭韻)이 일치하는데, 이것 역시 우연이라기엔 인위적인 냄새가 짙다.

11월은 오동(梧桐) 그림이다.

11월 오동에 대하여 언급하기 전에 한일 양국 간에 큰 차이부터 알아둘 필요가 있다. 즉 한국에서‘오동’은 11월의 화투이고‘비’는 12월의 화투인데 반해, 일본에서는 그 반대로‘비’가 11월의 화투이고‘오동’은 12월의 화투이기 때문이다.

일본 화투에서‘오동’이 12월의 화투가 된 것은, ‘오동’을 뜻하는 기리(きり)가 에도(江戶)시대의 카드였던 ‘카르타’에서 맨 끝인 12를 의미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고스톱을 즐기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동이리라. 속칭 ‘똥광’으로 불리는 오동의 광(光)은 광으로도 쓸 만하고 피(皮) 역시 오동만이 9월 10짜리와 함께 유일하게 3장이다. 한국인들에게 더러움, 지저분함, 고약한 냄새의 이미지를 주는 ‘똥’이, 왜 고스톱꾼들에게는 제일로 각광받는 화투패가 되었을까? 그 비밀은 오동의 화투 문양에 있다는 것이다.

오동의 20점짜리 광에는 닭 모가지 모양의 이상야릇한 조류(鳥類)와 고구마 싹 같은 것이 등장한다. 고스톱꾼들은 그것이 무엇이고, 또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나타내 주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11월의 화투문양 중에서 검정 색깔의 문양은 고구마 싹이 아니라 오동잎인데 일본 화투를 보면, 오동잎이 매우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 오동잎은 일왕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막부(幕府)의 쇼군을 상징하는 문양이며, 지금도 일본 정부나 국공립학교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일본 화폐 500엔(¥)짜리 주화에도 오동잎이 도안으로 들어가 있을 정도니 그 위력은 알만하다. 그리고 닭 모가지와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는 조류 또한 평범한 조류가 아니라, 막부의 최고 권력자인 쇼군의 품격과 지위를 상징 하는 봉황새의 머리이다.

이쯤 되면 일본인들이 11월 오동에 부여한 의미를 알만하다. 그러니 9월의 10짜리인 국화만 가지고 있게 되면 광 박을 뒤집어쓰지만, 오동의 광을 갖고 있으면, 광 박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 화투 그림이다.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선 보면 20점짜리 ‘비’광에는 양산을 쓴 선비(일본 것과 달리 갓으로 변했다.), 청색의 구불구불한 시냇가, 개구리가 등장한다. 또 10점짜리 화투에는 까투리(일본 국조 國鳥)가 나오고, 쌍 피로 각광을 받는‘비’피를 보면 정체불명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비’광의 그림이 에도시대에 성행했던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浮世繪; うきよえ)’를 연상시킨다. 화투‘비’에 숨겨져 있는 엄청난 비밀과 교훈이 있으며, 또 절기(節氣)상으로 12월은 추운 겨울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광을 살펴보면 웬 낯선 선비 한 분이 양산을 받쳐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리고 축 늘어진 수양버들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고, 그 옆에는 개구리 한 마리가 앞다리를 들며 일어서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름 양산과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어야 할 개구리가 혹한(酷寒)의 계절인 12월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러나‘비’광 속에 나오는 그림은 과거 일본교과서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유명한 ‘오노의 전설(小野の?說)’을 묘사한 것이다. 즉‘비’광 속의 갓 쓴 선비는 오노노도후(小野道風AD 894-966)라는 일본의 귀족으로서 약 10세기경에 활약했던 당대 최고의 서예가다. 또 개구리를 뜻하는 카에루(かえる)와 양산을 의미하는 카사(かさ)의 두운(頭韻)이 일치하는 것도 일본인들의 풍류의식에 따른 것이다.

교육적인 교훈의미가 강한‘오노의 전설’에 대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일본의 서예가였던 오노가 붓글씨에 몰두하다 싫증이 나자 잠시 방랑길에 올랐다. ‘비’광에 등장하는 선비의 모습이, 머나먼 방랑길을 떠나는 오노의 모습이다. 그런데 오노가 수양버들이 우거진 어느 길목에 다다랐을 때, 아주 이상한 광경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은 개구리 한 마리가 수양버들에 기어오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 개구리는 오르다가 미끄러지고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그 실패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오르기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오노는 연속적인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수양버들에 기어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개구리의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미물(微物)인 저 개구리도 저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하물며 인간인 내가 여기서 포기해서 되겠는가?’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가 붓글씨 공부에 정진하였고 결국 일본 최고의 서예가가 되었다는 얘기다.

또 쌍 피로 대접받는‘비’피의 문양을 보면, 여러 가지로 연상된다. 그런데 ‘비’피의 문양은‘죽은 사람을 내보내는 일종의 쪽문’으로서, 라쇼몬(羅生門)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비’피가 쌍 피로 대접받는 것은 라쇼몬이 죽은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귀신이 붙어있을 것이고, 따라서 귀신을 잘 대접해야만 해코지를 면할 수 있다는 일본인의 우환의식(憂患意識)에서 비롯된 것일 거라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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