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 제발 저희 좀 봐 주세요

in #aaa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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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백수 ‘용남’(조정석)에게도 찬란했던 시절은 있었다. 옷장 한켠에 제단처럼 모셔놓은 메달과 산악도구들을 보았을 때, 산악동아리를 다녔던 대학시절의 용남은 ‘그때는 잘 나갔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지원한 곳마다 불합격 소식만 받는 처량한 청년 백수 신세다. 그의 처지는 첫 장면으로 요약된다. 그가 멋있게 철봉사이를 오가면서 운동을 하고 있는 공간은 놀이터이다. 그곳에는 노인들과 아이들뿐이다. 경제인구들은 일을 하러 나간 낮 시간, 놀이터에 있는 용남은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운동을 마무리 한다. 언제나처럼 불합격 소식을 받아도 지금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대학시절 열정을 바쳤기에 지금 가장 잘 하는 일인 무언가를 붙들고, 매달리는 일 뿐이다.

그런 용남에게 그의 선배는 “(지진 재난문자를 받고) 지진보다, 지금 우리가 재난이야.” 라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는 이들의 상황은 실제로 땅이 흔들리는 것만큼이나 큰 재난 상황이다. 용남은 그런 재난 상황에서 또 다른 재난을 마주한다. 숨을 들이 쉬면 죽음에 이르는 유독가스가 도시에 퍼진 것이다. 영화는 이 재난을 풀어가며 우리가 지난 시간동안 겪었던 많은 재난의 기억들을 조각조각 집어넣는다. 산모가 포함된 용남의 가족에게 유독가스라는 재난이 덮친 것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어른들 없이 학원에 갇힌 학생들에게서는 세월호 사건이 떠오른다. 그 때마다 그들을 구조하는 것은 백수 용남과 을의 삶을 살고 있는 ‘의주’(임윤아)이다. 그들도 살고 싶다. 하지만 살 수 있는 순간마다 그들 앞에는 더 위급한 다른 사안들이 보인다. 그렇게 그들의 SOS신호는 매번 뒤로 밀려난다.

영화 속의 두 가지 재난상황에서 용남과 의주는 끝내 누군가에 의해 구조 받지 못한다. 그들로 대표되는 청년은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언제나 차선으로 밀려나 ‘체감’되는 구조를 받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계속해서 맨 몸으로, 맨 손으로 높은 곳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 영화의 마지막처럼 누군가 펼쳐놓은 안전그물이 있다면 그들은 몇 번이고 맨 몸으로 오르는 등반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밖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될지 모르는 끈과 몸뚱어리 하나뿐이다. 그 상황에서 계속 ‘나이’를 시작으로 한 낙오를 향한 조건들이 차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들은 계속해서 뒤처질 것이고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지나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영화는 차오르는 유독가스를 통해 체감하게 한다. 그들은 백수의 시간이, 경력이 되지 못할 을의 시간이 무섭다. 그래서 맨 몸으로 도시의 벽을 올라 끝내는 타워크레인에 서까지 손을 흔든다. 그리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극단적인 투쟁을 벌이고는 하는 그 곳에서 그들은 겨우 구출된다.

두 주인공은 구출되었지만 영화 속 재난은 끝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다. 유독가스라는 재난은 제도의 힘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닌 자연의 힘으로 해소되며, 용남과 의주는 여전히 백수 상태이다. 어디에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짠한 두 사람이지만, 그래도 서로라는 버틸 고리가 생겼다. 영화는 용남과 의주에게 사랑이라는 연대의 끈을 이어주었다. 두 사람은 함께 구조신호를 보내며 세상을 헤쳐 나갈 것이다. 영화 속의 구조신호들은 모두 함께 보낼 때 누군가에게 가 닿는다. 영화 <엑시트>가 보장하는 확실한 재난 탈출 방법은 “함께” 하는 것이다. 재난을 마주한 당신, 자책하지 말고 숨어들지 말자. 같은 재난을 마주한 사람들과 ‘함께’ SOS 신호를 보내자. 그렇다면 구조의 손길은 보다 빠르게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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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dlawhdgk1205/183

영화 URL: (https://www.themoviedb.org/movie/572164?language=en-US)
별점: (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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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랑 엑시트 둘중에 고민하다 사자를 봤었는데 엑시트도 한 번 봐야겠네요 ㅎ

조정석에 윤아라니 유쾌할것같은 조합이네요.

오늘 보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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