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rba the Greek] '내'가 들고 다니는 책, 단테의 신곡

in #kr6 years ago (edited)

illustration by @carrotcake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중 화자는 '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는 크레타 섬에 들어갈 때 단테의 신곡을 들고 간다.
그리고 틈 날 때마다 꺼내 읽는다.

나는 주머니에서 단테 문고판(내 여행의 동반자)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는 벽을 기대어 편안하게 앉았다. 나는 한순간 망설였다. 어디를 읽는다? <지옥편>의 불타오르는 암흑? <연옥편>의 정화하는 불길? 아니면 인간의 희망이 최고의 감정 기준이 되는 대목으로 들어가? 나는 마지막을 취했다. 문고판 단테를 손에 들고 나는 자유를 즐겼다. 아침 일찍 고르는 단테의 시행이 하루 종일 그 운율을 나누어 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번역

크레타 섬에 도착한 다음날 바닷가로 산책을 나간 그는 다시 단테의 책을 꺼내든다.

나는 서둘러 내 길동무 단테를 폈다. 그 무서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페이지를 뒤적이며 여기서 한 행, 저기서 삼행연구 하나씩 읽다가 한 구절을 외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불타고 있는 구절에서 저주받은 자들이 절규하여 일어나기도 했다. 암벽의 중간쯤에서 망령들은 험준한 벼랑을 미친 듯이 오르고 있었다. 올라갈 길은 멀었지만 축복 받은 영혼은 에메랄드빛 벌판을 반짝이는 반딧불처럼 움직였다. 나는 이 운명의 집을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가장 낮은 데까지 방황했다. 나는 천당과 지옥과 연옥을 내 집인 양 드나들었다. 시를 읽으면서 나는 괴로워했고 지복을 기다렸고 지복을 맛보았으며 무아지경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단테를 덮고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번역

그리스인 조르바를 덮고 단테의 신곡을 꺼내 들었다.
지옥편.

(집에 지옥편만 있는 듯. 왜 지옥편만 샀을까?)

읽다 만 곳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제11곡. 지옥의 골짜기에서 심한 악취가 풍겨 온다. 냄새에 익숙해지도록 걸음을 늦추면서 베르길리우스는 지옥의 구조와 그곳에서 벌받고 있는 죄인들의 분류에 대하여 설명한다. 특히 기만이 무절제나 폭력의 죄들보다 더 아래의 지옥에서 더욱 커다란 형벌을 받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하늘에서 증오하는 모든 사악함의 목적은
불의이며, 모든 불의의 목적은 폭력이나
기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다.
기만이란 하느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인간 고유의 악이며, 따라서 사기꾼들은
더 아래에 있고 더욱 큰 고통을 받는다.
<신곡 : 지옥>, 단테 알리기에리, 김운찬 번역

신곡은 접고
다시 조르바로.

Coin Marketplace

STEEM 0.35
TRX 0.12
JST 0.040
BTC 71539.00
ETH 3603.23
USDT 1.00
SBD 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