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간정리 2 작전 전술 분야
- 중국군의 제2차 전역이후 2개월 휴식과 관련한 이후 전역의 흐름 분석
펑더화이는 제2차 전역이후 2개월간 휴식 및 정비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김일성과 소련의 군사고문관들로부터 극심한 반대에 직면한다. 전쟁에서 승기를 거두고 있는데 여기에서 중지한다는 것은 군사적으로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모택동은 스탈린의 요구에 따라 휴식없이 제3차 전역을 실시한다. 그리고 37도선 정도까지 도착해서 전선을 정비하고 휴식을 취하려고 하는 순간에 유엔군과 한국군이 일제 반격을 실시한다.
이로인해 중국군은 휴식다운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서울 이북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군은 제4차 전역을 감행한다. 제4차 전역은 계획한 것이 아니라 유엔군의 반격을 저지하기 위한 의도에서 실시된 것이다.
제2차 전역에서 장진호 전투에 투입되었던 제9병단은 제4차 전역까지 투입되지 못하고 제5차 전역에 들어서야 전력을 회복하고 투입된다.
만일 중국군이 제2차 전역에서 공세를 중지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제9병단도 전투력을 회복한 상태에서 반격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유엔군과 한국군은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제2차 전역이후 2개월간의 정비기간은 그 이후 제5차 전역에 이르기까지 중국군이 수세에 몰리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을 한다. 아직까지 한국전쟁 연구에 있어서 제2차 전역이후 휴식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분석하거나 평가한 작업을 하지는 못한 것 같다.
정치가 군사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도 있고 북한과 소련의 군사고문관들이 중국군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중국군은 항구적인 보급과 수송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미공군의 후방차단공습은 중국군이 지속적인 작전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하지 못했다.
- 한국전쟁 초기작전 수행과 관련하여
소련이 기술한 6.25 전쟁의 초기작전 평가를 보면 북한군들이 초기작전에 실패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전 전선에서 공격을 개시하면서 한국군의 후방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그냥 밀어내기만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초기작전에 대한 한국군의 자체적인 평가와 소련군의 평가는 매우 상이하다. 소련군은 이런 결과를 북한군의 전략적인 지도능력 부족이라고 본 것 같다.
전쟁발발이후 1주일이 지나면서 북한군 최고사령부가 재편된다. 그 의미를 초기작전의 실패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이 서울에 3일만에 진입했으나 국군의 주공을 완전하게 결멸하지 못한 것이다. 즉 유생역량 말살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가 실패한 것으로 보았던 제7사단의 의정부 지역 작전은 성공적인 방어작전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제7사단이 모든 역량을 다 투입하여 시간을 벌어줌으로써 전 전선이 완전하게 붕괴되고 전쟁이 서울에서 종결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은 북한군의 의정부지역에서의 진출속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 서울점령이후 북한군의 주조공 전환문제
전쟁발발시 북한군의 주공은 서울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의정부 축선이 주공이었다. 그러나 서울 점령이후 미국이 개입을 결정하자 주조공을 전환하는 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군이 투입되는 것을 파악한 북한군이 주공을 서울 대전 부산 축선이 아닌 한국군이 주로 있는 중동부 전선으로 변경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북한군이 서울점령이후 부대편성을 바꾼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내용이다.
-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양상
낙동강 전선에서의 공격양상과 전쟁도발 초기의 작전양상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전쟁초기에는 전면공격을 실시했으나 낙동강 전선에서는 하동-진주-마산-부산을 지향하는 축선과 영덕-안강기계-포항-경주를 지향하는 축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부산을 동과 서로 양익타격을 실시한 것이다.
중공군출신 부대인 북한군 6사단, 12사단, 5사단으로 부산을 남해안과 동해안을 따라 타격해서 공격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시도가 좌절되자 북한군은 영천과 영산지역으로 좁혀가면서 타격을 가한다. 이런 시도가 좌절되면서 북한군의 낙동강 공격작전은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전전선에 걸쳐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중국군이 낙동강 전선이 한계에 부딪치는 상황에서 철수를 건의한 것은 시사한 바가 크다.(1989년 항미원조전사)
경부축선으로 공격한 것은 일종의 조공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북한이 낙동강 전선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작전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작전양상을 보면 당시 북한군이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 인천상륙작전이후 북한군의 철수작전에 대한 이해
인천상륙작전이후 북한군은 거의 무질서하게 패퇴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전황을 잘 살펴보면 북한이 명확한 작전개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엔군이 인천에서 서울까지 진출하는데 약 2주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서울까지 신속하게 진출하여 중동부 지역의 적을 포위하여 제거하는 작전을 수행하지 못했다. 인천상륙작전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북한군의 입장에서는 인천에서 서울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어 중동부 전선으로 북한군 주력들이 철수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특히 중동부 지역의 북한군들은 그대로 뒤로 빠져 철수했다.
북한군 제2군단은 비정규전 부대로 활동을 했다.
이렇게 보면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작전적 평가가 다시 이루어져야 하고 북한군의 대응작전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군의 입장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지연작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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