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북한을 희화화, 악마화하는 미국 언론이 문제입니다”

in #vop8 years ago

CVID는 미국판 ‘종북’

지난 17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는 ‘외신은 한반도 뉴스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주제로 제8회 한국 저널리즘 컨퍼런스가 열렸다.

참석한 한 기자가 공개적으로 “이미 프레임이 짜여진 토론회”라고 비난했듯이, 기자 역시 그렇게 큰 기대감을 갖지 않고 참석했다.

발제자도 미국 뉴욕타임스(NYT) 한국지국장과 일본 마이니치(毎日)신문 한국지국장이었으니, 이른바 서방 언론의 일방적인 시각만 드러낼 것이라는 선입견이었다.

예상대로 마이니치신문 한국지국장은 발제 시간 대부분을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쏟아부었다. 주제인 한반도 뉴스가 아니라, 일본의 대북 관련 주요 이슈를 일본 언론들이 어떻게 다루는지를 그것도 ‘납치 문제’에 한정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앞서 첫 발제자로 나선 최상훈 NYT 한국지국장의 발제는 거의 ‘자기 고백’에 가까울 만큼 기자에게는 나름대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미국 언론이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근본적인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그는 개방에 나서지 않은 북한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미국 언론들은 “북한을 웃음거리로 희화화하고 그들 지도자를 악마로 악인화하는 데 주력했다”고 성찰했다. 또 때로는 ‘공포감’마저 조성해 미국 국민들이나 더 나아가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대북 불신’이 쌓이게 한 데에는 미국 언론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용어의 정치학’이라는 관점에서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용어에 관해서도 “이 세상에 불가역적인,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대체 어디에 있느냐”면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미국 행정부 관료나 언론들이 마치 한국에서 ‘종북’이라는 용어의 사용처럼, 현실이나 본질은 무시하고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어 그것이 마치 문제 해결의 핵심인양 보도함으로써 실제로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최 국장은 또 북한에 대한 상황이 제대로 보도되지 못해 쌓인 “미국 내 ‘대북 불신’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더 엄청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일례로 어느 미국 전문가는 과거 북한과의 협상에서 “(원천적으로 북한 사람이 싫어) 코를 막고 한다”는 말도 자신에게 털어놨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대북 불신에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까지 더해져 북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북한 역시 마찬가지로 “미국은 해 준 것이 대체 뭐가 있느냐”면서 ‘미국 불신’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북미관계가 그나마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트럼프-김정은 조합’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현재 상황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북한에서는 나름 경제 개발에 나서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에서는 기존과는 특이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 국장은 ‘기사 보도에서 북한 입장을 충분히 다루고 있다고 보느냐’ ‘취재 제한 등 어려움은 없느냐’는 기자의 공개 질의에도 “나름 로동신문 원문 등을 보고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현실적인 취재 제한 등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솔직히 답변했다.

기자는 또 최 국장에게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도 일방적인 용어가 아닌가”, “결국 미국은 북핵 보유 인정의 두려움이 있지만, 북한을 인정하고 그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돌직구성 질문을 던졌다.

최 국장은 이에 관해 “예전에는 공개적으로 말도 못했지만, 요즈음은 일부 전문가도 칼럼 등을 통해 북핵 인정이라는 주장도 한다”면서도 “핵 비확산이 목표이기도 한 미국이 북핵을 인정한다면, 한국과 일본도 자체 핵무장에 나설 수 있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는 특히, “한국에도 국민의 힘으로 진보정권이 들어섰지만, 아직도 미국 언론이나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관한 회의론(skeptical)이 많다”면서 “이러한 큰 벽을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문제에 관해 기자들의 객관적이고 통찰력 있는 보도도 중요하지만, 한국 정부 차원에서는 이러한 ‘큰 벽’을 넘기 위해 미국 전문가나 외신 기자들을 대상으로 자주 세미나 등 이벤트를 개최해 상호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현재 NYT 한국지국장으로 있는 최 국장은 지난 2000년 AP통신 한국 특파원 시절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피난을 가던 민간인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보도해 기자들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바 있다.

그는 지금도 현장 특파원으로 한반도 문제를 비롯해 한국에서 일어나는 주요 내용을 NYT에 송고하고 있다.

항상 균형 감각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기사를 전달하려는 그의 노력과 고뇌가 돋보인 이번 컨퍼런스는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NYT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알 수 있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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