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는 왜 경제적 이슈를 선점하는데 실패하나?

in #kr6 years ago

무식한 한국 보수는 절대 모르는 보수의 복지 정책

한국 경제사에 남을 희대의 코미디는 이명박이 4대강을 파헤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멀쩡한 강을 왜 파헤치느냐?”는 상식적 질문을 하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거고!). 자칭 비즈니스 프렌들리에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정치 지도자가 수 십 조 원이 투입되는 국가적 토목사업을 지상 과제로 삼은 대목이 진정한 코미디다.

이명박이 그토록 신봉했던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오로지 시장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를 기본으로 삼는다. 그런데 보수를 자처하는 이명박이 진보 경제학에서나 나올 법한 국가 주도의 초대형 토목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자칭 보수인데 보수 경제학이 뭘 주장하는지도 모르는 자가 대통령이 되는 현실. 한국 보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자들이 너무 무식하다는 데 있다. 적어도 자기들이 보수라고 주장하려면 보수 경제학이 무엇을 뼈대로 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새 정부가 들어선지 1년이 지났는데 경제 분야에서 보수 정당은 도무지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지 못한다.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정부 정책이 발표되면 무조건 반대하는 것뿐이다.

역사상 최악의 선거 참패를 겪은 후 보수 세력들이 새로 태어나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래, 제발 좀 새로 태어나라! 그런데 아무리 관찰 해봐도 이들에게는 새로 태어날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새로 태어날 기회가 있는데도 한국의 보수는 그 기회를 스스로 기회를 걷어찬다.

정부가 근로장려세제 개편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보수 야당은 포퓰리즘이니 세금 퍼주기니 하며 반대의 날을 세운다. 그런데 그것 알고 있나? 근로장려세제는 진보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보수의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시장질서와 인센티브 시스템을 중시하는 보수적 경제관에 매우 부합하는 제도다.

정말로 한국 보수가 새로 태어나고 싶으면 근로장려세제 개편은 보수가 주도해야 했다. 이 아이디어만 보수장당이 제시했어도 경제 쪽의 중요한 이슈는 보수의 것이 될 수 있었다. 부자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쇄신하는 덤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근로장려세제는 보수의 아이디어

정부가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근로장려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 EITC)의 출발은 마이너스 소득세, 혹은 역소득세라고 불리는 아이디어다. 이 제도는 가난한 국민들에게 국가가 일정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일견 매우 진보적인 복지정책처럼 보이지만 이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한 사람은 보수 경제학의 거장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이다.

프리드먼의 역소득세 제안은 이런 것이다. 소득세는 원래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 누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를 거꾸로 적용해 일정 소득 이하의 빈곤층에게는 세금을 걷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부가 돈을 줘서 이들의 빈곤을 구제하자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현대 경제학계에서 자유주의 경제학의 우두머리 쯤 되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세금을 걷는 것을 매우 싫어했고(정부가 왜 시장에 개입하느냐는 논리), 국가가 복지정책을 펼치는 것에도 강한 반감을 자고 있었다.

그런 프리드먼이 왜 역소득세를 제안했을까?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어찌됐건 사회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 그렇다면 그들을 도와야 되는데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방향으로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제도가 간단해야 한다. 복지제도가 복잡하면 정부가 복잡한 행정을 펼쳐 시장에 더 많이 개입하게 된다. 그런데 역소득세는 매우 간단한 제도다. 일정 소득 이하로 떨어지면 돈을 주면 되기 때문이다.

셋째, 보수 경제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무임승차다. 그들은 복지제도가 활성화되면 사람들이 게을러진다고 주장한다. 일을 안 해도 나라가 다 먹여 살리는데 왜 일을 하겠냐는 주장이다. 그래서 보수 경제학자들은 모든 경제 체제에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는 논리라고나 할까?

근로장려세제의 효용성

그런데 근로장려세제가 이들이 세 가지를 모두 해결한다. 실제로 근로장려세제는 미국 정부가 프리드먼의 역소득세 제안을 받아들여 처음 시행한 제도다.

이 제도의 특이한 점은 가난할수록 더 많은 돈을 정부가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물론 이 제도는 일정 소득 이하의 최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최빈곤층 안에서도 등급을 구분한 뒤, 가장 낮은 소득층보다 오히려 중간쯤 되는 소득을 올린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준다.

우리나라의 현행 제도에 따르면 혼자 사는 사람 기준으로 연 소득이 100만 원이라면 10만 원 정도를 받는다. 연 소득이 300만 원 정도라면 30만 원을 받는다. 그리고 연 소득이 600만 원이 넘어가면 60만 원이 보장된다.

1인 가구 외에 홑벌이 가구, 맞벌이 가구의 기준이 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정 수준까지 소득이 높아질수록 혜택이 커진다는 설계는 동일하다. 이 제도의 이름이 근로 ‘장려’ 세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든 노동 시장에 참여해서 일을 하는 빈곤층일수록 혜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신박한 보수의 아이디어, 하지만 보수는 그걸 모른다

보수는 인센티브를 좋아하고 무임승차를 싫어한다. 진보는 어떻게든 빈곤층을 위한 복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근로장려세제는 보수와 진보 경제학의 접점을 찾아주는 충분한 중재안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프리드먼의 역소득세 제안의 보수의 것이긴 해도 나름 신박한 아이디어였다. 진보경제학의 거장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가 프리드먼의 역소득세 제안을 높게 평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가 개편을 추진하는 부동산 보유세도 사실 보수의 아이디어에 가깝다. 프리드먼은 모든 세금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유독 자연세라 불리는 세금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시각을 보였다. 자연세는 자연을 점유해서 번 돈에 대해 물리는 세금이다.

자연은 누군가가 생산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보수 경제학이 그토록 좋아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에 어긋난다. 프리드먼은 이런 이유로 자연을 점유해 번 돈에 대해 과세를 해도 괜찮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의 정확한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세는 “가장 덜 나쁜 세금”이다.

그래서 근로장려세제나 부동산 보유세는 보수 쪽에서 충분히 먼저 치고 나올 수 있는 이슈였다. 학문적 소유권이 보수 경제학에 있으므로 명분도 그들에게 있다. 이런 제도를 보수가 주장하면 진보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제적 이슈를 보수가 압도적으로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근로장려세제와 부동산 보유세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식한 한국의 보수는 이걸 모른다. 자유한국당이 모르는 건 이해가 되는데(워낙 멍청하므로)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는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다.

새로운 보수 하겠다면서? 그러면 이런 것부터 좀 하지 그랬나? 이런 이슈를 보수가 선점했다면 단언컨대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수가 건국 이래 최대의 참패를 당하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세히 말해줘도 어차피 저들은 못 알아듣는다. 새로운 보수? 식상한 ‘무릎 꿇고 사죄하기 퍼포먼스’로 새로운 보수가 태어날 리가 없다. 자기들 소유의 신박한 경제적 아이디어마저 시도조차 못해보고 부자들 뒤나 졸졸 따라다니는 한국의 보수. 확신하는데 이들은 그냥 이대로 망할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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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관련 내용에 대해 알아갑니다. 정성글에는 추천이라고 배웠습니다.

이완배 기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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