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미야의 사람과 현장] 안산에서 낙선한 그녀, 정세경 이야기

in #kr6 years ago

정세경이 누구냐고? 대부분 모르는 그 이름, 하지만 대한민국, 안산, 그것도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이제는 무분별한 개발과 새로 지어진 높은 아파트값 때문에 원주민들이 이제는 점점 떠나고 있는 동네의 1649명은 그녀를 잘 알지. 암. 잘 알고 말고.

그녀는 이번 7회 지방선거에서 안산 마선거구(원곡동, 백운동, 선부1,2동, 신길동)에 시의원으로 출마했다가 4.68%(1649표 득표) 득표율의 초라한 성적으로 낙선한 사람이야.

그런데 왜 그녀 이야기를 하냐고? 그건 그녀의 출마지역이 안산이기 때문이지. 안산, 기억하지? 2014년 4월 16일, 단원고등학교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지역, 그곳에서 그녀는 출마했지. 그녀는 사실 선거기간 세월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해. 정권이 교체된 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세월호 유가족에게 사의를 표했고, 4주기였던 지난 4월 16일엔 정부가 공식적으로 “세월호를 잊지 않고, 안산에 4.16안전공원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이제 안산 시민들은 아픔을 딛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런데 많이들 알다시피 선거기간 안산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잖아. 세월호에 대한 도 넘는 혐오표현으로 세월호 유가족들뿐 아니라 안산 시민들에게도 그 기간은 꽤나 힘들었어.

선거 막판 안산시청에서 울부짖은 그녀
“도대체 우리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정세경, 그녀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엄마의 노란손수건>이라는 카페를 만들어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수 만 명의 회원을 모집했어. 이들이 온라인 공간 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유가족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활동한 것은 꽤 많이 알려진 일이야. 그녀는 이 때 엄마들의 힘을 보았고, 우리의 삶, 우리 아이들의 삶 어느 하나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 그래서 평범한 맞벌이 노동자였던 그녀가 이번 지방선거에 나서게 된 거지. 그녀가 이번 선거에 들었던 슬로건은 “정치에도 엄마가 필요해! 유쾌한 엄마의 직접정치”야.

그런데 선거 막바지였던 6월 8일, 그녀는 안산시청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며 울부짖지.
“엄마정치는 온데간데없습니다. 사람들은 리본을 왜 달았냐, 납골당을 찬성하냐 반대하냐고만 묻습니다. 도대체 우리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그녀의 선거구에는 두 명의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한 명의 자유한국당 후보, 그리고 한 명의 바른미래당 후보가 출마했어. 그런데 알려진 것처럼 안산에서 세월호(납골당) 혐오 프레임으로 선거를 치른 모든 후보가 낙선한 것은 아니야. 선거기간 동안 세월호 혐오 발언을 두드러지게 한 두 명의 시의원 후보가 있었지. 한 명은 아이들을 ‘내 집안 강아지’에 빗대었던 이혜경(바른미래당),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첫 유세에서 “나는 공약 하나도 없다. 납골당 반대, 하나 가지고 나왔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우리 안산 시민들에게 4년 동안 사과 한 마디 한 적 있었냐”고 말했던 강광주(자유한국당)야.

특히 강광주의 지역구는 4.16안전공원이 들어설 화랑유원지 인근이어서 아파트마다 ‘납골당 반대’ 현수막을 내걸고, 선거 전부터 방송차량을 돌리는 등 겉보기엔 온동네가 ‘납골당 반대’ 이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았지. 바로 이곳이 그녀가 강광주와 함께 출마한 지역이었던 거야. 이제 상상이 가지?

이미 선거 전부터 그들이 가둬놓은 ‘납골당’ 프레임에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엄마들이 직접하는 정치’, ‘엄마들과 함께 일구고 싶은 마을’은 온데간데없고 선거기간 내내 그녀는 “세월호 뱃지를 떼라”, “납골당을 찬성하냐, 반대하냐”는 질문에만 시달렸던 거야.

누군가는 이야기했지. “우선 당선이 되어야 하니 주민들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말자”,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 잘 모르겠다고 하자”. 그 말도 일리는 있었어. 그래서 그녀는 “곧 잠잠해지겠지” 싶어서 굳이 안전공원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정말 동네정치를 이야기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선거 중반이 되니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도 모자라 민주당까지도 ‘납골당 반대’ 여론에 편승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 거야. 당선이 된 윤화섭(더불어민주당) 안산시장 후보가 선거 후반 “안전공원은 시민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며 모호한 표현, 해석에 따라서는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의 주장과도 상통한 듯한 문구로 현수막을 교체한 거지.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공격을 하기 시작했어. “윤화섭 후보는 입장을 밝혀라! 납골당 찬성이냐, 반대냐!”

더불어민주당은 선거기간 동안 단 한 번도 4.16 안전공원에 대한 명확한 의지를 밝히지 않았어. 결국엔 보다 못한 유가족들이 나섰지.

그런데 저 짐승만도 못한 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은 유가족들이 선전전을 하고 있으면 그곳에 찾아와 ‘납골당 운운’하며 확성기를 켜대고 선거운동을 하기 시작했어.

정세경, 그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선거를 치렀지. 사실 그녀의 선거 사무실에는 십 여 명의 유가족들이 자원봉사를 해주었어. 그 중 몇 명은 선거운동기간 내내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그녀를 수행하기도 했어. 주민들은 유가족들이 옆에 있는 것도 모르고 그녀에게 말했지. “리본을 떼라”고. 그리고 어느 날은 명함에 리본이 있다며 면전에서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었어. 그녀도, 그녀와 함께 했던 가족들도 힘들었지.

그런데 말이야, 그녀는 그들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어. 잠깐 외면하고 비켜가는 것도 너무 미안했던 거야. 오히려 가족들이 말했지. “세경씨, 리본이랑 팔찌랑 다 떼요. 괜찮아요. 서운해하지 않아요”

그런데 말이야. 이 바보 같은 사람은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갔다. 6월 13일이 채 며칠 안 남았던 어느 날부터 그녀는 다시 싸움을 시작했어. 유세차에 전명선 가족협의회 대표를 올려 마이크를 주고, 유가족들이 선전전을 하면 찾아가 함께 피켓을 들었지. 안산선거에서 금기어 같았던 ‘안전공원 추진’ 문구로 선거 현수막을 교체하고, “세월호 악용하고, 가족들 눈물나게 하는 자유한국당 몰아내겠다”고 유세를 하고 다녔다.

‘4.16안전공원 건립’ 내걸고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손잡은 그녀
또 다른 정세경들의 투쟁을 응원한다

맞아. 누군가는 잘못된 선거 전술이었다고, 아마추어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그녀는 다시 시간을 돌려도 그랬어야 했다고 믿었어.

아무리 선거는 당선이 목적이지만, 우리가 지켜야하는 ‘도리’가 있다고 믿고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어. 그것이 결국 진보정치, 시민정치의 완성을 만들 것이라고 믿지. 어려울 때, 누군가가 곤경에 처했을 때 누가 누구의 손을 굳건히 잡을 것인가. 그것이 정치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어. 안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완승한 것이 아니야. 적폐가 청산되지도 않았어. 더불어민주당은 보수야당이 만들어 놓은 왜곡된 여론과 일정부분 타협한 결과로 예전보다 조금 많은 의석을 얻었을 뿐이야. 더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 지지율의 덕을 99% 본 것 외에 아무것도 없지. 그리고 자유한국당이 3석을 차지하고 시의회에 들어갔어. 그 중에는 “납골당 반대 하나만 들고 나왔다”던 강광주도 포함되었지. 강광주는 정세경의 지역구에서 두 번째 많은 득표율로 시의원에 당선됐어.

그래서 나는 다시, 정세경. 더 많은 정세경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려는 거야. 비록 그녀는 낙선되어 의회 밖에서 적폐들과 싸우게 되겠지만 다시 희망을 만들어갈 것이야. 그리고 전국의 또 다른 정세경들이 선거라는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투쟁할거야. 아, 날이 참 좋다. 딱 그들을 응원하고 싶은 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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