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의 경제학, 우리는 어떤 세상을 선택해야 하나?

in #kr6 years ago

지금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있다. 사형 제도를 존속할 것인가? 아니면 폐지할 것인가?

이 선택은 다음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살 것인가?

이 선택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힌 두 정치 지도자가 있다. 두 사람 모두 국가 최고 지도자에 오른 인물들이다. 우리는 이들 중 누구의 철학이 옳은지를 답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사형제를 실질적으로 부활시키겠다고 약속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옳은가? 올해 안에 사형제를 폐지하겠다고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이 옳은가?

국가인권위원회가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대통령의 사형제 집행 중단 공식 선언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인권선언 70주년을 기념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사형제 모라토리엄(중단)’을 발표한다는 것이 인권위의 설명이다.

한국은 사형제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나라다. 다만 1997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약 20여 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 사회에서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법적으로 사형이 폐지된 나라와 실질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나라가 140개나 된다. 전 세계의 절반 이상이 사형 제도를 사실상 폐기한 상태다. 또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사형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일본과 미국, 한국 등 3개국뿐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 정치 세력은 사형제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인다. 사형제의 실질적 부활을 공약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 지난 대선 때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사형 집행을 안 하니 흉악범이 너무 날뛴다”며 사형제를 옹호했다.

결국 정부의 사형제 폐지 추진은 정쟁의 대상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 정당은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는 국민 심리를 자극(사형제 폐지 반대 여론은 대략 60%를 넘는다)해 이를 정치적 공격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하지만 사형제는 그렇게 간단히 정쟁의 도구로 전락할 문제가 아니다. “흉악범은 죽어야 마땅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만도 아니다. 이것은 한 사회의 철학적 바탕을 규정하는 본질의 문제다. 우리의 사회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합의를 바탕으로 존재할 것인가,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을 죽여도 괜찮다”는 합의를 바탕으로 존재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사형제에 대한 경제학의 시선

사형제를 바라보는 경제학의 대표적 시각은 ‘비용-편익 분석’이다. 좀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경제학은 사형제의 효용성을 비용과 편익을 비교해 분석한다. 대표적 경제학자가 범죄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게리 베커(Gary Becker)다.

비용-편익 분석의 시각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형을 실시하면 얼마의 사회적 이익이 돌아오느냐이다. 이 시각은 사형으로 잃는 사람의 목숨을 비용으로 보고, 사형으로 살릴 수 있는 사람의 목숨을 편익으로 본다.

이런 시각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매우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 즉 호모에코노미쿠스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이는 사람은 매우 계산적이어서 모든 상황을 수치로 환산한 이후 이익과 편익을 비교해 1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을 선택한다는 인간관이다.

이 시각에 따르면 인간은 처벌이 가져다주는 비용을 숫자로 계산한 뒤 범죄로 얻는 수익과 비교해 범죄 여부를 결정한다. 범죄가 주는 편익(쾌감이나 복수심의 충족)이 비용(감옥에 오래 갇히거나 사형을 당함)보다 크면 범죄를 저지르고, 작으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1975년 아이작 에를리히의 통계 연구 이후 매우 흥성했다. 에를리히에 따르면 사형집행을 한 건 추가하면 살인 범죄가 최소한 한 건에서 많게는 여덟 건까지 감소한다. “한 명을 죽이고 최대 여덟 명의 목숨을 건질 수 있으니 이 어찌 이익이 아닌가?”라는 게 비용-편익 분석의 시각이다.

사형은 범죄를 줄이지 못한다

하지만 에를리히의 연구(아이러니하게도 에를리히는 열성적인 사형 반대론자였다)는 곧 다양한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이 너무나 계산적이어서 범죄의 비용을 번개같이 측정한 뒤 이익과 비교한다는 전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 인간은 그렇게 정교하게 비용과 이익을 계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이 ‘내가 지금 이 사람을 죽일 때 얻는 쾌감은 13, 그런데 내가 적발돼서 사형을 당했을 때 얻는 손실을 15. 따라서 이익에 비해서 비용이 크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라고 결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에를리히의 통계에 대한 반론도 쏟아졌다. 에를리히의 논문이 나온 2년 뒤 파셀과 테일러는 통계 연구를 통해 사형 집행과 범죄율이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범죄학자인 소스턴 셀린도 미국에서 사형제도가 존재하는 주와 그렇지 않은 주의 살인 범죄율을 조사한 결과 심지어 사형제도가 있는 주의 살인 범죄율이 더 높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야수화 가설,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 것인가?

이런 상반된 주장 속에 귀담아 들을만한 새로운 가설이 제시됐다. 이른바 ‘야수화 가설’이 그것이다. 사형을 집행하면 범죄가 줄어들기는커녕 되레 범죄를 더 자극해 흉악범죄가 늘어난다는 가설이다.

이 주장은 1980년 바우어스와 피어스 두 학자의 공동연구에서 처음 제기됐다. 이들은 1907년부터 1963년까지 뉴욕에서 집행된 사형과 그 후 발생한 살인범죄를 분석한 연구였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형이 집행된 이후 두 달 동안 평균 3건의 추가 살인이 발생했다. 또 코크란이라는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25년 만에 사형을 집행한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형 집행 이후 모르는 사람에 의한 살인(stranger killings)이 되레 늘어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사형을 집행한다는 것은 국가가 범죄자를 공식적으로 죽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경우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일이 정당하다는 의식이 확산된다. ‘죽을만한 일을 한 자들은 죽여도 된다’는 공인이 생겨 살인 범죄가 더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 던진 질문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오래 전부터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던 동양대 진중권 교수는 2008년 프레시안에 기고한 ‘사형제가 인권이라고?’라는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당신에게도 자녀가 있을 게다. 걔들을 위해 선택할 ‘사회적 인성’의 두 가지 옵션이 있다. 당신은 그 아이들을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인간들 틈에서 키우겠는가? 아니면 당신의 자녀를 ‘어떤 경우든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틈에서 키우겠는가?

이제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 보라. 당신의 자녀는 과연 어떤 인성을 가진 사회에서 더 안전할까? 당신의 자녀의 영혼은 과연 어느 사회에서 더 아름다울까? 허투루 대답하지 말라. 이것은 당신 자녀의 안전과 영혼이 걸린 문제니까. 당신 자녀를 “죽여라, 죽여라” 고래고래 외치는 군중들 틈에 내보낼 것인가? 정말 그러고 싶은가? 이것이 세계 134개국에서 사형제를 폐지하고, 또 점점 더 많은 나라가 거기에 동참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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