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촛불집회 ‘막전막후’…그들은 ‘총수 퇴진’을 쟁취할 수 있을까

in #kr8 years ago

세종문화회관에 쫙 깔린 ‘사축’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직원연대’의 첩보전

4일 저녁 6시 20분, 한진그룹 조양호 총수 일가의 ‘갑질’을 제보하는 단체 대화방에는 촛불집회장 인근에서 찍은 사진이 여럿 올라왔다. 양복 차림의 50대 중반 남성도 있었고 마스크로 반쯤 얼굴을 가린 40대 초반, 30대 중반의 남성도 있었다. “수도권지역 노무관리본부장”이라는 직원들의 제보가 이어졌고 그 뒤로 “광화문 광장 맞은편에 인사팀 직원 다섯이 있다”는 고발도 나왔다.

한 직원은 “아직 마스크를 구하지 못했는데....현장에서 지금도 받을 수 있나요”라고 우려했고 “많이 남아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오세요”, “저도 여분이 있으니 드릴께요”라는 답글이 줄지어 달렸다.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STOP 촛불집회’ 막전막후엔 찾으려는 자와 숨으려는 자사이의 숨바꼭질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집회 시작 전부터 단체 대화방에는 ‘모르는 사람과 말을 하지 말라’ ‘현장에선 이름을 부르지 말라’ ‘최소 한 정거장 전에 하차해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 한다’ ‘이름표는 가리고 눈에 띄는 핸드폰 악세사리는 떼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현장에선 대한항공 직원과 직원이 아닌 참가자를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직원들은 신분공개를 극도로 꺼렸다. 검은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 써 이마까지 촘촘하게 가렸다. 얼굴엔 커다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겹겹이 썼다. 도저히 누군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직원들은 기자의 질문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무엇이 대한항공 직원들을 이토록 두렵게 만든 것일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들기 위해 광화문 광장을 찾은 이들은 무엇을 그토록 쟁취하고 싶은 것일까. 두 아들과 아내를 이끌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40대 후반의 한 기장은 “무너진 회사내 민주주의가 직원들을 숨막히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총수 일가가 멋대로 행패를 부리고, 대놓고 불법 밀수를 지시했지만 말한마디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바른말 하는 직원들은 줄줄이 불이익을 받았고, 지켜보던 직원들의 말 못할 불만이 켜켜이 쌓여 갔다는 것이다.

그는 “박창진 사무장이 진짜 영어를 못해서 강등된 것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 박창진 사무장은 21년 동안 국내선과 국제선에서 승무원으로 활동했다. 그중 10년은 관리자로 생활했다. 지난해, 회사는 그를 사무장에서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시켰다. 당시 대한항공에서 밝힌 강등이유가 바로 ‘영어 자격 미달’이었다.

조종사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노동조합이 주최한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십여명의 조종사들이 ‘교관’ 자리에서 밀려났고 기장으로 승진해야 하는 부기장들은 물을 먹었다. 언제든 자리를 옮길 수 있고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기장들조차 사측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일반 직원들이나 승무원들은 회사의 부당한 조치에 속앓이만 했다. ‘노동조합 대의원을 사측이 면접으로 뽑는다’(CBS)고도 했고 ‘대한항공서 민주노조하다 찍히면 30년차 대리’(미디어오늘)라는 보도도 있었다.

회사 분위기를 증언하듯, 발언에 나선 한 중년의 객실 사무장은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회사에서 쫓겨나고 동료가 눈물의 퇴사를 할 때 옆에서 함께 하지 못하고, 미안하단 말조차 못하고 30년을 살았다”며 말끝을 흐렸다.

다소 무거웠던 분위기의 촛불집회가 활기를 띄기 시작한 때는 자신을 “부산 항공운수사업본부 김건우”라고 소개한 직원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벗어 던지면서 부터였다. 그는 “여기 모이니 가슴이 벅차다”며 “이제 더 침묵하지 말고 당당하자”고 말하며 마스크를 벗었다. 그가 마스크를 벗자 사회를 보던 박창진 사무장도 “저도 용기를 얻어 가면을 벗겠다”고 말했고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웅크리고 앉아있던 직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촛불을 치켜들며 파도타기 장관을 만들었다. 직원들은 “사랑한다 동료들아, 지켜내자 대한항공” 구호를 외치며 서로를 격려했다.

안타깝게도 90분간 이어진 촛불집회는 어수선했다. 준비된 스피커는 출력이 낮아 사회자와 발언자 소리가 뒤까지 들리지 않았다. 기자와 참가자가, ‘사축’과 경찰이 뒤엉켜 혼잡스러웠다. 마치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이 처음 타올랐던 2016년 9월, 평일의 어느 저녁 청계광장의 모습 같았다. 100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모여 “박근혜는 하야하라”고 외쳤던 당시, 참석자들조차도 이날 촛불이 전국민 항쟁으로 번지고, 정권교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 대한항공 ‘직원연대’의 촛불집회가 한국 기업 역사상 초유의 ‘경영진 교체’와 사내 민주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참석자들은 “오늘부터 1일”이라고 강조했다. 한번의 촛불집회로 조양회 회장 일기가 퇴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한항공 사내 민주화를 위한 ‘을들의 반란’은 이제 막 점화 됐을 뿐이다. ‘갑질 제보 단체 대화방’을 만든 이른바 ‘관리자’는 편지글을 통해 “아름다운 마음 하나하나에 용기를 얻어 끝까지 할 것”이라고 밝혔고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를 잡은 박창진 사무장은 “두번째 촛불은 일주일 이내에 꼭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로를 격려했던 참가자들은 촛불집회가 끝나고 하나 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직원들과 함께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광화문역에서 5호선을 탄 참석자는 열차가 충정로역을 지난 뒤에야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벗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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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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